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즈모폴리터니즘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모든 인간 개개인이 특정 국가나 지역에 소속됐다는 협소하고 배타적인 의미의 시민의식 안에 머무르지 않고, 그 경계를 넘어 ‘우주의 시민’이라는 의식을 심어주는 ‘세계화 시대의 윤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대 문명의 탄생지인 ‘서아시아의 코즈모폴리터니즘’에 그 정의를 액면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아시아의 코즈모폴리터니즘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기원전 3500년과 기원전 3000년 사이에 티그리스・유프라테스 유역에서 최초의 문명화된 복합사회가 출현했다. 그 후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꽃을 피우며 서아시아가 문명세계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1700년 직후부터 약 300년 동안 야만족이 문명세계를 짓밟았다. 야만족이 문명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전쟁기술의 중대한 진보, 즉 전차전 기술의 완성과 철기의 도입과 불가분의 관계 때문이었다. 전차전 기술의 발전으로 전차전사가 등장하고 기동력・화력・무구(武具)라는 전투의 3대 요건을 갖추어 야만족은 군사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야만족이 전차를 완성했지만, 서아시아의 문명세계 또한 그것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지리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서로 실질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문명세계의 주변주에 위치한 인도와 크레타 문명이 사라져버리고 야만족의 문명양식이 그곳에 구축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서아사아의 문명세계를 지탱하던 사회구조가 모조리 붕괴된 것은 아니었다. 야만족은 피정복민의 문화를 향유하는 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한 서아시아 문명세계의 특징으로는 ①제국 통치술의 발전, ②알파벳 문자의 발명, ③윤리적 일신론의 출현을 들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야만족의 문명뿐만 아니라 ‘고대 문명의 미개함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서아시아의 문명세계의 주요 특징과 야만족의 전쟁기술 진보는 현재 우리의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군사적 토대의 기반이 되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지점에서 과연 ‘역사는 진보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든다. 근대적 역사 서술의 개척자, 에드워드 기번의 말처럼 “모든 역사적 과정은 파괴와 변형과 재건을 동시에 의미하고, 모든 쇠퇴 속에 진보의 기회도 놓여 있”는 것이 아닐까?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직선의 형태로 흐르지 않듯이 역사도 과거, 현재, 미래 순으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다. 언급했듯이 오히려 지금 현재의 체제가 고대 문명에 기반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역사적 과정은 파괴와 변형과 재건을 동시에 의미”한다는 것에서부터 서아시아의 코즈모폴리터니즘에 대한 접근을 시도해볼 수 있다. 코즈모폴리터니즘은 서아시아의 문명세계와 야만족 문명의 융합 과정에서 일어난 파괴와 변형과 재건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야만족 침입자들은 서아시아의 문명을 배척하지 않고 그것에 동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아시아의 고대 민족들은 야만족 지배자들에게 호락호락 복종하지 않았다. 전차전의 기술을 차용한 고대 민족들은 야만족에게 대항하기도 하고 때론 그들을 몰아내기도 하면서 스스로 서아시아의 제국 (히타이트, 아시리아 제국 등)으로 부상했다. 이 시기의 전차전사들은 코즈모폴리턴한 귀족적 기사도적 예절을 갖고 있었지만, 농민과 종복에 대한 무자비한 억압을 가한 시기이기도 했다. 반면 서아시아 전역과 이집트, 인도 북서부를 지배했던 페르시아 제국이 서아시아의 문명 중심지에서 최초로 시도한 것은 병합된 모든 민족의 지역적 자유와 전통종교 및 법률체계의 부활이었다. 페르시아 제국은 이러한 관용적 태도로 오랜 기간 광활한 영역을 통치해갈 수 있었다. 제국은 서로 다른 문명을 배제하는 대신 차용, 변용하면서 코즈모폴리턴한 문명을 형성해나갔다.
마지막으로 인도 문명의 카스트 제도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자. 카스트 제도는 계층 간의 뚜렷한 서열 구도가 있다. 그런 집단은 서로 배타적이면서도 그러한 성격으로 인해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이방인과 같은 집단은 새로운 하나의 카스트로 살아가면 그만이었다. 카스트 제도의 배타적인 관습이 이방인 스스로 자신들의 고유한 생활방식을 유지하도록 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국가보다는 카스트에 속해 있다는 생각이 강해 통치자나 왕에게 충성을 바치지는 않았다. 이러한 독특한 인도의 카스트 제도로 인해 생겨난 다종다양한 관습에 대한 관용과 포용은 인도 특유의 종교적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확실히 서로 섞이면서 영향을 미치는 흐름을 따라가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아무래도 전쟁이 거의 종식된 시대에 살고 있는 탓인지, 누가 누구를 공격하고 파괴한 '침략 행위'가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는데요. 역사에서는 그런 알량한 도덕적 휴머니즘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못 보던 적이 출현했다는 것은 지리적 한계가 극복되고 있다는 얘기이고, 곧 새로운 생활양식이 도입된다는 것을 의미하죠. 역사적 감각을 익히는 게 편협한 도덕관념을 극복하는 데에도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막연하게 '코스모폴리터니즘'과 '제국'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싶네요. '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했을 때, 그때 세계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시하는 것일까요? 자신이 속한 특정 지역, 국가를 벗어나는 것은 어떤 인식체계의 변환 속에서 이루어지는 걸까요? 음... 이번에도 풀리지 않는 문제를 안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