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화려했지만, 허약한 국방력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은 송나라의 역사를 지나 원나라, 명나라의 역사로 들어왔습니다!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에서 독립적인 역사로 서술됐던 당나라, 송나라와 달리 원나라와 명나라는 한 권의 책에 함께 묶였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책 분량의 절반은 원나라 역사가 차지하고, 나머지 절반은 명나라 역사가 차지한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자 티모시 브룩은 13세기 중엽부터 17세기 중엽 사이에 군림한 두 왕조(원+명)를 함께 서술할 필요성을 발견합니다. 일반적으로 중국인에게 1368년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해당합니다. 1271년 몽골 세력(원)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주원장을 중심으로 한 토착 반란 정권이 왕국(명)을 재건한 해였기 때문입니다. 한편 중국 외부의 역사학자들은 1368년을 후기 중화제국의 출발점이자 근대 세계를 향한 긴 여정이 시작되는 기점이라며 중요성을 부여합니다. 중국인에게도, 중국 외부에서도 원-명 전환기는 역사적 흐름&방향이 크게 뒤바뀌는 해로 이해되고 기억됩니다. 그러나 저자 티모시 브룩은 이 시기(1368년)를 ‘전환기’가 아닌 오히려 ‘연결하는 고리의 시기’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1368년을 기점으로 몽골의 지배는 중단되었고 명(한족)에게 권력은 돌아갔지만, 몽골의 유산을 거부하거나 부정한 게 아니라 오히려 몽골의 유산이 확고히 전승되고 계승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주요한 특징으로는 1) 전제 체제의 구축, 2) 중국 사회를 확대가족 집단으로 재편, 3) 상업적 부가 집중되기 쉽도록 중국의 가치를 재조정한 것이 있습니다. 저자 티모시 브룩에 따르면 명나라는 흔히 생각하듯이 고유한 중국(한족)의 역사를 계승한 국가가 아닙니다. 과거 지속된 중국의 모습(한족)은 몽골에 의해 크게 ‘단절’되었고, 그 시기에 중국과 몽골 + 요, 금 등등은 이미 많이 융합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명나라는 몽골에게 빼앗긴 순수한 중국의 모습을 되찾은 게 아니라 몽골에 의해 뒤섞이고 혼합된 것들을 새롭게 중국의 것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이후 그것들이 오늘날까지 중국의 모습으로 정착하게 됩니다. 타민족의 것이 토착화되는 시기가 원-명의 시기로 볼 수 있는 겁니다. 역사를 공부하면, 고유한 ‘나의 것’, ‘우리의 것’이라고 믿고 있던 게 사실은 이질적인 것들과의 융합 속에서 탄생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중국의 문화와 뒤엉킨 몽골의 문화가 다시 중국 고유의 문화로 자리잡는 게 흥미롭습니다. 거꾸로 저희에게로 질문해보면, ‘한국적인 것’이라는 게 순수하게 따로 있는 걸까요? 앞으로 원나라 시기에 몽골과 중국이 어떤 식으로 섞였고, 이후 명나라 시기에는 원나라 때 섞인 두 문명이 다시 어떻게 중국화가 되는지 각각의 영역에서 확인해보면 재미날 것 같습니다.
역사에 용이 등장하다!
원과 명을 잇는 첫 번째 키워드는 ‘용’입니다. 원과 명 시대의 역사 기록을 보면 ‘용’이 자주 등장한다고 합니다. 원-명 시기, 용의 출현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됩니다. 1) 황제의 교체, 2) 정권의 변화, 3) 무능한 정치 …등등. 용은 그 이전 시대에도 분명 존재했지만(그렇게 믿었지만), 원-명 시기에 독특한 점은 역사 서술에 빈번하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지금 시대의 눈으로 보면, 용에 대한 서술은 비과학적이고, 허상이고, 그 시대의 광기로 취급하며 넘어가기 쉽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에 따르면, 각각의 시대는 각각의 시대마다 공유하는 ‘정신구조’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시대에 용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물음보다 용을 필요로 했던 이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정신구조를 가지고 있었는지 상상해보고, 이해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명 시기의 용의 출현은 당시 사람들에게 정치적으로나 기상적으로 어려운 시기임을 확인해주었습니다. 기후학자들은 이 시기를 ‘소 빙하기’라고 부르며, 원-명 시기 공통적으로 기근, 홍수, 가뭄, 태풍, 메뚜기 떼, 전염병 같은 각종 자연재해를 겪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용의 출현은 극심한 기후 현상과 관련시켜서 해석하곤 합니다. “가령 바다에서 용솟음친 근해 지역의 용은 쓰나미로, 좁은 계곡을 갈라놓은 용은 돌발적인 홍수로, 건축물을 갈기갈기 찢고 그 파편을 사방으로 흩어놓은 검은 용은 토네이도로, 사공의 딸을 강물과 함께 빨아들인 용은 용오름 등으로 재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용의 목격이 나쁜 날씨라고만 해석했을 때, 용을 목격했을 때의 사람들의 감정적 혹은 심리적 효과를 간과할 위험이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 시기 사람들에게 용의 목격은 날씨 이상의 우주적 혼란의 경험이있고, 자기보다 훨씬 강한 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백성들에게 용이란 예측할 수 없는 하늘의 뜻과 때로는 무관심한 국가 때문에 상처 입기 쉬운 자기 자신을 상기시켜주는 존재였다. 용을 보았다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을 이탈하는 사건이며, 그야말로 백성들을 돌보지 못하는 황제의 실정을 말해주는 물증이었다.” 원-명 시기의 사람들은 내부에서는 이상 기후에 시달리고, 외부에서는 외국 상인이 끈질기게 출현하는 통에 더욱 가중된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 혼란 속에서 누군가는 과거의 전례에 집착하며 이를 모범삼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고, 반대로 어떤 이들은 과거는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여 그 안에서 자기 공간을 찾으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원-명 시대는 한 마디로 대단히 ‘혼란스럽고 불화하던 사회’였던 것입니다. 몽골 제국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공부할 때, 제게 원 제국의 이미지는 이질적인 것과 공존하는 조화로운 사회였는데, <하버드 중국사>에서는 이때를 불화의 시기로 규정하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앞으로 몽골, 요, 금, 한족을 통합(일통)한 원+명이 어떤 지점에서 불화하고 있었는지 공부하는 시간이 될 것 같네요! 기대가 됩니다!
마르코 폴로에게 세계란?
이번에 읽은 3장은 마르코 폴로가 ‘대칸의 수도’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전까지의 ‘도시’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서술하는 패턴이 조금씩 보였습니다. 1) A 도시에서 B 도시로 이동하는 방향과 거리를 설명하고, 2) 그 도시 주민들의 특징(주로 종교적인 특징, 기독교, 이슬람(사라센), 불교(우상숭배자))을 관찰하고, 3) 도시에 전해내려오는 신비하고 환상적인 역사 &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는 특이한 물산이나 동식물에 관하여 작성합니다. 이제까지의 마르코 폴로의 여행 기록은 단순하고 간략했습니다. 1장은 ‘서아시아’ 지역의 여러 도시에 관한 이야기였고, 2장은 ‘중앙아시아’ 지역의 여러 도시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각의 도시에 대한 설명은 1페이지 정도로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3장 ‘대칸의 수도’에서는 달랐습니다. 비록 엮은이가 목차를 구성했지만, 여기에는 생각해볼 지점이 있어보였습니다. 1장과 2장은 ‘여러 도시’들을 포함하는 대륙(서아시아, 중앙아시아)으로 묶을 수 있을 정도로 단편적인 이야기들이었다면, 3장은 오직 ‘하나의 도시’(대칸의 수도)에 관한 이야기로 풍성하게 구성됩니다. ‘대칸의 수도’에서는 이전에 보고, 듣고, 느낀 것 이상의 것을 보고, 듣고, 경헙합니다. 대카안의 궁전, 나얀과의 전투 묘사, 대카안의 풍모, 대카안의 아들, 축제, 사냥, 종이 화폐, 도로, 자선 등등. (이렇게 디테일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르코 폴로가 정말 중국에 갔을까? 하는 의심이 사라집니다) 여기서 저희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마르코 폴로는 ‘세계’를 서술할 때 왜 도시를 일정한 수준에서, 일정한 기준을 갖고 서술하지 않았을까? ‘대칸의 수도’에 대해 압도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로 상상할 수 있고, 해석해볼 수 있는 지점입니다. 1차적으로는 마르코 폴로가 17년 동안 대칸의 신하로 있었기 때문에, 대칸의 수도에 관한 이야깃거리가 확실히 다른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풍부했을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마르코 폴로에게 ‘세계’란 무엇이었을지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저희에게 ‘세계’란 서로 다른 국가들의 집합처럼 인식됩니다. 여행을 떠나도 어떤 ‘나라’를 간다고 생각하고, 어떤 ‘나라’에 속한 문화와 사람을 만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에게는 세계가 ‘국가’를 중심으로 인식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코 폴로에게 독특한 점은 어떤 도시를 가도 그 도시의 문화와 사람들을 통합하는 ‘제국’에 관한 표현은 없습니다. 심지어 대칸의 도시에서도 ‘원 제국’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지금 저희의 시점에서 역사를 공부할 때는 ‘원 제국’이라는 통치 체제가 가장 중요해 보이나, 그 시대 안에서 살아 움직였던 사람들에게는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르코 폴로가 보고, 느낀 세계는 ‘원 제국’이 아닌 ‘대칸’이 중심이 된 세계입니다. ‘쿠빌라이 칸’이라는 강력한 인물에 의해서 동-서를 가르는 거대한 세계가 세워지고, 이동하고, 무너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마르코 폴로가 경험한 세계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전세계(아메리카 대륙, 오세아니아, 남아프리카 등등은 제외)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경험한 유럽(베네치아)-중국(베이징)의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중심에는 ‘쿠빌라이 칸’이라는 위대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유럽인-기독교인-상인-청년이었던 마르코 폴로에게 ‘대칸의 수도’와의 마주침은 대단한 충격과 경외를 불러일으킨 것 같습니다. 그가 ‘쿠빌라이 칸’을 보고 느낀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제 나는 여러분에게 이 책에서 쿠빌라이 카안 - 우리 말로 하면 이 말은 군주들 가운데 대군주를 의미하며, 모든 사람들은 정말로 이 대카안이야말로 우리 최초의 조상인 아담에서부터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나타난 어떤 사람보다도 많은 백성과 지역과 재화를 소유한 가장 막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 이라고 불리며 현재 군림하고 있는 대카안이 행한 모든 위대한 업적들과 모든 위대한 경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유럽이라는 좁은 세계에서 살다가, 동방이라는 화려하고 강력한 세계와 만났을 때의 그 감동이 느껴집니다. 유럽 세계에 돌아왔을 때,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마르코 폴로의 특별한 만남을 보고 한 가지 또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마르코 폴로에게 쿠빌라이 칸과의 만남은 이전에 상상할 수 조차없는 강력한 세계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마르코 폴로의 영향을 받아 여행을 떠난 콜롬버스가 새로운 대륙과 만났을 때는 어땠을까요?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여행을 떠났고, 서로 다른 문명을 만났을 때 무엇을 보고 느끼고 경험했을지 그 차이가 궁금하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용'이라고, 통치자의 실정을 한 마디로 정리하는 당시 사람들의 정신구조, 기후와 역사를 연결해서 원-명을 한 고리로 묶는 서술이 너무 흥미로웠습니다. 지금은 '용'에 해당되는 것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게 되네요.
박규창
2023-11-14 09:09
기존에 '용'은 '부폐한 왕권을 몰아내고 민심을 살피는 왕권이 등장하는 길조'로 해석했는데, 원-명 시대에는 너무 많은 용이 빈번하게 등장해서 문제였죠. 한두 번 나왔을 때는 길조라고 해석하다가, 너무 많이 등장하니 '어..? 또 나와..?' 하면서, '우리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라는 의구심이 들게 했다는 게 아주 재밌었습니다. ㅋㅋ 심지어 선정을 펼치는 황제 때 용이 또 너무 많이 등장하니까, 이제는 황제 탓이 아닌 백성 탓을 하는 용이 나온 거라고도 해석했었죠. 아마도 기상이 이전과 너무나도 다르게 변했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기상이 변한다는 게 정신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면 지금 기후위기도 우리의 정신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그리고 저도 '대칸의 수도'에 대해 이렇게 많은 분량을, 심지어 그 역사까지 소개한다는 게 이질적으로 느껴졌는데요.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네트워크를 총괄하는 인물을 직접 본 마르코 폴로의 심정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까 폴로에게는 쿠빌라이 칸이야말로 '세계'를 인격화한 것이었을 것 같습니다. 으음... 좀 더 읽어봐야겠지만요. ㅋ;;
'용'이라고, 통치자의 실정을 한 마디로 정리하는 당시 사람들의 정신구조, 기후와 역사를 연결해서 원-명을 한 고리로 묶는 서술이 너무 흥미로웠습니다. 지금은 '용'에 해당되는 것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게 되네요.
기존에 '용'은 '부폐한 왕권을 몰아내고 민심을 살피는 왕권이 등장하는 길조'로 해석했는데, 원-명 시대에는 너무 많은 용이 빈번하게 등장해서 문제였죠. 한두 번 나왔을 때는 길조라고 해석하다가, 너무 많이 등장하니 '어..? 또 나와..?' 하면서, '우리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라는 의구심이 들게 했다는 게 아주 재밌었습니다. ㅋㅋ 심지어 선정을 펼치는 황제 때 용이 또 너무 많이 등장하니까, 이제는 황제 탓이 아닌 백성 탓을 하는 용이 나온 거라고도 해석했었죠. 아마도 기상이 이전과 너무나도 다르게 변했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기상이 변한다는 게 정신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면 지금 기후위기도 우리의 정신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그리고 저도 '대칸의 수도'에 대해 이렇게 많은 분량을, 심지어 그 역사까지 소개한다는 게 이질적으로 느껴졌는데요.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네트워크를 총괄하는 인물을 직접 본 마르코 폴로의 심정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까 폴로에게는 쿠빌라이 칸이야말로 '세계'를 인격화한 것이었을 것 같습니다. 으음... 좀 더 읽어봐야겠지만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