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이란 것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요. 최근 유럽의 봉건시대와 중국의 송나라 두 역사를 함께 보고 있는데, 재밌는 점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정체성’이 강화됐다는 점입니다. 봉건시대는 서유럽의 대략 9세기부터 13세기까지의 시간을 이야기하고, 송나라의 역사는 10세기부터 13세기까지의 시간을 이룹니다. 서유럽과 중국 모두 중세를 거치면서 ‘유럽인’, ‘중국인’이라는 공통감각이 형성된 것입니다. 상상해보면 ‘유럽인’, ‘중국인’이라는 감각이 형성된 것은 참 신기한 일입니다. 존재하는 것들 사이의 차이를 무화하고 우리는 하나의 ‘유럽인’, ‘중국인’이라는 관념은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걸까요? 마르크 블로크는 ‘서유럽’이라 불리는 ‘로마 게르만 세계’는 완벽한 동질성을 보여주던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서로 다른 속도로, 각 지역마다 다양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다양성을 초월하여 ‘유럽인’이라는 심상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로마 게르만 세계’(서유럽)를 둘러싸고 있던 이질적인 힘 덕분이었습니다. 남쪽에서 이슬람 교도들, 동쪽에서는 헝가리인들, 북쪽에서는 스칸디나비아인들의 침략이 있었습니다. 동시에 세 방면에서 침략이 있었던 사건, 그 사건으로 인하여 철저하게 고립된 서유럽 세계에 ‘유럽인’이라는 정체성이 형성되고 강화된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동시대에 송 나라도 서유럽과 비슷한 처지를 겪는다는 것입니다. 당나라 때 활약하던 무인들을 제거하고 그 자리를 문인으로 채워넣은 송나라는 극심한 군사력 약화를 겪습니다. 그리고 거란과 여진과 탕구트의 침략을 당하게 됩니다. 그렇게 ‘다른’ 것들에 고립되면서 송 나라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강화시키는 겁니다. 이번주에 읽은 부분은 ‘중국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타협할 수 없는 문화적 차이를 경험하면서 ‘우리’와 다른 ‘너희’를 형성하는 모습이 흥미로웠습니다. <하버드 중국사 송>의 저자 디터 쿤은 문화적 정체성의 형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의례를 이야기합니다. 송대 중국인들의 삶에서 중요한 의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혼례’와 ‘장례’입니다. 혼례와 장례가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양자 사이의 영적 유대를 유지시키는 것이 양쪽 모두를 유익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혼인은 연합한 두 성에게 좋은 것이다. 위로는 조상 사당에 봉사하며 아래로는 가계를 잇는 것이다.”(268) 그러나 송 나라를 침략한 거란족은 “자기와 세대가 다른 사람과도 결혼 했고, 과부가 된 형제의 아내와 결혼하는 것도 허용” (282) 됐습니다. 중국인에게 그들의 문화는 충격이었습니다. 중국인에게 형제의 과부와 결혼하는 것은 근친상간이었으며, 자기 항렬 밖의 사람과 결혼하는 것 역시 충격적인 금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국인 가정은 가장이 사망하면 그 가족들은 거의 끝없이 많은 규제를 지키고 또 무덤을 조성해야 했습니다. 시신을 씻고 수의를 입혀 바르게 누이는 염습을 한 뒤, 상복을 입고 매장을 준비하며, 묘비명을 짓고, 묘 자리와 매장 날짜를 택하고, 조문객 행렬을 관리하고, 여러 가지 제사를 올렸습니다. 그러한 절차는 모두 확고하게 정해진 의식을 따랐습니다. 그런 한족 중국인의 눈에 거란족의 장례 관습은 너무나 다르고 이해할 수 없게 보였습니다. 거란인들은 조상의 관습 그대로 사체를 산에 있는 나무에다 올려놓고, 3년 후에 가족이 모여 뼈를 화장합니다. 부모의 죽음을 울며 슬퍼하는 거란인은 약골이라고 여겨졌던 반면, 중국인들은 그러한 극기적 행동은 효성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거란과 송 나라는 이웃하고 있었지만 일상생활에서 그들은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습니다. 거란과 송 나라는 각자 자신들의 문화를 고수했으며, 고대의 문화를 존중하는 송대인들의 관념이 신유학 사상운동의 지지를 받아 타당하며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한족 중국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은 더욱 강화됩니다.
송나라 수도 개봉의 모습을 담은 그림
송나라의 내면과 외부 세계를 탐구하다!
송나라는 내면세계, 정신세계를 탐험한 훌륭한 시가 많았을 뿐 아니라 송대 사대부들은 분위기 있는 풍경화, 풍속화, 인물화, 새와 곤충의 생생한 스케치 그리고 꽃과 과일의 정물 등으로 이루어진 예술 속에 세속화된 세계를 창조하였습니다. 마르크 블로크의 <봉건사회>를 보면, 서유럽은 사방에서 침략해오는 침략자들에 의해 마을이 초토화되고, 폐허가 되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현실을 인식하기보다 내세의 구원을 믿고 기다렸다고 합니다. 중세 송나라와 서유럽의 차이가 있다면, 송나라는 침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문화가 융성하게 발달하고, 현실을 더욱 디테일하고 분명하게 인식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나단 시빈의 말에 따르면, 중국의 과학은 “자연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추상적으로, 객관적으로 생각되는 모든 것”을 포괄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니담의 의견에 따르면 중국 고유의 과학을 최고로 꽃피웠던 시대가 바로 송이라고 소개합니다. 유명한 발명품으로 활자 인쇄, 화기, 나침반 등등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나침반의 발명은 중국 사회를 변화시키지는 않았지만, 항해 도구로서 유럽에 소개되면서 유럽 왕국들을 세계적으로 활약하는 해상 세력으로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당 나라 때만 해도 시는 ‘규제된’ 형태의 운율이 명확하게 제한되어 있었고, 명망 있는 가문들의 후손들만 숙달할 수 있었던 좀 딱딱한(?) 형식에 갇힌 예술이었습니다. 하지만 송 나라에 들어오면서 개혁의 붐과 함께 (그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시의 영역에 있어서도 형식이 과감해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버드 중국사 송>에서는 여러 시인을 소개했는데, 그 중에서 제게 가장 인상적인 시인은 매요신입니다. 그는 단순하고, 하찮고, 평상적이며, 추하기까지 한 일상의 사물과 사건들을 예리한 눈으로 관찰했다고 합니다. 진흙 구덩이 안에 우글거리는 지렁이나 구더기, 이 등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미물들에 대한 시를 씁니다. 이렇게 가까운 일상생활을 주목하는 분위기는 유교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주희는 <근사록>을 지으면서 상세한 일상 경험의 구조와 분석에서 근본적인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음을 예증합니다. + 중국 도성의 변화도 흥미롭습니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보면 하늘과 땅의 조화에 따라서 도시 생활 공간을 만들어내면서 수도의 공간 배치도는 정사각형을 이룹니다. 그리고 천자의 절대적 통치를 나타내야 했기 때문에 도성 건축은 격식에 맞춘 엄정함과 강고함이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도시는 황제의 자리, 문벌 귀족들의 자리, 그 아래로는 훌륭한 족보를 가진 관인층 집안들 등등. 각자의 자리가 구획되어 있었으며, 귀족 계급과 평민 계급이 섞일 수 있는 가능성이 적었습니다. 그러나 송 나라의 수도가 개봉 -> 항주 등으로 옮겨가면서 도시 분위기가 바뀝니다. 이전 왕조들과 달리 관리나 상인, 장사꾼이나 수공업자와 장인을 포함한 모든 도시 주민들이 자금력이 허락하여 구입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자리 잡고 집을 짓고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양한 계급들이 얽히고 섞이며 살아갔던 시대가 송 나라였고, 그러한 가운데 상업이 엄청나게 발달합니다. 동시대의 서유럽은 자기 세계에 갇혀서 밖으로 갈 수 없는 상황과 비교하면 정말 천지차이입니다. 서유럽은 ‘화폐’가 거의 없어서 신하들에게 봉토(봉급으로 지급된 토지)를 주었는데, 송 나라는 화폐가 유동하는 게 엄청났습니다. 서유럽과 송 나라의 역사를 보고 있으면 서유럽에서 어떻게 자본주의-기계가 탄생한 것인지 놀랍습니다…! 어떤 조건들의 우발적 마주침이 자본주의를 탄생시키는지도 계속 탐구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ㅎㅎ
수다쟁이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의 질문거리
지난주까지 랍반 사우마의 <서방견문록>을 읽고, 이번주부터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읽었습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의 첫 번째 놀라운 사실. 우리에게는 <동방견문록>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 책의 원제목은 <세계의 서술>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글 어디를 찾아봐도 ‘동방견문록’이라는 표현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동방’과 ‘서방’이라는 구분은 서양을 중심으로 해서 오늘날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마르코 폴로는 동방에 다녀온 것을 서술하려던 의도가 있던 게 아니라 자신이 만나고 본 세계 전체를 서술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마르코 폴로의 서술은 단순히 ‘여행기’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의 서술에는 개인의 감상이나 흥취가 극도로 억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목차만 봐도 1편 : 서아시아, 2편 : 중앙아시아, 3편 : 대카안의 수도, 4편 : 중국의 북부와 서남부… 이렇게 딱딱합니다…ㅎ 다행스러운 것은 마르코 폴로가 이야기하는 각지의 내용들은 신비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펼쳐진다는 점입니다. 가령… 기독교인들이 기도로 산을 하루 아침에 옮긴다든지…ㅎ 아무튼, 여기서 저희는 마르코 폴로는 세계 전체를 왜 서술하고 싶었는지 질문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의 독특한 점은 황당한 일화, 터무니없는 과장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그의 글이 ‘진실’인가, ‘허구’인가를 가려내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보다 마르코 폴로가 ‘실상’이라고 인식했던 것은 무엇인지. 마르코 폴로가 ‘실상’이라고 인식한 것이 우리가 ‘실상’이라고 인식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 어떤 다른 판단 기준이 있었는지 질문해가면서 파악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방견문록>은 ‘허상의 카멜롯’처럼 보였을지라도 오랫동안 유럽인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원천이 되었고, 세계를 향한 탐구에 인생을 바친 콜롬버스와 같은 사람들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리고 사실 <동방견문록>은 마르코 폴로가 홀로 쓴 책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1295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1298년 제노아의 감옥에 갇혀서, 거기서 만난 피사 출신의 루스티켈로라는 사람과 함께 기록합니다. 정확히는 마르코 폴로는 구술하고, 루스티켈로가 기록한 것입니다. 기록한 루스티켈로도 훌륭하지만, 마르코 폴로는 어마어마한 수다쟁이였던 게 틀림없습니다. 전 세계의 이야기들을 쉬지 않고 떠들었을 것을 상상해보면 웃음이 납니다. 그리고 마르코 폴로가 구술한 대부분의 이야기는 또 마르코 폴로가 여행하면서 여기, 저기서 주워 들은 이야기일 겁니다. 이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각 여행지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마르코 폴로를 상상해보면, 수다쟁이에다가 호기심 많고 친근한 아저씨처럼 상상이 됩니다. 여하튼, <동방견문록>은 어쩌면 마르코 폴로 개인의 기록이 아닌 그러한 복수적인 저자들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옮기고, 옮기는 과정에서 과장되고 확대된 기록! 이렇게 기록된 글은 한 사람이 기록한 글과 무엇이 다를까요? 그리고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이번 <동방견문록>을 읽으면서 계속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다음주에는 <하버드 중국사 송> 끝까지 읽어옵니다. 그리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2장까지 읽어오면 됩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하게 외부의 침입에 맞서 자기들의 정체성을 발명했다는 게 저도 참 재밌더라고요! 그런데 서양에서 중세 봉건은 르네상스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중간(Middle age)'에 불과했다면, 송나라는 중국적인 것이 가장 꽃핀 시기라는 점에서 '중간'이라고 볼 수 없었죠. 비슷한 것도 있고, 너무나 다른 것도 있고... 같은 시대를 공부하니까 이런 게 보이네요. ㅋㅋ 그리고 마르코 폴로(마르크 블로크라고 자꾸 말하게 되는)의 수다가 그의 절제된 기록에서도 느껴지는 건 무엇 때문일가요? ㅋㅋㅋ 세계를 서술한다는 원대한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많이 말할 줄 알아야 하는 걸까요? 무엇이 그로 하여금 세계를 서술했는지 상상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네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하게 외부의 침입에 맞서 자기들의 정체성을 발명했다는 게 저도 참 재밌더라고요! 그런데 서양에서 중세 봉건은 르네상스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중간(Middle age)'에 불과했다면, 송나라는 중국적인 것이 가장 꽃핀 시기라는 점에서 '중간'이라고 볼 수 없었죠. 비슷한 것도 있고, 너무나 다른 것도 있고... 같은 시대를 공부하니까 이런 게 보이네요. ㅋㅋ 그리고 마르코 폴로(마르크 블로크라고 자꾸 말하게 되는)의 수다가 그의 절제된 기록에서도 느껴지는 건 무엇 때문일가요? ㅋㅋㅋ 세계를 서술한다는 원대한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많이 말할 줄 알아야 하는 걸까요? 무엇이 그로 하여금 세계를 서술했는지 상상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