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천천히 지도를 그려나가고 있는 마이너 세계사 세미나입니다. ㅋㅋ 아직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래도 조금씩 지도의 꼴이 갖춰지고 있지 않나요? 이제 아프리카를 넘어서 저희는 지중해-유럽을 그리고 있습니다. 확실히 지도를 그리다 보니 대륙과 대륙의, 국가와 국가의 관계를 머릿속에 집어넣게 됩니다. 이번에 아프리카-지중해를 그리다 보니 아프리카 대륙의 위에 있는 국가들-이집트,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을 외우게 되더라고요! 아직은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정도만 외우지만, 나중에 저기에 여러 가지 정보들을 더 채워 넣어야겠죠? 아휴, 갈 길이 머네요!
다음시간에는 《역사학의 거장들》에서 막스 베버와 미하엘 로스톱체프를, 《세계의 역사1》에서 10장~12장을 읽어 오시면 됩니다. 입 발제는 은주쌤과 제가 힘을 모아서 할게요! 간식은 영님쌤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에 공부한 거장을 정리하기에 앞서 잠시 《역사학의 거장들》에서 거장들을 선정한 기준에 대해 환기해보죠! 책을 기획하고 여러 원고를 엮은 루츠 라파엘은 “21세기 초에 역사학의 개념, 이론, 방법론, 작업 유형에서 대표적인 본보기”가 될 만한 사람들을 위주로 선정했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현재적 영향력’, ‘자극’, ‘대작’, ‘시대경험’ 네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죠. 이 중에서 ‘자극’은 전통적 의미에서 역사학자로 분류될 수는 없지만, ‘역사’를 서술하기 위한 방법, 주제, 개념이 변화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거장으로 카를 마르크스, 막스 베버, 미셸 푸코가 있습니다. 이들은 ‘역사학’의 바깥에 있지만, 누구보다 역사학을 변혁시킨 인물로 꼽히죠. 이 중에서 마르크스를 이번에 공부했죠.
카를 마르크스, 임박한 사회적 변혁을 역사적으로 유추하다(1818~1883)
여기저기서 마르크스를 엿보듯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요. 대체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공산주의자로서의 면모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공산주의를 꿈꾸었던 기반인 역사와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는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었네요.
마르크스는 스스로 ‘역사학자’라 생각한 것 같지도 않고, ‘역사학’이란 분야에 그다지 관심을 가졌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책에서도 처음부터 마르크스의 관심사는 ‘사회적 불평등’이었다고 말하죠. 이후 행적을 봤을 때도, 그는 끊임없이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신문기자적 면모를 보입니다. 그러니까 사회학자 혹은 공산주의자-운동가의 성향이 짙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글이 역사학에 자극을 줄 수 있었을까요?
부제에서도 나오듯이, 마르크스는 부르주아의 혁명으로부터 공산주의 혁명을 그렸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에 자본주의가 이제 막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죠. 그런데 그가 보기에 자본주의가 발생한 계기는 프랑스 혁명에 있었습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 계급과 귀족 계급 사이에서 일어난 계급 투쟁이었고, 부르주아 계급이 승리함에 따라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할 계기가 마련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부르주아 계급이 주도한 프랑스 혁명으로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한 것처럼,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주도한 공산주의 혁명으로 공산주의가 도래할 것이라 예상했죠. 책에서는 마르크스의 예언이 아니라 그의 분석 방식에 주목합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사회경제적 변동을 기술 및 경제를 둘러싼 산업관계 전반의 맥락 속에서 파악합니다. 즉, 마르크스는 계급 투쟁에 따른 사회 구조의 변혁이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이해한 것이죠. 이렇게 ‘사건’이나 ‘인물의 결단’이 아니라 생산 수단이나 생산 수단 같이 물적 토대의 변화에 주목하는 역사 서술은 마르크스가 최초였습니다. 그가 여러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딱히 ‘역사학’이란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역사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것은 물적 토대를 분석하는 방식을 제공했기 때문이겠죠. 실제로 마르크스의 방법론은 계속해서 다시 읽히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자본주의를 분석하던 마르크스의 방법이 ‘지구화(혹은 글로벌화?)’라는 새로운 문제의식 속에서 일신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죠. 대표적으로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는 계급 투쟁의 구도를 ‘제국’과 ‘대중’의 대립으로 설정하고 있죠.
마르크스는 “정치적 참여와 더불어 사회사와 경제사를 광범하게 고려하면서 이미 국민경제학과 사회학의 중대한 지반으로 작용하고 있던 역사서술에 회의적”이었습니다.(142) 지금까지 읽은 역사학의 거장들의 공통점을 꼽자면, 모두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새로운 역사서술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서술의 필요성은 ‘더 나은 시대’를 꿈꾸는 데서 비롯됐습니다. ‘역사서술에서의 비당파성’을 주장했던 랑케조차도 ‘국민의 교화’라는 나름의 목적이 있었죠. 그렇다면 역사는 애초에 ‘진보’를 상정할 수밖에 없는 걸까요? 진보가 아닌 다른 동력으로 역사를 생각할 수는 없을까요? 개인적으로 맹자의 일치일난(一治一亂)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음... 좀 더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예술을 역사적으로 맥락화한 문화사가(1818~1897)
앞선 역사가들에 비하면 부르크하르트라는 이름은 참 생소한데요. 미술사·문화사적으로 중요한 선구자로 꼽힌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생애는 사실 이렇다 할 기록들이 별로 없어요. 어떻게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고, 어떤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역사서술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알 수 있는 것은 니체를 비롯해서 여러 학자들·혁명가들과 교류가 ‘있었다’는 정도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교류를 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책에서도 그가 언제 여행했고, 그 영감으로 집필활동을 했다는 것 말고는 기록된 게 없습니다. 아마 그만큼 담백하게 살았다는 거겠죠? “1860년에 그는 출간을 중단하고 바젤의 평범한 시민들을 위한 강의와 강연에만 집중했다. 1897년 부르크하르트는 그의 고향 바젤에서 세상을 떠났다.”(119) 저는 마지막 두 문장에서 어마어마한 간극이 느껴져요. 한 사람의 생애에서 37년을 이렇게 서술할 수밖에 없도록 살다니...! 참 신기하네요.
부르크하르트는 랑케의 영향을 받아 철저한 기준 속에서 역사적 사료를 선별하지만, 랑케와 다르게 국가의 발생을 설명하기 위한 정치적 사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국가를 포함해서 종교와 문화를 동등한 세 가지 힘으로 간주합니다. 그에 따르면, 그것은 인간에게 세 가지 기본적인 욕구, “정치적 욕구(국가), 형이상학적 욕구(종교), 비평창의적 욕구(문화)”이기도 합니다.(121) 부르크하르트는 이 중에서 특히 비평창의적 욕구, 문화 영역에 특권을 부여합니다. “국가와 종교가 비교적 안정적인 제도화된 통치 및 신앙 체제로 나타나는 동안, 부르크하르트는 여기서 ‘문화’를 여러 가지로 변형된 정신교육으로 이해하고, 이와 더불어 역사적 힘들의 전체 속에서 자발성·가동성 또는 국가와 종교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의 요소로 이해한다. 그것은 언어, 특히 시, 학문과 예술 그리고 단지 물질적인 욕구충족을 넘어서는 모든 ‘자발적인’ 창작, 즉 즐거움과 모든 기술을 의미한다.”(122)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부르크하르트에게는 다른 욕구들보다 비평창의적 욕구가 역사를 움직이는 요소라고 간주하는 듯 합니다.
그의 저작은 각 시대의 예술 양식의 발전에 관한 분석으로 이루어지는데요. 심지어 ‘국가’까지도 하나의 예술품으로서 간주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그 당시에 유행한 경제지상주의나 헤겔주의와 매우 상반됩니다. 그는 각 시대에서 자신의 비참한 실존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고뇌가 예술 양식으로 해소된다고 봅니다. 따라서 그에게 예술 양식의 형성과 발달 과정을 정리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실존을 새롭게 정립하는 기술을 추적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마르크스처럼 “기존에 있던 모든 사회의 역사는 (…) 계급 투쟁의 역사다” 같이 단정해서 말한 것은 없지만, 아마도 “예술은 하나의 세계를 실제의 모습대로가 아니라 어떠해야 할 모습으로 창조해내는 곳에서 자신의 수단을 최고의 방식으로 동원”하고 이러한 일련의 실행 속에서 역사가 움직인다고 본 것 같습니다.
저희는 역사를 공부하고 있지만, 역사를 공부한다는 게 무엇인지 질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네요. 어떤 역사학도 사회사·경제사·문화사 등 건드리지 않는 게 없어요. ‘역사학’의 영역을 특정할 수가 없어요. 역사학은 자신 바깥의 것들과의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역사학’으로 정립되는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막연하지만, 《역사학의 거장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역사를 쓴다’는 게 뭔지 점점 더 궁금해집니다.
아........................ 이탈리아는 그렇다치고 그리스 어쩔? 소크라테스님께서 무덤에서 깨어나실 듯ㅋㅋㅋㅋㅋ
다음 주가 되면 다시 편안하게 주무실 겁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