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단위를 마구 넘나드는 가운데 일주일이 이렇게 길다고 느끼는 걸 보면 대통령 선거의 후폭풍이 엄청 컷나 봅니다. 은주샘이 안 계시니 더 우울하고요. 우울해도 밥과 스파게티는 열심히 먹었고 잠을 깨려고 산책도 다녀왔습니다. 규창샘은 걸으며 산책 한 구절을 외워 우리에게 커피쿠폰도 선물했어요.
벌써 세계의 역사 1권이 마무리 단계네요. 시작이 반이라더니...... 이슬람과 중국, 인도, 유럽에 대해 공부했어요.
이슬람은 알라에 대한 ‘절대귀의. 주요 계율은 하루 다섯 번의 기도, 희사(喜捨), 일생에 적어도 한 번은 메카를 순례하는 것, 술과 돼지고기를 먹지 말 것, 매년 한 달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단식하는 것이다.
마호메트는 메카에서 출생했고 622년에 한 부족으로부터 분쟁조정을 요청받고 메디나로 떠나면서 정치지도자이자 입법자가 되었다. 개종자들이 꾸준히 증가하자 메디나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해결책으로 메카 대상을 습격했고 승리를 거두자 메카로 귀환했다. 이슬람은 처음 시작은 전쟁으로 통일했지만 대부분은 외교와 담판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마호메트의 후계자는 친구이자 동지였던 아부바르크였고, 다음 지도자는 경건하고 헌신적이며 탁월한 군사지도자이자 행정가인 우마르였다. 우마르의 암살로 위기가 왔지만 우마리아 집안에서 칼리프를 승계하며 우마리아왕조가 시작되었다. 우마리아 왕조는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정했다. 그들은 내란으로 멸망했다. 아바스 왕조가 뒤를 이었고 메소포타미아의 바그다드를 수도로 정했고 아랍의 부족집단들은 해체되었고 사산조 페르시아를 답습했고 군대도 이란인과 투르크인 용병이 주축이 되었다. 아바스 왕조는 종교적으로 중요한 모든 문제는 울라마라고 불리는 전문가 집단에 의해 결정했다. 아바스 왕조의 정책에 의해 결정된 틀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는 대다수는 수니파라고 불린다. 자신들의 이상에 부합하지 못하는 모든 기성 체제를 부정하는 집단은 시아파로 부른다. 아바스 왕조의 약점은 시아파의 불만으로 반란으로 표출되는 것과 스텝지역의 야만족의 침입이다.
이슬람이 강해지면서 힌두교나 그리스도교들도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정의할 수밖에 없었다. 극서에서는 켈트, 게르만, 슬라브족들이 그리스도교권으로 들어왔고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투르크 부족은 유대교나 마니교를 택했다. 더 서쪽의 게르만인이나 야만족은 볏쟁기를 발명해서 북유럽 평원의 삼림을 경지로 바꿨다. 동아시아는 노동집약적인 경작법으로 경지를 계속 확대시켰다. 한국인은 불교를 일본인은 수입할 수 있는 중국문화의 모든 요소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윈난은 중국의 문화적 위성국이 되었고 티벳은 지리적 위치를 이용하여 종교는 인도에서 문화는 중국을 받아들였다.
600년 이후 문명세계의 북측과 남측 전역에서 문명화된 생활양식이 광범위한 지역으로 확대되었고 문화적 합성과 혼성이 다수 발생했다. 우선 중국은 589년에 수왕조가 탄생했지만 내란으로 618년에 당나라가 지배권을 장악했고 960년에 송왕조로 이어졌다. 중국의 유교는 상인을 사회의 기생자로 여겨 교역은 위구르인이나 아랍인이 도맡아했다. 교역이 발달했음에도 직인이나 상인의 재능과 기술은 지주-관료 계급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발달했다. 불교는 당초에 공인되었으나 8세기에 대대적인 탄압을 통해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만 살아남았다. 송 왕조에는 고도로 발달된 철학적 방법으로 고전을 정밀하게 재해석하려는 학풍을 가진 신유학이 득세했고 유능한 인재를 뽑는 과거제도가 생겼다. 이 선발방식은 관료의 우수한 능력을 보장했고 사회적으로 신분의 유동성이 생겼다.
인도는 715년에 무슬림이 인도북서부의 신드 지방을 정복했고, 인도양 항로에 대한 지배권도 장악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나 힌두교는 무슬림과 평화적인 방법으로 대처하려 했다. 소수의 인도철학자는 우파니샤드의 지적 전통을 체계화하는 작업에 착수해서 우상숭배로 재단하는 무슬림의 비난에 응수할 근거를 제공했다. 이 시대 인도 사회는 지리적으로 크게 팽창했다. 그렇지만 인도인들에 대한 자료는 부족하다.
유럽은 첫 번째로 훈족의 침입으로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었고 로마까지 영향을 끼쳤다. 두 번째는 유스티니아누스가 사망한 직후 아바르족이 남부러시아에서 서진하여 헝가리평원으로 몰려온 것이다. 세 번째는 정치적, 문화적으로 분열된 그리스도교권이다. 남러시아에서 도주한 전투집단이 헝가리평원에 침입하여 약탈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어 온 마자르인 또는 헝가리인이다.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국가들이 비잔틴 해군을 전멸시켰서 지중해 지방의 세력균형이 달라졌다. 바이킹 해적의 습격도 시작되었다. 1000년경은 서유럽과 인접국가들의 사이가 역전이 되었다. 이탈리아 해군이 성장해서 무슬림과 싸울 수 있게 되었고 러시아, 헝가리,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야망이 큰 왕들이 문명생활의 필수요소를 보급하는데 종교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 결과이다.
무슬림과 야만족의 압력은 중국과 인도보다는 유럽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중국은 큰 혼란없이 유교의 전통으로 회귀하며 자기 길을 걸어갔다. 인도는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토착종교를 고수했다. 유럽은 적에게 반격을 가했고, 그 결과 제도를 변용하고 기술을 향상시켰다. 이슬람, 중국, 인도는 유럽 문명보다 훨씬 우수했다.
600년에서 1000년의 유럽과 아시아를 두 시간에 공부했습니다. 처음에는 맥닐이 민족을 야만족이라 부르는 것에서 주변부에 사는 민족을 무시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다시 읽으며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지금은 사라져서 없지만 그런 민족이나 공동체들이 존재했다고 말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저자의 약간 편파적 시선이 조~금 불만스럽긴 하지만...! 확실히 대륙 전체를 동시대적으로 읽으니까 재밌네요. 가령, 지금의 중동 지역에서는 상인이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만들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는 배척됐죠. 그러면서도 학풍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조금씩 닮아가는 것도 신기하고요. 그리고 읽을수록 세계를 움직인 건 역시 스텝지대의 유목민들이었다는 주장이 확실해집니다. ㅋㅋ 변방에서 떠돌며 살아가는 이들을 무시할 수 없어요~ 어? 지금의 노마드들이 그런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