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침울했던 한 주가 지났네요. 현주쌤께서 큰 타격을 받으셨죠. 저 침울한 뒷모습이 느껴지시나요. 그렇다고 저희 마음에 안 든다고 대통령을 바꿀 수도 없죠. 아주 근소한 차이긴 했지만, 어쨌든 국민의 절반이 선택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지도 그리기’ ‘질문’하는 것 아닐까요? 가령, 저는 이번 대선 결과를 보고 왜 국민의 절반이 윤석열을 뽑았는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이재명을 당선시키기 싫어서 찍은 건지, 윤석열이란 사람이 대통령이 됐을 때의 한국의 모습을 기대하며 찍은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다만 트럼프, 푸틴 같은 사람들이 지도자로 등장하는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다음 시간에는 《역사학의 거장들》에서 ‘요한 하위징아’와 ‘찰스 비어드‧제임스 로빈슨’을 읽어 오시면 됩니다. 《세계의 역사1》에서는 13~14장을 읽어 오시면 돼요. 이번 세계사 입 발제는 제가 맡을게요. 간식은 현주쌤께 부탁드리겠습니다~
막스 베버, 역사학의 거장이 된 사회학의 창시자(1864~1920)
마르크스에 이어 ‘역사학자’가 아니면서 역사학에 영향을 끼친 거장이 이번에도 등장했네요. 바로 막스 베버입니다. 대표 저서로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있고, 1919년 말년에 강의한 《직업으로서의 학문》과 《직업으로서의 정치》도 유명하죠. 자세히는 아니지만, 역사학자들을 공부하면서 근대 이후에 굵직한 학자들은 한 번씩 훑어보게 되는 것 같아요. ㅋㅋ
베버는 사회학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간주됩니다. 그 이유는 베버가 당시의 사회 문제들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사용했던 방법론들이 이후 사회학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읽으면서 어떤 방법론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따라가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책에서는 ‘이상형(Idealtypus)’, ‘카리스마적 권위’, ‘현실학문’ 같은 개념들이 소개됐는데, 이것들은 나중에 베버를 공부할 때 깊이 이해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일단 저희는 베버가 역사학에 영향을 끼친 지점을 위주로 읽었습니다.
베버는 “역사에서 정신이 작용하는 방식을 연구”했습니다.(159) 앞서 공부했던 마르크스 같은 경우에는 물적 토대, 그러니까 생산 수단의 발전을 중심으로 자본주의를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베버는 마르크스의 분석을 비판하면서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정신’에 주목했습니다. 물론 베버가 단순히 정신에 의해서만 자본주의가 형성되고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 건 아닙니다. 그의 분석은 “저 ‘정신’이 전 세계에 질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양적으로 팽창하는 과정에서 종교적 영향이 함께 작용을 했는지, 했다면 얼마나 작용했는지, 그리고 자본주의에 토대를 두는 문화의 어떤 구체적인 측면이 종교적 영향에서 유래되는지”를 규명하는 것이죠.(161)
실제로 베버의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아주 간략한 설명임에도 불구하고 납득이 되더라고요. 베버는 두 가지 측면을 주목했습니다. 하나는 청교도인들이 자신이 구원받았음을 자신의 부유함에서 확인하고, 부유함-구원을 지키기 위해 금욕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청교도적 삶을 하나의 ‘직업이념’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베버는 이러한 청교도적 인생관으로부터 ‘근대 경제인간’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말하죠.
여기서 베버는 역사를 서술할 때 모든 사회와 문화를 단일한 기준 속에서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각각의 사회마다 발전하게 된 일련의 인과가 있고, 사회학자(그리고 역사학자)는 “어떤 영역이,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합리화되었는가”를 분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166) 풀어서 말하면, 지금 이러한 현실이 만들어지기까지 개별 현상들의 상관성을 분석하는 한편, 현실이 지금과 같이 된 이유를 분석한다는 거죠.
베버 역시 앞서 소개됐던 거장들과 마찬가지로 ‘역사’ 자체에 대한 고민이 따로 있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는 당시 자신이 살았던 ‘사회’를 어떤 관점에서 분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절대적 법칙이 작동하는 역사’를 넘어갔을 뿐입니다. 베버가 정확히 어떻게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역사적 정신이나 법칙’을 넘어갔는지는 아직 정리가 잘 안 됐는데요.^^;; 대략 학문을 통해 정치적 목표설정에 기초가 되는 규범들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상이한 가치와 목표들 사이의 불일치를 조금씩 해소해나갈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학자로서 유념해야 할 책임과 윤리는 어떠한 규범도 절대적으로 확립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여기서 인식의 문제가 같이 제기되는 것 같은데...).
베버가 역사학의 거장으로 소환된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작업이 ‘있는 그대로의 역사’, ‘객관적 역사를 서술할 수 있는 정신’을 다시 소환하려는 의지와 끊임없이 싸웠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기》의 한 대목을 읽으면서 ‘곧 죽어도 거짓된 것을 기록하지 않는 것’이 사관 정신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때 제가 이해한 사관 정신은 어떻게 보면 객관적 역사를 기록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네요. 역사를 쓸 때의 책임과 윤리가 무엇인지 계속 고민하게 됩니다.
미하엘 로스톱체프, 고대사의 이해를 확장시킨 선구자(1870~1952)
로스톱체프는 한국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거장입니다. 하지만 역사학계에서는 선구자적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런데 막스 베버를 읽고 로스톱체프를 읽으니까 느낌이 사뭇 달랐습니다.
지금의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로스톱체프는 1차 세계 대전부터, 러시아 혁명, 2차 세계 대전을 모두 겪었습니다. 그런데 로스톱체프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전통적인 의미에서 역사학자로서 살았습니다. 거의 50세가 되던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1918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공산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고, 1927년 지금의 시리아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두라-에우로포스 탐사를 통솔했죠. 어떻게 보면 저희가 이미지로 떠올릴 수 있는 역사학자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로스톱체프의 연구 또한 다른 식으로 현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많은 비판을 받긴 했지만, 유물론적 관점을 거부하고 경제적 계급 관계의 대립 속에서 공산주의, 자본주의, 사적 소유 같은 것을 나름 설명하려고 했죠. 그것은 당시 러시아 역사가들의 공통 문제의식이었던 “지주와 농민들의 신분, 국가와 단체들과 개인의 관련성, 도시와 농촌 사이의 관계, 귀족과 부르주아지와 농민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규명으로부터 비롯된 분석이었습니다. 그 분석이 지금에 와서 그다지 설득력이 있지 않더라도 역사를 공부하는 이상 현실과 떨어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때 현실은 무엇이고, 어떻게 떨어지지 않는지는 더 생각해야겠지만요.
로스톱체프는 고대사가입니다. 역사학계에서 위대한 업적으로 다뤄지는 그의 연구는 “헬레니즘 동부와 고대 서부를 연결하는 관계”를 발견한 데 있습니다.(184) 그가 거장으로 이름을 떨친 저작은 《로마제국의 사회경제사》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헬레니즘 제국과 로마 제국 사이의 경제적‧사회적 연결성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로스톱체프 자신에 따르면, 로마제국의 몰락과 전복을 서술하고 설명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으나 자신처럼 경제와 사회를 하나로 통합한 서술을 없었다고 하죠. 실제로 로스톱체프의 저술이 높이 평가되는 이유는 그 분석내용보다 사회경제사라는 분야를 개척하는 데 있어서 엄청난 자료들을 최초로 규명했다는 점에 있다고 합니다. 그는 사료 부족으로 포기했지만, 여력이 있었다면 “동방과 서방에서의 고대 자본주의의 역사를 서술”할 것이라고도 했죠.(187) 여기서 초점을 ‘자본주의’에 맞추지 않고 ‘동방’에 맞추면, 로스톱체프의 관심은 ‘로마’가 아니라 ‘로마를 포함하는 여러 제국들 간의 상호영향’을 밝혀내고자 하는 데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뭐가 거장이라 할 만한 것인지 이해하는 데는 결국 실패한 것 같습니다. ㅠㅠ 하지만 계속해서 역사학자들이 생각한 ‘역사’가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지네요. 지금껏 저희가 읽은 거장들은 매우 뜨거운 마음으로 역사를 서술한 것 같단 말이죠.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으면 역사를 쓰는 동력 자체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나온 두 사람 다 격변의 시기를 보냈네요. 시대가 불안정할수록 자신들의 길을 묻게 되고, 그게 '역사학'이었다는 게 의미심장하네요. 아니면 후대에 웬만한 철학들을 다 역사학으로 묶은 걸까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지금 시대에 역사를 공부한다는 게 무엇인지 계속 되새기게 됩니다. 일단 마음을 다잡는 의미에서 각자 좀 더 지도 그리기에 매진합시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