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는 <들뢰즈, 초월론적 경험론> 7, 8장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자는 들뢰즈가 스피노자와 더불어 내재성의 형이상학을 전개해나가며 구조주의적 입장에서 어떻게 경험적인 것과 초월론적인 것을 새롭게 규정하는지 보여줍니다.
저희는 먼저 ‘내재성’ ‘내재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이는 뭔가의 ‘안’에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스피노자의 ‘일의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신과 자연, 창조자와 창조되는 것,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을 분리되지 않는 하나로 보았습니다. 표현하는 바와 표현되는 바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를 제거하며 스피노자의 신학은 새로운 의미작용 이론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론에서 스피노자는 기호와 상상력을 비판하는데, 이는 ‘다의성, 탁월성, 유비’에 대한 거부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표현과 기호의 대립’은 스피노자주의의 기본 테제 중 하나라고 하는데요. 여기서 ‘기호’는 알레고리적 기호, 즉 “다른, 숨겨진, 탁월한, 신비로운 의미작용의 전달수단”으로 여겨지는 어떤 것입니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합리적인 측면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복종과 종속이라는 노예의 영역”으로 옮겨놓는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신비’라는 것은 우리에게 비의적인 의미를 펼쳐보여주는 게 아니라 “복종의 실천, 종속의 혼련”일 뿐이라고요. 따라서 그에게 철학은 ‘탈신비화의 시도’로 이해됩니다. 노예 상태로 만드는 미신들을 감소시켜 우리를 예속의 슬픈 정념으로부터 실천적으로 해방시키려는 시도로.
스피노자가 기호와 대립시킨 ‘표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됩니다. “형이상학적 내재성은 (...) 표현이라는 본성을 함축하고 있다”, “신과 신의 생산 사이에 놓인 표현의 관계는 필연적, 실재적이다”, “이 표현의 관계는 상이한, 숨겨져 있는, 초월적인, 설명될 수 없는 어떤 의미에 대한 상상적 참조를 전혀 함축하지 않는다.” 여전히 애매하게 느껴지지만, 저희는 이 '표현'을 ‘낳다’ ‘생산하다’와 비슷한 의미로 정리했습니다. ‘낳다’ ‘생산하다’와 같은 말은 주체를 상정하게 되는 말이기 때문에 그런 효과 없이 뭔가가 만들어진다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한 말이라고요.
올해 나들이 세미나에서 다루지 못한 스피노자에 관한 부분이어서 무척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특히 들뢰즈가 니체와 스피노자의 사유를 결합시켜 ‘윤리’를 ‘실험’으로 만든 ‘위대한 결합’에 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들뢰즈는 윤리와 도덕에 대한 스피노자의 구별을 강조하며, “심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윤리의 가르침이자 도덕과 윤리의 차이임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다른 존재자들을 심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자들이 우리에게 적합한지 아닌지를, 다시 말해 그 존재자들이 우리에게 힘을 가져다주는지 아닌지를 느껴야 한다”고 말합니다. 윤리는 이처럼 “실효적 힘 관계의 측면에서 성립”하는 데 반해, 도덕은 “초월적 가치들의 이름으로 삶을 비난”합니다.
들뢰즈는 스피노자에게서 도덕의 초월적 가치들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인 후 이를 니체에게로 가져갑니다. 스피노자에게 ‘선(善) 일반’과 ‘악(惡) 일반’은 없으며, 좋거나 나쁜 관계가 있을 뿐입니다. 들뢰즈는 이러한 결론을 받아들여 니체적인 방식으로 정식화합니다. “선과 악이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힘 관계의 유형학이 존재한다. 우리는 힘 관계 속에서 우리에게 적합하고 우리의 역량을 증대시키는 관계, 그리고 역으로 우리에게 해를 끼치고 우리의 역량을 감소시키는 관계를 찾아내야 한다.” 이 정식에 따르면, 좋음과 나쁨은 이롭거나 해로운 만남의 방식으로 파악되어야 합니다. ‘내재적인 정서의 행동학’이 ‘금지의 도덕’을 대체합니다. 악은 항상 “중독, 부작용, 부적합이라는 유형의 상대적 나쁨, 우리의 관계를 파괴하거나 해칠 수 있는 나쁜 만남”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윤리는 실험이 됩니다.
니체와 스피노자의 위대한 결합으로 탄생한 들뢰즈의 정식을 마음에 담으며, 들뢰즈가 항상 사상가들 가운데 가장 낙천적인 사람, “기쁨을 사변적 긍정의 상관항으로 만드는 ‘위대한 낙천가’”로 소개한다는 스피노자의 사유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9장과 10장을 읽고 내용을 정리해오시면 됩니다. 수요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