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후기
Seminar 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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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가 지나가면 씨앗들이 일제히 땅을 뚫고 올라와 미친듯이 웃자란다는 사실을 알아챘따. 오이 씨앗을 심은 데서 오이가 올라왔고 콩 씨앗을 심은 데서 콩이 올라왔다. 뇌우는 농작물을 자라게 한다. 사람들은 뇌우가 쏟아졌다 하면 콩의 싹이 뚫고 나오는 건 물론이고, 농작물이 쑥쑥 자라는 걸 보면서 틀림없이 가을에는 풍년이 들리라 확신하기까지 했다.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하게 함유된 콩류를 많이 먹으면 사람이 포동포동해진다. 하늘이 내린 뇌우에 땅의 곡식이 무럭무럭 자라고 그것을 인간이 먹어 살찌우는 건 천지인이 하나가 되는 합일의 모습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천지인이 합일되는 순간을 포착하면서 이때를 온 산에 콩꼬투리가 넘실되는 형상을 한 '풍(豊)'이라 명명했다. 뇌화괘는 그래서 풍괘로 명명된다. (위스춘, <시간의 서>, p.61~62)
대시간 순서에서 망종 절기는 대장(大壯), 대유(大有)의 시공에 있다. 중국의 선현은 이를 위한 계사에서 "대장은 바르고 크기에 천지의 움직이는 뜻을 통찰할 수 있다. 군자는 이로써 예의에 맞지 않으면 행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군자는 세상살이에서 예를 따라 행하고 예에 부합한 것 외에는 절대 하지 않는다. 예는 시공의 속성에서 여름이다. 여름에는 만물이 장대하게 성장하는 광경에 펼쳐지고 만물 간에 질서가 효율적으로 이뤄지는 광경이 펼쳐진다. 그렇기에 질서를 효율적으로 지키는 것이 바로 예를 지키는 것이다. 익숙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에 낯선 사람이 끼어들 때, 만물이 부산스럽게 자라는 와중에 서로의 나뭇가지와 잎이 엇갈리고 침입할 때, 농업 생산 활동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정신이 없을 때에 질서나 예의는 더없이 중요해진다. (위스춘, <시간의 서>, p.170~171)
농경사회에서는 소송 걸기를 가장 두려워한다. 사람들은 훌륭한 개는 싸우지 않고 잘 싸우는 개는 좋은 가죽을 떨어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시골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게 소송이 일어난다는 건 전쟁과 마찬가지로 적 천 명을 무찌르고 자신은 팔백의 손해를 보는 것과 같다. 소송에 이기더라도, 한 곳에 생활해 서로 잘 아는 처지인 사람들끼리 평생 원수로 지내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위스춘, <시간의 서>, p,233)
대한 절기는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중국의 선현들은 하늘은 자(子)에 열리고 축(丑)에 개척되며 사람은 인(寅)에 태어난다고 한다. 하늘, 땅, 사람의 진화는 차례대로 이루어지면서 서열이 있다. 북반구에서 동지가 자시에 도래하면 소한과 대한에 이르러 대지가 갈라지고, 입춘이 되면 인일에 인간 세상의 대 서막이 열린다. 이것이 바로 하늘과 사람이 서로 감응하고 교감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대한 절기에 천지는 얼음에 갇힌 채 지리멸렬한 나날을 보내지만 세심한 사람이라면 이미 들려오는 진동의 소식을 듣는다. 하늘의 우레가 진동하든, 땅이 흔들리든, 사회적 소요가 일어나든 그것들은 하나같이 대량의 에너지를 방출하는 동시에 시공의 새내기에게 기회를 부여한다. 시인이 "온 세상이 생기발랄한 건 바람과 우레 덕분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위스춘, <시간의 서>, p.392)
[시간의 서]를 읽으면 절기 즉 시간의 마디를 설정할 때 태양, 바람, 강수량, 벼락, 곤충, 철새들을 면밀히 살펴서 정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의 때를 짐작하려면 주변 조건을 살피는 겸손함이 필요한 것 같아요. 자기를 덜어내는 겸손. 눈 앞의 이익,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만 좇다가 허방다리 짚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겨울편이 저는 조금 심심했어요. 아마도 신기한 풍습이나 역사적인 사건, 아름다운 시가 없어서 그랬나봅니다. 그런데 삼베 옷 하나 입고, 먹을 것도 없는 허허로운 산과 들판에서 생존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겠구나 라는 생각은 세미나 하면서 하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겨울은 봄을 기다리는 시간이기만 할까요? 겨울, 죽음, 텅비고 사라진 시간과 공간 그 자체로는 어떻게 우리 삶을 지배하는 걸까요. 살아있음과 대비되는 죽음, 겨울을 견뎌야 오는 봄. 이런 식의 배치는 적어도 제게 봄, 태어남, 살아있음에 더 방점을 두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우리 세미나는 오늘부터 [밤을 가로 질러]를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제 고정관념에 균형감각을 심어주기 위해 이번에는 밤, 잠, 어둠에 더 무게를 실어서 읽어볼까 합니다. [시간의 서]가 겨울 편으로 끝나는데, 겨울과 닮은 밤을 주제로 한 책을 이어서 읽으니 그 배치가 참 절묘하지요!
쿠쿠샘 글을 읽으니 벌써 전생이 되어버린 기억이 되돌아 오는 듯요. 삼베옷만 걸치고 겨울을 나야하는 농부가 봄이 되자 등에 쬐는 햇빛이 어찌나 따뜻하던지, 군왕에게 그 햇빛을 바치자고 한다는 뜻에서 나왔다는 '야인헌폭'. 햇빛을 쬔다는 '부훤'. 이는 백거이의 (겨울 햇빛을 쬐며)라 노래에도 나온다죠. 쿠쿠샘 덕분에 다시 찾아보며 잠시 전생을 즐겨보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