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세미나 일곱 번째 시간에는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 1~5장까지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책은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문제들을 분자생물학의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는 과학철학의 명저로 알려져 있지요. 과학의 언어들이 쏟아져서 어지럽고 어려웠지만, 생명체에 관해 과학적으로 규명하나가는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는 와중에도, 흥미로웠습니다. 저희 나름대로 들뢰즈의 개념과도 연결시켜보았고요.
모노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구분 하나를 문제삼으며 시작합니다.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의 구분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바위나 산, 강, 구름을 자연적인 것으로 구분하고, 칼, 손수건, 자동차는 인위적인 것, 즉 인공물로 구분하지요. 그런데 이런 구분의 기준이 무엇인지 밝히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치가 않습니다. 이를테면, 어떤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인공물'로 구분하고, 의도로부터 자유로운, 물리적인 힘들의 활동으로 만들어진 것을 '자연물'로 구분한다면, 꿀벌의 벌집이나 새의 새집은 인공물이 됩니다.
인공물과 자연물을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하지만, 여기서 모노는 생명체의 속성 하나를 끌어냅니다. “모든 인공물은 어떤 생명체의 행위의 산물”(23쪽)이라는 점, 다시 말해 “생명체는 어떤 의도가 깃든 존재”(23쪽)라는 점이죠. 생명체는 그 구조나 활동에 있어서 어떤 의도를 실현하고 추구하는 존재처럼 보입니다. 모노는 이런 생명체의 속성을 ‘합목적성’이라고 부르고, 생명체의 합목적적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인 분자적 요인으로 ‘단백질’을 꼽습니다. 모노에 따르면 생명체란 ‘화학적 기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유기체가 성장하고 증식하기 위해서는 수천 가지의 화학적 반응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지요.
또 유기체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기계”(74쪽)이기도 합니다. 유기체는 내부에서 작용하는 ‘건설적인 상호작용’들에 의해 자율적인 방식으로 스스로를 만들어냅니다. 이 건설적인 상호작용들은 미시적이고 분자적인 것들이고, 여기에 관여하는 분자들은 본질적으로 ‘단백질’입니다. 그러니까 생명체라는 화학적 기계를 만들어내는 주역은 바로 단백질, 더 자세히 말하면, 단백질의 ‘입체특이성’이란 속성입니다. 이는 다른 분자들을 그들의 형태에 따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는데요, 문자 그대로 ‘뭔가를 식별해낼 수 있는 속성’, 즉 ‘미시적 차원의 식별 능력’입니다. 어떤 단백질이 자신의 독특한 입체적 특이성에 의해 식별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의 구조와 형태 덕분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 구조의 기원과 진화를 기술할 수 있다면 이 구조로 인해 가능해지는 합목적적인 작용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모노는 3~5장에 걸쳐 단백질의 촉매기능과 조절기능, 구조를 만들어내는 건설적인 기능에 관해 설명합니다. 거대한 미시적, 화학적 활동이 정확히 정해진 방향을 따라 일어나고 높은 성과를 거두게 해주는 ‘특이한 촉매로서의 효소 단백질’, 복잡하고 자율적인 화학적 기계의 기능적 정합성을 위해 수많은 지점에서 이뤄지는 화학적 활동을 관리하고 규제하는 ‘사이버네틱 시스템’, 그 중에서도 ‘조절 단백질’이라 불리는 단백질들은 그 기능과 본성 사이에 화학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무근거성’의 원리에 기반한다는 것... 특히 기능적 속성들을 가능하게 하는 복잡한 구조가, 이 구조를 구성하는 단백질 요소들의 입체특이적이고 자발적인 결합 과정에 의해 구축된다는 사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자신의 파트너를 식별해내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내재적 기능이나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던 분자들의 무질서한 혼합으로부터 질서가 ‘출현’하며 구조적 분화가 일어나며 기능이 생기는 일.”(128쪽) 이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준다고 모노는 말합니다. 전체를 구성하는 개별 구성요소들이 각각의 구조 속에 잠재적으로 포함되어 있지만, 그 요소들이 서로 결합해야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며 ‘현실화’된다는 것. 그런 점에서 “구조의 설계도(plan)는 그 구조를 구성하는 구성요소들 자체에 이미 들어 있다”(128쪽)거나 “어떤 구조가 후성적으로 형성된다는 것은 ‘창조가 아니라 드러남’이다”(129쪽)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부분에서 들뢰즈를 읽고 있는 저희는 ‘설계도’와 ‘창조가 아닌 드러남’을 어떻게 볼 수 있을지 얘기해보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잠재적인 것이 현실화된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것 같지만, 들뢰즈의 ‘생성’이나 ‘창조’는 미리 정해져 있는 어떤 ‘본’에 따라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설계도’란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설계도에 따른 드러남은 '지도 그리기'가 아니라 '사본 제작'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모노가 말하는 설계도 역시 '원본'으로서의 설계도는 아닌 듯하고, 그렇게 본다면 (얼핏 떠오르는) 들뢰즈의 ‘주사위 던지기’나 ‘사건’ 개념과도 비슷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들을 비롯해 전반부에서 떠오른 질문들을 계속 생각해보면서, 또 모노가 생명체의 작용과 진화의 과정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우연? 필연?)도 주목하면서 계속 읽어나가야겠습니다.
- 다음 시간에는 <우연과 필연> 6~9장을 읽어옵니다. 발제는 6장 제현샘, 7장 봄샘, 8장 영주샘, 9장 윤순샘.
- 간식은 해민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수요일 저녁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