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아직 세계지도를 그릴 줄 모르는 회원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세계지도 그리기의 어려움을 깨닫게 해줬습니다. 직접 그리지 않았을 때는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겠죠? 키득키득.
세계지도를 끝까지 그리려고 노력한 서양사대주의(좌), 세계지도를 그리다 중국 지도로 도망친 하남자(우)
다음 시간에는 <호르드> 3~5장을 읽어 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제가 준비할게요~
종교 해방자? 새로운 사회를 발명한 혁명가?
어쩌다 보니 커리큘럼에 없던 책도 추가하면서 닥치는 대로(?) 칭기스 칸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이제는 칭기스 칸에 관한 간단한 정보들, 가령 1162년(혹은 1163년)에 태어나 1227년에 죽었다는 것, 그가 본격적으로 몽골 제국의 통치자로 발돋움한 건 1206년 쿠릴타이였다는 것, 그의 후계자 우구데이는 칭기스 칸만한 통치자가 아니었다는 것 등등은 확실하게 알게 됐습니다. 물론 책들을 읽을 때마다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몽골 제국의 수도 카라코룸은 칭기스 칸이 아닌 그의 후계자 우구데이도 아닌, 우구데이의 아내 토레게네가 정했다고 하는군요. 생각해 보면, ‘수도를 세운다’는 건 유목민이 아닌 정주민의 사고인 것 같아요. 어쨌든 칭기스 칸이란 인물에 대해 아는 게 많아진 덕분에, 이제는 칭기스 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조금 감이 잡히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잭 웨더포드의 <칭기스 칸, 신 앞에 평등한 제국을 꿈꾸다>에서 칭기스 칸은 근대 이후 제정될 ‘평등’과 ‘자유’ 개념을 발명하고 전파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웨더포드는 같은 종교 내에서도 반목하고 불화하던 서양에서 어떻게 다른 자들과의 공존을 도모하는 사유가 가능하게 됐는지를 추적하다 칭기스 칸을 발견합니다. 그는 18세기 유럽 문화에서 ‘칭기스 칸’의 모티프가 널리 사용되었음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칭기스 칸’에 대한 상반된 평가들 속에서 칭기스 칸의 사유가 유럽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쳤음을 알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칭기스 칸에 대한 유럽인들의 익숙한 이미지, ‘피에 굶주린 학살자’도 만들어지는데요. 지금 유럽에서는 이러한 이미지만이 남아있지만, 사실 칭기스 칸이 서양에 알려질 때는 다양한 면모들이 함께 전파됐습니다. 대표적으로 북아메리카에서는 벤저민 프랭클린이나 토마스 제퍼슨 같은 사람들에게는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법을 제정한 정치가로 칭기스 칸이 읽혔죠. 웨더포드는 ‘피에 굶주린 학살자’란 낡은 이미지를 걷어내는 동시에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세운 통치자로서 칭기스 칸을 발견한 것이죠.
웨더포드가 진실한 영적 구도자로서의 칭기스 칸의 면모를 발견했다면, 마리 파브로는 ‘horde’라는 유목적 권력 형태의 제국의 발명자로서 칭기스 칸에 주목합니다. 몽골 제국 이전에도 로마 제국, 이슬람 제국 등 다양한 종교와 민족들이 공존하는 사회체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몽골은 이전의 제국들과 달리 중앙아시아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독특했습니다. 웨더포드는 칭기스 칸 사후, 그의 아들들이 각자가 믿는 종교적 교리와 권력에 대한 탐욕 때문에 사분오열되었다고 보는대요. 반면에 파브로는 바로 그렇게 찢어지고 다시 또 확장하고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것이 바로 유목 제국인 ‘horde’의 독특함이라고 말합니다. 칭기스 칸이 건설한 유목 제국이란 애초에 특정 영토로 환원되는 개념이 아니라 계속해서 사람들과 만나고, 섞이고, 공존하면서 팽창하는 인구 개념과 연관된다는 것이죠. 웨더포드의 해석도 흥미롭긴 했지만, 마리 파브로의 분석은 유목 제국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 더 유용한 것 같습니다.
몽골의 외부, 주치 울루스
모든 제국은 나름의 독특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국은 이질적인 것을 흡수하면서 공존시키는 거대한 사회체를 가리킬 뿐 제국을 이루는 힘들도 따지고 보면 매우 다양할 것 같습니다. 로마와 이슬람, 당나라, 몽골 모두 제국이라 할만하지만, 이들이 제국으로 성장하고 자신을 유지하는 양식은 매우 달랐으니까요. 이 중에서도 몽골은 유목민이 세운 제국이란 점에서 다른 제국들과 다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제국을 유지한 힘 혹은 양식 역시도 독특하지 않을까요? 파브로의 <The Horde>는 유목 제국의 권력 형태인 ‘호르드’를 분석하는 시도입니다. 그에 따르면, 그동안 많은 역사가들이 ‘호르드’가 유목 제국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키워드이지만, 실제로 이에 입각해서 분석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호르드’를 끝까지 유지했던 주치 울루스 또한 외면받았죠.
따라서 이번에 읽은 마리 파브로의 책 <The Horde>는 몽골 제국의 권력 형태인 ‘호르드’를 분석하는 동시에 몽골 역사에서도 주변부로 밀려났었던 주치 울루스(“주치의 후손들과 그들의 모든 복속민들”)가 가장 유목적인 정치 형태라고 주장하는 획기적인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다른 곳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목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반면, 주치 울루스(=캅차크 칸쿡)는 유목민의 고유한 통치 양식을 유지했습니다. 주치 울루스는 중앙아시아 북부와 동유럽~러시아 일대를 통치하고 그들과 섞였지만, 정착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때때로 공작들의 가문과 혼인을 하면서 결연을 다지기도 했고, 그곳에 살던 그리스 정교회나 이슬람 상인들을 보호하면서 칭기스 칸이 그랬던 것과 같은 제국의 통치를 이어나갔습니다. 파브로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몽골의 역사를 새롭게 서술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니, 칭기스 칸과 자식들과의 관계, 그 후손들끼리의 관계 등이 좀 더 역동적으로 보이는 것 같아요. 파브로의 시선에서 또 어떤 몽골의 역사가 보일지 기대됩니다!
서양 근대의 평등과 자유 개념이 칭기스 칸으로부터 왔다는 해석은 신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동하는 정치체 ‘호르드’에 대한 이야기가 앞으로 어찌 펼쳐질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