이번 시간에는 <베르그손주의>에서 논의되었던 개념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베르그손주의>와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뿐 아니라 황수영 선생님과 김재희 선생님의 책들을 참고하며 ‘지속’ ‘기억’ ‘잠재성’ ‘차이’ 개념을 정리해와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개념들을 구분해서 정리해오니 조금 명확해진 것도 같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다시 뒤죽박죽이 되어버리곤 했어요.^^;
이를테면 ‘기억이 쌓인다, 축적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두고 한참 이야기가 오갔는데요, ‘쌓인다’는 말 때문에 자꾸 어딘가에 뭔가가 쌓이는 공간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었어요. 베르그손과 들뢰즈가 약간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더욱 헷갈리기도 했는데요. 베르그손이 기억의 두 형식으로 분류하는 이미지 기억과 습관 기억은 ‘순수 기억’과 다른 것인지, 이미지라는 건 이미 현행화된 걸 말하는 게 아닌지, 순수 기억과 순수 지각은 무엇이 다른지... 용어와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저희는 계속 도돌이표를 그리게 되었어요...;
거칠게 이해하기로는, 베르그손과 들뢰즈가 말하는 순수 과거, 과거 전체, 순수 잠재라는 것이 매순간 이미지 기억이나 습관 기억(베르그손), 혹은 회상-기억이나 응축 기억(들뢰즈)로 현행화되었다 잠재화되기를 반복한다는 것인데, 그 점을 생각하면 ‘기억이 축적된다’는 말은 현행화되면서 전혀 다른 것으로 생성된 ‘순수 과거/과거 전체/순수 잠재’가 다시 잠재화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 <베르그손의 잠재적 무의식>에서 가져온 구절들도 베르그손의 지속, 다양체, 잠재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죠.
“존재론적 차원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는 심리-생물학적으로 현실화된 부분과 잠재적으로 존속하는 실재 전체의 관계와 같다. 존재론적 무의식이 심리-생물학적 의식으로 개별화되고 축소되는 과정은 잠재적 다양체가 현실적 다양체로 분화되는 과정이다. 잠재적인 무의식과 현실적인 의식의 관계는 얼핏 스피노자의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의 관계를, 또는 셸링의 절대적 동일자의 변증법적 자기 관계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 사이에는 무엇보다 질적 변화의 창조적 시간이 개입한다. 현실적인 것들은 잠재적인 것의 발생적 결과물로, 잠재적인 것으로 환원불가능하다.” (16쪽)
“운동과 의식에서 벗어난 시간, 시간의 직접적 양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더 이상 수적으로 헤아려질 수 없는 시간, 인간적 삶의 필요에 의해 연대기적으로 구분되었던 과거-현재-미래가 더 이상 식별불가능하게 얽힌 시간, 끊임없는 생성과 창조와 질적 변화의 불가분한 연속체인 세계와 분리불가능한 시간, 바로 지속일 것이다. 이 시간은 오히려 물체들의 운동과 현전적 의식의 배후에서 이러한 운동과 의식의 존재론적 근거로서 작동하는 힘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시간은 현실적 차원에서 주어지는 시간의 간접적 양상을 가능하게 하는 실재론적 조건이자 초월론적 근거로서 작동하는 잠재적 실재이다.” (194쪽)
“양적 다양체는 공간적 차원에서 성립하며 질적 다양체는 실재적 지속 그 자체이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두 다양체 사이의 대립이 비대칭적이라는 것, 즉 대립하는 요인이 공간의 관념성과 지속의 실재성에 있다는 점이다. (...) 두 다양체는 본성상 다른 것으로 이원화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다양체의 심층과 표면으로 일원화된다. 그러나 두 다양체의 이원성과 일원성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논의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현실적 차원에서의 이원성과 잠재적 차원에서의 일원성, 다시 말해 경험적 차원에서 본성상 다른 것으로 구분되었던 것들은 초월론적 차원에서 정도상(강도상) 다른 것으로 연속성을 지닌다. 그러니까 질적 다양체인 지속은 현실적 차원에서 이원화되며 자기 차이화하지만 잠재적 차원에서는 자기 자신과 하나인 셈이다.” (214쪽)
마지막으로 ‘지속이 왜 자유인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들뢰즈는 지속이 본질적으로 기억이고 의식이고 자유라는 말을 반복하는데요, 어째서 자유인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저희는 들뢰즈와 베르그손이 지속과 기억, 차이, 잠재적인 것을 사유하는 방식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에 구속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조건과 그렇게 조건화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드러난 것과 잠재적인 것을 동시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되는 게 자유가 아닌가...
이렇게 해서 어려웠던 ‘들뢰즈의 베르그손’도 마무리하게 되었는데요, 마지막 강의를 통해 좀더 이해하게 되길 기대해봅니다.
다음 시간에는 채운샘의 정리 강의가 있습니다. 간식은 영주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그럼 수요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