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입니다. 매화가 폈고, 그것을 따라잡으려는듯 여기저기 봉오리가 맺혔네요. 그런데 벌써 저희는 1학기의 마지막 시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역사학’에 대해 알게 되고, 세계 지도도 어떻게 그려야 될지 감을 잡게 됐네요.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합니다!
다음 주에는 《역사학의 거장들》에서 조지프 니덤, 페르낭 브로델, 모지즈 핀리 이렇게 세 명을 공부하고, 오후에는 《세계의 역사1》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간식은 은주쌤께 부탁드릴게요!
마르크 블로크, 학문적‧정치적 진실을 보증하는 지식인(1886~1944)
《역사학의 거장들》 덕에 저명한 학자들을 대략 훑어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마르크스와 베버는 거장들의 거장급이라 할 만큼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했죠. 이들과 같은 급(?)은 아니지만, 역사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끼친 역사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마르크 블로크죠.
일단 마르크 블로크에게서 가장 주목하고 싶은 점은, 그가 군인이자 레지스탕스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모두 참전했습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는 53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전투에 참여했고, 프랑스가 독일에게 패배하며 군대가 해산됐을 때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했죠. 레지스탕스 활동은 1944년 총살당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레지스탕스 활동 같은 것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 역사학자임에도 매우 뜨겁게 시대를 살았을 것 같더라고요. 올리비에 뒤믈랭이 쓴 《마르크 블로크》 전기가 있던데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블로크는 뤼시앙 페브르와 더불어 ‘아날학파(École des Annales)’의 창시자로 불립니다. 블로크는 역사를 서술할 때 ‘회고적 투사를 피하는 것’과 “역사라는 연속체로부터 한 형세만을 뽑아내어 그것을 최종적인 것으로 확정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는 것을 매우 경계했습니다.(245) 전통적으로 역사학은 정치, 전기,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돼왔습니다. 가령, 누가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지, ‘국가’ 같은 공동체는 어떻게 발생했는지 등을 질문하면서 특정 개인이나 특정한 사건을 중심으로 분석해왔죠. 그러나 블로크는 정치가 아니라 사회경제로,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이야기적 서술에서 구조적 분석에 대한 서술로 역사의 초점을 새롭게 맞췄습니다.
생겨난지 두 세기도 지나지 않았지만, 아마 역사학는 이미 역사학계만이 아니라 지식인들 전반에게 고리타분하고 별로 실재적이지 않은 학문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역사학은 당대를 포착하고 문제시하는 관점으로부터 성립됐죠. 저희는 정리된 거장들의 문제의식만을 따라갔지만, 아마 그렇게 정리되기까지 역사를 왜 그렇게 봐야 되는가에 대한 무수한 비판들이 있었을 것 같네요. 블로크가 새로운 관점으로 역사를 서술하게 된 것도 그런 맥락과 맞닿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자연과학자들이 ‘실제’를 새롭게 이해한 것처럼, “아직 오래되지 않았고 불안한 학문을 대변하는 자로서 역사가들도 새롭게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250) 그리고 역사학 또한 “적당한 ‘숙련’교육과 전문적 경험을 필요로 하는 하나의 진정한
과학이라고 강조”하죠.(251)
책에서는 《기적을 행하는 왕》이 나오는데요. 블로크는 ‘기적의 역사’와 ‘기적을 믿는 역사’를 분석합니다. 그러니까 중세시대에 행해진 특정한 기적이 출현하게 된 역사, 게르만적 요소와 로마적 요소 기독교적 요소가 결합한 역사와 그러한 기적이 실제한다고 믿게 된 집단의 의식의 역사를 분석하는 것이죠. 이런 식의 역사 서술은 그동안 전통적으로 서술되었던 ‘정치, 전기, 사건’ 중심의 역사와 매우 상이합니다. 어떻게 보면 중요하지 않는 역사에 괜히 주목한다고 볼 수도 있죠. 그러나 블로크는 사람들이 기적을 믿는 집단적 오류가 인간의 역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오류 대부분보다 위험한 것인지를 반문하죠. 크. 역사를 공부하는 게 전혀 고리타분한 게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른스트 칸토로비츠, 20세기의 긴장과 비극이 투영된 중세사가(1895~1963)
‘역사학’이란 학문 분야는 ‘국가(nation)’라는 개념과 동시대에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국가’를 개념화하는 방식이 지역마다 다르듯, 역사학이란 학문 분야를 문제 삼는 것도 지역마다 달랐습니다. 독일의 역사학, 프랑스의 역사학, 영국의 역사학 등등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각자 고유한 역사학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지역별로 역사학자들을 묶어봐도 재밌을 것 같네요.
그런 점에서 칸토로비츠는 독특합니다. 그의 대표작은 《왕의 두 몸》인데요.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왕은 자연적인 의미에서 필멸하는 몸과 정치적인 의미에서 불멸하는 몸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얘깁니다. 칸토로비츠의 삶이 그리는 궤적도 대립되는 두 개의 국면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국가에 신실한 독일인이었으나 게르만으로 인정되지 않는 유대인이었고, 인민공화주의자들을 진압하는 의용군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보수주의자였으나 미국에서는 반공서약을 거부한 민주적 자유투사가 – 그의 본의와 무관하게 - 되기도 했죠. 중요한 국면들이 서로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니, 여러모로 참 다이나믹한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책에서는 칸토로비츠를 “대중으로 대변되는 근대에 대한 항변”이라고 정리했는데요. 그에 대한 설명을 따라가면서 여러모로 ‘귀족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그는 매우 세련된 인물이었습니다. 주변에서는 그를 “부드럽지만 남자답게 확고하고, 사고적이며, 우아한 복장과 몸짓과 언어”를 구사하는 “플뢰레 펜싱 선수”답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모든 것을 거의 노래하듯이, 고대 시처럼 장음으로 하는 단조로운 가락의 시가 같았다”고 증언합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명예를 굉장히 소중히 여겼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때의 명예는 단순히 개인적인 것에 국한된 것이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후에 나치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 유대인을 배제하기 시작했을 때는 “모든 독일 유대인이 자신의 명예가 일상적으로 침해받는 것을 느끼는 한” 교수직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품성은 역사학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관됩니다. 그는 ‘카이사르’, ‘프리드리히 2세’ 같은 인물들의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 전체 국민의 일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지도자에 대한 열망은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점점 더 사라져가는 시기에 진행”되었습니다.(264) 이러한 논의는 당대의 “교육 엘리트가 대중사회의 문화적·정치적 평준화를 우려하는 것에서 비롯된 결국 반(反)계몽주의적인 논박”과 연관됩니다. 즉, 그는 랑케와 달리, 역사를 통해 계몽을 꿈꾸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정신적으로 계몽되는 과정에서 모든 게 평균적이게 될 것이라는 것, 고유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소거되는 것을 우려했죠. 그는 국가를 예술가들의 작품이라 간주했고, 예술가들의 국가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이런 관점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기보다 적어도 역사는 그 자신의 고유한 힘의 발현이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문헌을 해석하는 관점, “즉 바로 역사적 심상의 획득이 학문일 뿐 아니라 예술이기도 하다”고 확신했습니다.(265)
오늘날에 와서 칸토로비츠는 새롭게 읽히고 있습니다. 공동체와 정당성, 사회적 현실을 형성하는 요소로서 신화를 중요하게 분석한 역사가로서 말이죠(《황제 프리드리히 2세》와 《왕의 두 몸》). 솔직히 말하면, 이 지점에서는 잘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왕의 두 몸》에서 주권이 구성되는 관계를 분석했다고 하는데, 칸토로비츠 말고 그런 작업을 진행한 사람들이 이미 많지 않았나 싶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주권을 분석한 역사가보다 ‘모든 것이 평준화시키는 근대를 거부한 역사가’였고, 역사 서술은 고유한 힘(혹은 정신)을 발휘하는 활동이었다는 게 남네요. 단순히 ‘문화사’를 강조한 게 아니라 예술로서의 역사, 귀족적으로 고귀한 정신을 발휘하는 역사가가 칸토로비츠의 ‘역사학’인 것 같습니다. 니체(1844~1900)와 시대가 겹치지는 않지만, 니체가 역사학계에 있었다면 아마 칸토로비츠 같지 않았을까 싶네요.
역사는 ‘지난 것’에 대해 서술한다는 점에서 숙명적으로 ‘고리타분하다’는 평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사를 서술할 수밖에 없는 것도 동시에 안고 있는 숙명인 것 같습니다. 이때 역사를 서술하는 정신이란 무엇일 수 있고, 무엇이어야 할까요?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는 질문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