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미나에서는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 1장부터 5장을 읽었습니다. 분자생물학의 관점에서 '미시'의 세계가 얼마나 단조로운지, 그리고 그것들이 우연과 필연에 의해 어떻게 구성되고 존재하며 다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단백질을 비롯한 여러 미생물을 사례로 분석과 설명을 이어가는데, 생물학, 과학 등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지는 않은지라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읽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이야기하였지요. 그럼에도 각자가 이해한 바들을 조금씩 내보이며 거시적 구성체인 우리 몸을 이루는 미시 세계의 다양을 이해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1장 이상한 존재들에서 모노는 '이상한' 생명체를 의문시하고, 몇가지의 사고실험(인간의 집과 꿀벌의 집 비교, 결정 등)을 통해 인위와 자연의 구분이 쉽지 않음을 보입니다. 그리고 생명체의 '이상한' 속성으로 세가지, 합목적성, 자율 결정성, 불변적 복제성을 제시합니다. 합목적성과 불변적 복제성은 그 자체로는 모순적일 수 있습니다. 합목적성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서 의도를 가진 존재를 전제하는데, 이는 과학의 '객관성'의 공리를 벗어나는, (방편으로서의 이분법으로 구분하면) 인위에 가까운 개념이지요. 반면 불변적 복제성은 유전형질, 혹은 구조를 발생시키는 정보를 불변적으로 복제하고 전달함을 의미하는데, 이는 자연의 객관성에 부합합니다. 이어지는 2장에서는 이 불변성과 합목적성을 두고 무엇이 우선하는가에 대한 주장들을 제시합니다. 다윈은 불변성을 우선 전제하여 과학적 정합성을 지키며 합목적성을 적용합니다. 반면 생기론과 물활론은 합목적성이 우선함을 주장합니다. 생기론은 생명계에만 합목적성이 작용함을 전제하며, 생물과 미생물을 구분합니다. 물활론은 우주 전체의 진화에 합목적적 원리가 적용된다고 보지요. 모노는 마르크스,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도 물활론적 사유가 있음을 해석해내고 그것의 모순을 지적합니다. 우주 전체의 합목적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인간 의식이 외부 세계에 정확히 가닿아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하나, 인간의 의식은 외부 정보를 "변형하는 것이지 그것을 그 자체로 재현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 명제가 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합목적성'이라는 개념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선생님들께서 여러 맞닿아있는 사상들을과 사유들을 공유해주셨는데요, 재겸쌤께서는 '목적성'의 개념이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에서부터 비롯된 역사적 개념이며, 이것이 근현대 과학의 '객관성'과 대비되며 사장되어감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영주쌤께서는 동양철학에서 중시하는 생명원천으로서의 '물'이 거의 모든 잼재성을 갖고 있으나 어떤 특정한 것으로만 되는 목정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합목적적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이어지는 장들에서는 단백질의 효소 단백질의 '대사' 메커니즘을 통해 생명체의 합목적성을 보여줍니다. 단백질의 합목적성을 보여주는 특징은 이것이 입체 특이성을 갖는다는 것인데요, 입체특이성을 갖기 때문에 효소인 푸마라아제는 푸마르산에만 작동하고 구조가 거의 같은 사과산에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특정 유형에만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연성에 기반해 화학물의 구조가 드러나는 것이죠. 그 화합물의 결합방식으로는 공유결합과 비공유결합이 있습니다. 분자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원자.. 전자 등 과학시간에 비운 개념들을 봄쌤의 도움을 받아 다시 상기하며 미시적 세계의 결합을 상상해보았습니다. 공유결합은 두개 이상의 원자가 전자쌍을 공유하는 결합인 반면에 비공유 결합은 전자를 공유하지 않는 상호작용을 통해 결합하는 것입니다. 공유결합에 관련되는 반응의 활성화 에너지는 높고, 비공유결합과 관련된 반응은 활성화에너지가 낮아 빠른 속도로 반응이 이뤄집니다. 비공유결합 상태에서는 안정성이 낮고 역설적으로 안정석을 얻기 위해 잦은 상호작용이 필요한 것입니다. 생명현상을 높은 에너지를 지향하는 것이나 비공유결합을 통해 유연성이라는 성질을 얻습니다. 이 상호작용은 필연적인 동시에 자의적이므로 모노는 이를 '무근거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희는 우연과 필연, 생명체의 특징에 대해 아직은 조금 아리송한 마음으로 들뢰즈의 개념과 엮어보려고도 하였습니다. 단백질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여 결합한다는 것은 인간이 분자 단위에서부터 계속해서 생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할 수 있고, 구조를 구성하는 구성요소 자체에 들어있는 구조의 '설계도plan'를 지도와 혹은 평원과 연결해볼 수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미시세계의 작동방식을 이해해보면서 개체, 사회 구조 등의 거시세계와의 연결지점을 찾아가보는 것이 매우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책을 모두 마무리하지 못하고 세미나를 그만두게 되어 무척 아쉽습니다. 매 시간 선생님들과 읽고 이야기 하며 많이 배웠고요, 즐거웠습니다. 각자의 지도를 그리다 또 만나 연결되고 흐트러지는 사유들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내일 출국을 앞둔 와중에도 이렇게 세심한 후기를 남겨주신 예은샘! 복잡한 내용을 간명하게 잘 정리해주셔서 전반부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다시 짚어볼 수 있었네요. 계속 함께 읽고 이야기나눌 수 없어서 넘나넘나넘나 아쉽지만, 나중에 다시 함께할 날을 기대하며 건강하게 잘 다녀오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에세이를 핑계로 다소 멍하게 보냈던 시간이었는데, 뒤늦게라도 다시 읽어보니 알맹이들이 잘 짚어진 시간이었네요!!
모노의 힘있는 문장들은 단단한 토대(우연까지도 포함하는) 위에서, 토대를 만들면서 사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떠나는 길에 남겨둔 후기로 복습하며 더듬더듬 들뢰즈를 읽어나가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