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7주라니..! 쏜살같이 시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올해 역사를 공부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원래도 역사를 재밌어하긴 했지만, 아프리카 그리고 몽골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좀 더 빠진 것 같습니다. 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지도 점점 더 그 의미가 넓어지고 있는 것 같고요. 다른 선생님들은 저희가 이렇게 재밌게 공부하고 있다는 걸 모르시겠지만 ㅎㅎ 올해 잘 마무리하고, 내년에도 올해만 같았으면 좋겠군요!
다음 시간에는 《하버드 중국사 원ㆍ명》 5~6장,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6장을 읽어 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문빈에게 부탁할게요~
기후의 도덕적 비용
《하버드 중국사 원ㆍ명》의 독특함은 ‘기후’를 역사에서 중요한 요소로 해석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전에 저희가 읽었던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를 봤을 때도, 지형, 날씨, 문화적 편견 같이 기존의 역사에서 배경이나 부차적 요소로 간주됐던 것을 오히려 중요한 요소로 다루고 있었죠. 지난 공지에 문빈이 썼던 것처럼, 원나라-명나라에서는 기후변화가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고요. 실제로 명나라는 원나라를 중국에서 몰아내긴 했어도,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에 멸망되고 말았죠. 어쩐지 지금 저희가 처한 상황과 같이 겹쳐 보이기도 해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얘기가 딴 길로 빠졌는데, ㅎㅎ;; 돌아와서, 원나라-명나라는 지금 우리와 다른 심상 속에서 기후변화를 겪었습니다. 저희는 기후변화를 방지하기 위해 혹은 늦추기 위해 비용을 얼마나 써야 하는지를 고려하죠. 여기서 비용은 순전히 경제적인 수치인데요. 반면에 원나라-명나라에서는, 티모시 브룩의 표현을 빌리면, ‘도덕적 비용’을 고려했다고 합니다. 근대 이전 중국에서는 기후를 단순히 날씨의 변화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하늘과 땅, 인간은 연결돼 있다고 생각했고, 인간 중에서 가장 천지와 맞닿아 있는 건 천자라고 여겼죠. 그래서 천지가 뭔가 심상치 않다고 여겨지면 인간들이 뭔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인간 중에서도 특히 천자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역대 천자들은 이 책임 때문에 아주 골머리를 앓았다고 하죠. 왜냐하면 “재정적 비용과 달리 도덕적 비용은 계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148) 구휼미를 풀고, 제방을 보수하는 것 같은 일들은 돈을 쓰면 해결할 수 있지만, 기후가 안정되지 않는 건 애초에 돈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티모시 브룩에 따르면, 백성들은 천자가 노력한다고 기후가 안정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체로 기후변화를 “주기적인 현상”이라고 받아들였다고 하죠. 백성들은 애초에 천자가 기후를 어떻게 안정시켜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천자들이 불안정한 기후에 스스로 불안감을 느낀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천자는 백성들이 기대하지 않아도 기후를 자신이 책임져야 할 정치적 문제로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그게 천지와 가장 맞닿아 있는 자로서 느끼는 책임감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지위를 천지와의 관계 속에서 확인하는 것처럼, 천지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기 지위와의 연관 속에서 생각할 줄 아는 어떤 도덕적 사고가 있었던 것이죠. 저는 이게 기후변화를 살아내는 매우 능동적 태도로 보였습니다. 단지 생존만을 목적으로 일어나는 이상현상들이 안정되길 바라기보다 그 속에서 ‘자신’이란 존재를 다시 생각하고, 그 가운데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계속해서 점검하기 때문이죠. 어떻게 보면, 인간의 힘으로 자연을 바꾼다는 것과 뭐가 다를까 싶기도 한 대요. 적어도 무력하게 그 변화들에 휘둘리지 않는 힘이 여기서 비롯될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성(性)은 결코 사적이지 않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중국을 인식하고, ‘세계’를 확장하는 ‘유럽인’의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기록이죠. 그런데 이번에 읽은 부분에서는 전근대인들에게 성(性)이 어떻게 다뤄지는지가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저희 근대인들에게 ‘성’이란 아무래도 은밀하게 다뤄지는데요. 이번에 읽은 마르코 폴로의 기록에서는 ‘성’이 부족의 단위에서 다뤄지는 공적 사업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티베트 지방이 그랬습니다.
“(이방인) 남자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처녀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법이 없다. 그들은 만약 여자가 많은 남자들에게 길들여지고 익숙해 있지 않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 남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한 뒤 동침한 여자에게 보석이나 정표를 주는 것이 관습이다. 그래야지 그 여자는 결혼할 때 정부를 둔 적이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여자들은 목에 스무 개 이상의 정표를 걸어 보임으로써 자기가 얼마나 많은 정부와 또 얼마나 많은 남자와 동침했는가를 과시하는 것이 그들의 풍습이다.”(311)
지나가는 이방인을 붙잡아 대접하고, 심지어 여자들 중에서 동침할 사람까지 고르게 한다는 대목에서 저는... 그야말로 문화 충격을 느끼고 말았습니다. 아무래도 저에게는 성관계, 아이를 가지는 일이 사적인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라는 편견이 강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들 부족에서는 이방인과의 섞임이 동일한 유전만 재생산하지 않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방인을 붙잡아야만 했죠. 다양한 씨를 남기는 게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죠. 비슷하게 지금의 사천성의 서창시(=시창시)에 있었던 부족들도 이방인을 대접하고 떠날 때는 탈탈 털리고 떠난다고 조롱한다고 하죠. 조롱이 너무 재밌어서 인용 한 번 하겠습니다.
“야! 너 어디로 가니? 네가 우리 것을 가지고 가는 것이 있으면 보여봐라! 에이, 이 나쁜 놈아! 네가 가진 것이 무엇이냐? 봐라! 네가 잊어버리고 우리에게 놓고 간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네 것을 갖고 있지 않느냐? 야, 이 망할 놈아! 너는 아무것도 못 가져가지.”(315)
물론 모든 지방이 이런 건 아니었는대요. 그래도 꽤 많은 곳에서 이렇게 ‘성’을 공적으로 다루는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폴로도 이런 관습적 태도가 매우 신기하게 보였는지, 이번에는 유독 ‘성’을 다루는 기록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폴로 또한 “16세에서 24세 사이의 청년이라면 그 고장에 가봄직할 것이다”라고 덧붙이기도 했죠. ㅋ
그러고 보니, 칸에게 ‘성’ 또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재확인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죠. 칸에게 바쳐지는 ‘여인’들은 매우 많은데요. 칸도 인간인지라 모든 여인을 만날 순 없었죠. 대신 간택되지 못한 여인은 나중에 칸이 직접 유력 권력자들에게 상을 내리듯 혼인됐기 때문에, 여인들 입장에서도 절대 손해되는 일이 아니었다고 하죠. 이것만 봐도 ‘성’이 사적으로 다뤄지는 건 근대에 나타난 유례없는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티모시 브룩의 책을 읽으며, 독특한 점은 확실히 역사와 기후를 엮어서 함께 서술한다는 점이네요! 이번주에는 확실히 전염병, 홍수, 가뭄, 기근, 메뚜기 피해 등등의 자연 재해를 단순히 기후 이상으로 일어난 문제로만 보는 게 아니라 기후 이상을 ‘인간 도덕성’과 연관지어서 본다는 점이 흥미로웠네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을 동시에 사유하는 동양적 사유가 새삼 흥미롭다는 생각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자연의 압도적인 힘을 마주했을 때 자신의 도덕성을 재점검하는 천자의 태도가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용의 기록을 추적하며 원-명대 통치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유추해내는 작업은 정말 독특합니다. 그걸 단지 수습할 때 드는 물질적 비용의 손실이 아니라 도덕적 비용의 손실로 생각하는 것도요. 지금 기후위기와 관련해서 생태적 감수성을 이야기하는데, 혹시 저 시대의 '기후 도덕 비용' 같은 것을 고려하는 는 것과 통하는 건 아닌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