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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에 대한 경계
영아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동정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 동정은 그것이 정말로 고통을 낳는 한 유해한 감정에 사로잡혀 자신을 상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나약함이다. 동정은 이 세상의 고통을 증대시킨다. (p156)
동정을 받을 경우 사람들은 모든 덕을 완전히 상실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동정을 베푸는 것은 경멸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p158)
동정은 결국 삶을 유지하는 힘으로서 새로운 가치를 갖게 된다. 동정은 역겨움과 공포 때문에 삶을 내팽개치는 것이 낫게 보일지라도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을 주는 것이다. 동정은 쾌락을 포함하고 우월함을 적게나마 맛보게 하는 감정으로서, 자살의 해독제가 된다.(p158)
행위의 원리인 동정은 ‘타인이 겪고 있는 재난 때문에 타인이 괴로워하는 그대로 괴로워하라’는 요구와 함께 다음과 같은 사태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 즉 자아의 관점은 과장되면서 무분별하게 타인, 즉 동정하는 사람의 관점도 되어야 하고, 이와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자아와 타인의 자아 때문에 괴로워해야 하며, 우리 자신의 무거운 짐을 가능한 한 적게 하는 대신 우리 자신에게 자발적으로 이중적인 불합리의 짐을 지우게 될 것이다. (p159)
나는 동정 받는 것이 자존심 상했었다. 그런 상황을 피하거나, 나에게 동정의 말을 건네는 사람의 말을 거절하거나, 지속적으로 그렇게 나를 대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거리를 두었다. 동정받는 것의 불쾌함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타인에게 될수록 동정의 말을 하지 않게 되었고, 동정하는 분위기가 있으면 그런 상황의 공간에도 거리를 둔다. 또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비꼬아 동정의 말을 건네기도 했던 것은 내가 상대를 공격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나에게 동정은 직감적으로 일어나는 감각이 하는 거부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런데 니체는 동정에 대한 나의 불쾌감의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동정은 경멸과 같은 것이고, 동정을 하는 행위는 타인보다 낫다는 우월감을 맛보게 해주며, 결과적으로 세계의 고통을 늘리고, 불합리한 짐을 동정을 행하는 스스로에게 지운다는 것이다.
나와 동등하다 여겨지는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겪고 있을 때 사람들은 동정하지 않는다. 내가 조금이라도 낫다고 생각하거나 생각하고 싶은 사람을 대상으로 동정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스스로 우월하다는 생각으로 힘을 느낀다. 스스로를 세상에 구현하기 어려운 사람이 힘을 느낄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랄까. 그러므로 ‘나는 동정심이 많다.’라는 말은 의심해보아야 한다. ‘나는 동정심이 많다.’는 말은 ‘나는 힘이 없으며, 상대를 무시하고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