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몽골비사>를 다 읽고, 이번 주부터는 잭 웨더포드의 <칭기스칸, 신 앞에 평등한 제국을 꿈꾸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잭 웨더포드가 칭기스칸에게 주목하는 부분은 명확합니다. “어떻게 위대한 정복자가 우리에게 종교적 자유를 주었는가?”라는 질문으로 그는 칭기스칸의 일대기를 구성합니다. 잭 웨더포드는 칭기스칸이 정복할 당시 다양한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던 점에 대해 대단히 놀라워합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이질적인 종교들이 서로 평화롭게 공존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종교는 권력을 가지게 되면 이단(다른 종교)을 억누르고, 언제나 경쟁하는 종파와 맹렬한 싸움을 벌이곤 했습니다. 종교는 자신들과 다른 방식으로 신을 경배한다는 바로 그 이유만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증오하며 죽이라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종교적 과격분자들은 평화와 동정을 사랑한다는 신의 이름을 둘러대면서 서슴없이 반대자를 고문하고, 강탈하고, 구타하고, 눈알을 뽑고, 강간하고, 불태워 죽이고, 물에 빠트려 죽이고, 굶겨 죽이고, 사지를 절단하여 죽이고, 노예로 만들어버렸다.”(32쪽) 종교는 타 종교를 인정하지 않았고, 역사에서 종교 간의 폭력과 파괴는 끊임없이 벌어졌습니다.
잭 웨더포드가 본 칭기스칸은 서로 반목하는 종교들 사이에 지속적인 평화를 수립한 인물입니다. 잭 웨더포드는 칭기스칸이 어떻게 이질적인 종교 간에 평화를 유지했는지 그 이유를 밝히려 합니다. 그가 서술하는 칭기스칸의 연대기를 따라가 보면, 칭기스칸이 지녔던 종교적 포용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문에서 저자는 칭기스칸을 간단하게 그려냅니다. 칭기스칸은 종교에 관심이 지대한 인물입니다. 칭기스칸은 정복 전쟁 중에도 '고매한 현자들'을 소환하여 여러 언어로 된 그들의 성스러운 경전을 읽어 달라고 하고, 그들의 종교를 저마다 설명하고 토론하게 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기독교, 도교, 불교, 이슬람교, 마니교, 유교, 기타 소규모 종교들의 말씀을 경청하고, 배우며, 그렇게 종교에 궁금증이 많았지만, 어느 하나의 종교에 힘을 실어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서 잭웨더포드는 칭기스칸을 멋지게 표현합니다. 칭기스칸은 낮에는 영토 지배를 위하여 전투를 벌인 전사였지만, 밤에는 정신적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한 구도자였다고 말입니다.^^ 정복자이면서, 구도자였던 칭기스칸의 삶을 저희가 한 번 좇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당나라 무덤 벽화인 '연음도'(宴飮圖). [글항아리 제공]
당 제국의 농촌 사회
이번 주 <하버드 중국사 당>에서는 ‘농촌 사회’ 파트를 읽고 토론했습니다. 이번 파트를 읽으며 흥미로웠던 점은 755년 ‘안녹산의 반란’ 이후 당 정부의 힘이 극도로 약화 됐지만, ‘농촌 사회’는 꾸준히 발전하고, 또 활기가 있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당 제국의 농촌 사회를 보면서 사마천이 떠올랐습니다. 사마천의 <사기 본기>에 나오는 '여태후' 편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사마천은 여태후가 집권하던 당시를 이렇게 평합니다. 조정에는 피바람이 불었지만, 백성들의 삶은 그래도 살만했다! 저희는 보통 중앙 정부의 통치가 제대로 안 되면, 백성들의 삶도 피폐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를 보면 질문이 듭니다. 국가 권력의 작동과 백성들의 삶은 어떤 관계인가? 정부가 백성의 삶에 영향을 전혀 끼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정부에 의해 백성의 삶이 전적으로 끌려다니는 것도 아닌 미묘한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당 제국 시기에는 어떠했는지. '안녹산의 반란' 이후 중앙 통제가 무너졌지만, 그럼에도 백성들은 살만했다고 평가하는 이유를 찾아봅시다.
당 제국은 통치 초기에 나름대로 ‘농촌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분주하게 정책을 펼칩니다. 그 정책은 저희가 고교 시절, 교과서에서 얼핏 봤던 기억이 있는 ‘균전제’ 제도입니다. ‘균전제’는 국가 소유의 토지를 소작농에게 균등하게 분배하여 경작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국가가 토지를 지방 호족들로부터 빼앗아서, 그들을 견제하기 위한 정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 정부의 미약한 통제력 탓에 특정 지역에 한정적으로 시행됐고, 절도사의 힘이 강한 곳에서는 전혀 시행되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균전제를 지탱하고 있던 '균등'이라는 근본적인 주장은 쉽게 무너졌습니다. 도교, 불교 사원은 예외적으로 많은 토지를 소유할 수 있게 해주고, 정부 관료들 또한 예외적으로 토지를 항구적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기에, 정부 스스로 예외 조항을 만들고 모순을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조정 관료, 지역 지주, 부유한 상인, 불교 및 도교 사원 등등은 대토지를 소유하게 되고, 균전제 정책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중앙 정부의 정책이 실패하고, 중앙 권력과 지방 권력이 대립하고 있음에도, 농촌 사회는 나름대로 활기를 띠었습니다. 농촌 사회의 시간은 권력의 장과 다른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농업 기술이 발전하면서, 농업 생산량이 증가하고, 흉작이 줄어들면서 덕분에 농민들의 삶이 안정된 것입니다. 새로운 쟁기가 발명되고(저자는 다른 무엇보다 쟁기의 발명을 중요시 합니다 ㅋㅋ), 관개, 홍수 예방, 토지 배수를 위한 수리 기술의 향상 등등에 의해 농부들의 농업 생산력과 효율성이 증가합니다. 그리고 수상 운송 네트워크의 발달, 육상 도로들의 발달로 시장이 확대되면서, 더 이상 농민이 자급 자족적인 삶을 살아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특산물들의 재배에 집중함으로써 소출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렇게 전체적인 기술의 발전 덕분에 농촌 사회는 역동적이었습니다. 저자는 농촌 사회를 오직 중앙 권력과의 관계에서만 이해하는 게 아니라 다원적인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음 시간에는 잭 웨더포드의 <칭기스 칸, 신 앞에 평등한 제국을 꿈꾸다> 2부, <하버드 중국사 당> 6장, 7장을 읽어 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현주샘께서 준비해주십니다!
낮정밤구!
칭기스칸 하면 언제나 파괴자 살육자의 이미지가 떠올라, 그런 전쟁기계가 어떻게 비폭력을 말하는 불교와 연결되었을까를 고민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종교 과격분자들이 평화와 교화의 이름으로 벌여온 잔학한 폭력을 생각해보니 단순하지 않아지는 것 같습니다.
정복자의 범종교성.... 만약 그가 하나의 종교를 절대시했으면 어떤 모습이었을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낮정밤구!
칭기스칸 하면 언제나 파괴자 살육자의 이미지가 떠올라, 그런 전쟁기계가 어떻게 비폭력을 말하는 불교와 연결되었을까를 고민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종교 과격분자들이 평화와 교화의 이름으로 벌여온 잔학한 폭력을 생각해보니 단순하지 않아지는 것 같습니다.
정복자의 범종교성.... 만약 그가 하나의 종교를 절대시했으면 어떤 모습이었을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