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후기
Seminar 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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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일상생활에 있어서 만 가지를 다 헤아리고 갈 수는 없는 거지요. 그러나 자기가 타고난 성품대로 물가에 피는 꽃이면 물가에 피는 꽃대로, 돌이 놓여 있을 자리면 돌이 놓여 있을 만큼의 자리에서 자기 몫을 다하고 가면 모시는 것을 다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서 딴 사람이 모시고 가는 것을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지요. 있음으로써 즐거운 거니까. 동고동락(同苦同樂) 관계거든요. 요샌 공생이라고도 하는데 본능적으로 감각적으로 편하고 즐거운 것만 동락하려고 든단 말이에요. 그런데 '고'가 없이는 '낙'이 없는 거지요. 한살림 속에서도 '고'와 '낙'이 함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더불어 함께하는 것이지요. 즉 공생하는 건데, 공생관계는 각자를 긍정해주는 것이란 말이에요. 각자를 긍정해줘야 모시는 것이 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제 주머니에 넣으려고 하지를 않겠지요. 상대방이 있게끔 노력하는 거니까. 그것이 제가 생각하기에는 시(侍)의 극치가 아니겠나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동고동락한다는 것 자체가 생활이지 동락만 한다면 생활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일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p.82)
공생의 시대에 있어서는, 저 사람이 나보다 좀 부족하면 내가 도와주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륜인데, 경륜이란 무엇이냐? 한길이고, 큰길인 것입니다. 이 한반도는 작은 것 같지만 큰 나라입니다. 큰 나라이면서 아직도 눈을 덜 뜨고 있기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소련이 써먹던 그 방법 가지고 이 한반도에 평화가 오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써먹던 방법 가지고 되겠느냐 이 말입니다. 이 땅 이 겨레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하느님의 뜻, 진실한 생명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체득하는 속에서만 해결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장일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녹색평론사, p.130)
용서한다는 것은 같이 공생하려고 할 때의 얘기입니다. 그들이 공생 안하겠다고 한다면 우리는 비폭력, 비협조 해야죠. 이 두 가지는 굉장히 중요한 잣대입니다. 그런 사람하고는 비협력해야죠. 그리고 상대는 폭력을 쓰더라도 우리는 비폭력으로 대해야죠. 그 폭력의 세계라는 건 정복을 한다거나 소유를 한다는 범주의 얘기들이니까 억울함이라든가 분함이라는 것도 똑같은 역사의 궤적을 갈 경우에 따르는 문제이지요. 우리는 우리끼리 만든 다르 궤적의 역사를 가고 있으니까 억울함이나 분함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세상은 얼마나 빠르게 변합니까.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가졌던 놈들도 다 놓게 될 겁니다. 내가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하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장일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녹색평론사, p.193)
낭필클럽에서는 장일순 선생님의 목소리를 담은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를 읽고 있습니다.
'한살림'이라는 운동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부터 시작해
장일순 선생님의 생명 사상을, 그야말로 선생님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각자의 목소리로 생명과 공생에 대한 구절을 낭송하니 절로 경건해지는 기분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