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는 <천 개의 고원> 1, 2장을 읽고 토론한 후, 채운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동안 낭송을 통해 2장 초반까지 읽을 수 있었는데요, 눈에 들어오는 부분도 있었고, 세미나에서도 잠깐씩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역시 찬찬히 다시 읽어보니 알쏭달쏭한 부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토론과 강의에서 의문점들이 조금 정리되긴 했지만 여전히 헷갈리는 점들이 많습니다. <천 개의 고원>은 주요 개념들이 매 장마다 다시 등장한다고 하니, 읽어나가면서 계속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의에 앞선 토론에서 저희는 1,2장에서 말하고 있는 리좀과 다양체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1장에서는 리좀적인 것과 나무적인 것을 비교하며 리좀의 특징들을 이야기합니다. 리좀은 ‘땅밑 줄기’의 다른 말로, 뿌리나 수염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하죠. 리좀의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는 것이 구근(球根)이나 덩이줄기입니다. 토론에서도 이야기가 나왔지만, 고구마나 감자처럼 결실을 맺으면서 계속 뻗어나가는 줄기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저는 계속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이미지로만 생각했는데, 뻗어나가는 건 뿌리나 수염도 마찬가지죠. 샘은 뻗어나가며 만나는 것과의 관계에서 ‘상호 변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짚어주셨습니다. 연결접속하는 두 항이 변환을 이루는 것이 리좀의 핵심입니다. 만나는 것과 더불어 리좀 관계를 이루고, 그것과 더불어 리좀이 됩니다. 우리는 바이러스와 더불어 리좀이 되고, 책은 세계와 더불어 리좀이 되고요.
1장에서 저자들은 리좀과 나무를 구분하며 리좀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그 설명을 따라가다보면, 마치 리좀적인 것이 좋은 것이니 그것을 지향하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2장에서는 둘의 구분보다는 모든 것이 다양체임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1장에서도 중간중간 리좀과 나무가 칼로 자른 듯이 나눌 수 없음을 설명합니다. 리좀은 분할선들을 포함하며 그 선을 따라 영토화되고 조직화되며 나무가 되지만, 또한 탈영토화의 선들도 포함하며 이 선들을 따라 끊임없이 도주합니다. 리좀은 나무가 되고 나무는 다시 리좀이 됩니다. 리좀적인 것 안에도 나무적인 것이 있고, 나무적인 것 안에도 리좀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둘을 자꾸 대립적인 것으로 보게 되지만, 그렇게 보면 들뢰즈가 비판하려고 한 것에 다시 갇히게 된다고 샘도 말씀하셨죠. 모든 것은 어느 지점에서는 리좀적으로 펼쳐지고, 또 어느 지점에서는 나무적으로 펼쳐집니다. 리좀적인 것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나무적인 것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스템도 마찬가지죠. 자본주의는 모든 걸 ‘자본’에 귀속시키는, 중심화하고 위계화하는 시스템이지만, 애나 칭이 보여준 것처럼 거기에 속하지 않는 것들, 중심에서 이탈하는 것들이 늘 존재합니다. 위계화하고 중심화하려는 힘이 커지면 이탈하려는 힘도 커집니다. 모든 건 이러한 역동적인 힘으로서, 다시 말해 ‘다양체’로서 존재한다는 점을 들뢰즈는 리좀과 나무, 지도와 사본 등의 이분법을 ‘방편’으로 이용해 들려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샘은 다시 중요한 점을 짚어주셨지요. 그렇다고 모든 것이 운동이고 변화일 뿐 좋고 나쁜 것이 없다는 말로 오해하면 안 된다는 점. 그 자체로 좋고 나쁜 것, 불변하는 가치로서의 좋고 나쁨이 없다는 말이지, 좋고 나쁨의 분별이 없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건 불가능하지요. 우리는 살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좋은 것 나쁜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문제는 각자의 좋고 나쁨을 계속 새롭게 구성해내는 것이라고 샘은 정리해주셨어요. 어떻게 각자의 좋음을 구성하고, 각자의 기쁨을 발명할 것인가의 문제라고요. 들뢰즈도 이렇게 말합니다. “<좋음>과 <나쁨>은 능동적이고 일시적인 선별의 소산일 뿐이며, 이 선별은 항상 갱신되어야 한다.”(24쪽) 애나 칭이 보여준, 다양한 배경의 버섯 채집인들도 떠오릅니다. 자신만의 기쁨을, 자신만의 자유를 발명해낸 사람들.
들뢰즈와 과타리가 펼쳐보여준 리좀과 다양체의 이야기 중에서 우리는 어떤 것들을 <세계 끝의 버섯>과 연결시켜 볼 수 있을까요? 다음 고원으로 넘어가기 전에, 각자의 구근(^^)을 싹 틔우는 시간을 한 주간 가져보아요!
- 다음 주 세미나는 4시 30분에 시작합니다.
- ‘리좀’과 ‘다양체’ 중 하나의 개념을 골라 <세계 끝의 버섯>과 연결시켜 간단하게 정리해옵니다.
수요일 오후에 뵈어요!
<버섯> 읽을 땐 신나서 읽었는데 <고원>을 읽으니 개념들이 읽은 내용에 통과가 안되네요.ㅠㅠ 그렇다고 흥미가 떨어진다는 것은 아니고요.ㅋㅋ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괴물과 대적하는 길은 일대일로 다이다이 맞장 뜰 수 있는 강한 힘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게 이곳 저곳에 들어가 녹슬고 좀먹도록 있는 자리를 고장내는 거라는데 그건 왠지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혹시나 리좀이 이해될까 해서 이번 봄에 저도 괜히 수선화 화분 들여놨어요 혹시나 리좀이 이해될까 부적삼아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