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마이너 세계사 4학기 1주차 첫 번째 시간에는 <서방견문록>을 읽었습니다. <서방견문록>은 중국(대도=지금의 베이징)에서 유럽(파리)까지의 여행한 ‘랍반 사우마’의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서방견문록>을 읽은 뒤에는 유럽(베네치아)에서 중국(원제국)까지 여행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읽습니다! 중국->유럽, 유럽->중국으로 서로 다른 경로로 여행한 두 사람은 무엇을 다르게 보고, 느꼈을까요? 4학기를 진행하면서 두 여행기의 공통점, 차이점을 비교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서방견문록>를 연구한 모리스 로사비는 ‘랍반 사우마’와 ‘마르코 폴로’의 차이점을 보여줍니다. ‘랍반 사우마’는 성직자 신분으로 여행에 초점이 있다기보다 외교 임무와 기독교와 연관된 예식과 관행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 그에 반해 ‘마르코 폴로’는 상인 출신 여행가로 여행 지역에 관한 많은 정보(생산품, 관습, 지형, 전쟁 등)를 서술하고 있다고 합니다. 성직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계, 여행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계를 함께 교차하며 읽어보면 흥미로운 지점들을 많이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랍반 사우마’는 “유럽에 도달한 것이 확인되는 최초의 중국인”입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보면 왠지 중국인스럽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랍반 사우마’는 웅구드 부족 출신으로, 쿠빌라이 칸이 대도(베이징)를 건설하게 될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북중국 평원은 유목민과 정주민의 섞임이 활발했던 지역이었습니다. 확실히 중국의 역사에는 한족만이 아니라 다양한 민족이 뒤섞여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랍반 사우마’는 저희에게는 생소한 ‘네스토리우스교’를 믿는 성직자였습니다. 네스토리우스교는 5세기에 전통 기독교 조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고, 이단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면서 중동, 중앙아시아, 중국으로까지 떠나 널리 퍼지게 됐습니다. 13세기에 이미 중국에서도 기독교가 정착하고 있었습니다. 세계사를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세계는 이미 섞이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랍반 사우마’가 본격적으로 유럽 여행을 하기 전 정치적 상황을 주로 이야기 됐습니다. 아마 다음에 읽는 부분에서 13세기 유럽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중국인 성직자의 시선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방견문록>의 저자 모리스 로사비는 ‘랍반 사우마’의 여행을 아래의 질문과 함께 보려고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 질문을 하나씩 나름대로 풀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왜 랍반 사우마는 중국에 있는 고향 땅을 떠났을까? 왜 페르시아의 몽골 통치자인 일 칸은 유라시아의 역사를 바꿀 수도 있었던 동맹을 맺으려고 유럽에 사절을 보냈을까? 왜 그는 이 민감한 사절의 자리에 랍반 사우마를 선택하여 이 수도사가 유럽의 왕과 황제, 교황을 대면하게 했을까? 왜 기독교도가 아니었던 일 칸이 사우마에게 십자군 결성과 관련된 일을 맡겼을까? 사우마의 사절 임무는 얼마나 성공적이었을까? 실제로 왜 몽골제국 시대에 동방과 서방 사이에 그 많은 사절이 있었던 것일까?”
송나라 태조 조광윤
유학자들의 시대, 송 제국
3학기에는 당 제국의 역사를 배웠다면, 4학기에는 송 제국, 원 제국, 명 제국의 역사를 공부합니다! 중국이라는 세계가 어떤 흐름들 속에서 ‘지금’에 이르렀는지 쫒아가보려 합니다! 중국사 첫 번째 시간에 저희는 <하버드 중국사 송, 유교 원칙의 시대>를 읽고 토론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당 제국의 역사와 지금 읽고 있는 송 제국의 역사에는 단절점들이 보여서 흥미로웠습니다. 당 제국은 ‘절도사’의 힘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지방 세습 귀족 가문들은 독자적인 군사지휘권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따라 중앙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죠. 황제 입장에서 절도사는 위협적인 존재들이었고, 실제로 안녹산은 난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송 제국은 당 제국을 겪으면서 군사지휘권을 가진 무인들에게 나라를 맡기면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확인합니다. 그리하여 송 제국 초대 황제(태조 조광윤)는 ‘지방 권력자들’을 제거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을 무력으로 제거한 게 아니라 설득했다는 점입니다. 그 일화는 ‘배주석병권’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961년 8월 20일 황제가 원로들에게 술잔을 돌리면서 병권을 포기해달라는 제안을 했고, 그 포상으로 천수를 누릴 수 있는 저택과 대토지를 하사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모든 장군들이 황제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무인들이 물러간 자리에는 이제 누가 채우게 될까요? 송 제국은 그 자리에 새로운 문인 관료들을 채웁니다. 이들은 전국적으로 치러진 유교 경전 시험을 통해서 선발된 인재들이었습니다. 송 제국은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통치되는 시스템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때 등장하는 유명한 유학자들로 주돈이, 정호, 정이, 장횡거, 소옹(북송오자)이 있습니다. 이 유학자들이 어떤 활약을 펼쳤을지…! 기대하면서 읽어나가보겠습니다.
무인에서 문인으로, 군사력 중심에서 지성을 중심으로 정치 체계가 변하면서 생기는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군사력의 약화인데요. 군사력의 취약성은 송나라에게 아주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송나라 주변에는 위협적인 이웃이 여럿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거란(요) 제국, 탕구트(서하) 제국, 금 제국 등은 계속해서 송나라를 괴롭혔습니다. 군사력이 약한 송나라는 이들을 어떻게 막아냈을까요? 다행히도 송나라는 물자가 풍부한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에게 세폐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군사적 충돌을 막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세폐를 주는 방식으로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을까요? 아직 그로 인한 문제로 백성들의 삶이 아주 피폐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조금 더 읽어보면 또 다른 여러 문제들이 튀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ㅎ
또 하나는 <하버드 중국사 송>의 저자 디터 쿤은 송 제국이 놓여 있는 조건을 주목합니다. 그리고 그 조건은 ‘한 제국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자의식과 자존감이 형성됐음을 이야기 합니다. 외부(거란(요), 탕구트(서하), 금)에 의한 침략으로 내부 정체성이 강화된 것입니다. 최근에 ‘이역만리’ 세미나에서 읽고 있는 마르크 블로크의 <봉건사회>에서도 질문합니다. 도대체 ‘유럽인’이라는 정체성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라고요. 마르크 블로크는 ‘유럽인’이라는 심상은 중세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합니다. 중세 서유럽에는 사실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었지만, 강렬한 외부(남쪽 이슬람, 동쪽 헝가리, 북쪽 스칸디나비아)의 침략으로 인해 ‘유럽인’이라는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강화됐다고 말이죠. ‘우리’라는 심상은 원래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이렇게 강력한 ‘외부’와의 만남을 통해 강화된다는 점도 아주 흥미롭습니다…ㅎㅎ
다음 시간에는 <랍반 사우마의 서방 견문록> 끝까지 읽어옵니다. 그리고 <하버드 중국사 송>은 4장 ~ 6장까지 읽어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현주샘께서 준비해주시기로 했습니다-!
세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섞이고 있었고, 그건 누군가의 의도가 아니라 의도를 뛰어넘는 본능(?), 힘 같은 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게 뭔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ㅋ 랍반 사우마가 유럽으로 떠나고, 비슷한 시기에 마르코 폴로가 중국으로 떠나는 이 교차된 여정은 우연이라고만 하기에는 너무나도 절묘하고, 누군가의 계획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사건들이 작용해야만 했죠. 이번에 읽는 두 개의 견문록은 서로 다른 두 개의 문명이 서로를 어떻게 보는지를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죠. 각자는 서로를 어떻게 봤을지도 궁금하고, 로사비가 질문한 것처럼, 이 둘이 교차하는 세계의 흐름도 궁금하네요!
그리고 저도 송나라는 어느 때보다 유학적 전통을 강하게 세운 나라지만, 이민족에 대한 배타성이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는 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유교가 원래 '한족'이란 정체성을 고집하면서 타문화에 배타적이어서가 아니라 당시 송나라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한족'이란 정체성이 형성되면서 배타성이 강화된 것이었죠. 지금 우리가 내세우는 자존심의 기원을 따라 내려가면 찬란한 무언가가 아니라 아주 환장할 만한 상황들이 펼쳐진다는 게 아주 재밌어요. ㅋㅋㅋ 계속해서 환장할 역사를 보는 게 기대됩니다!
세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섞이고 있었고, 그건 누군가의 의도가 아니라 의도를 뛰어넘는 본능(?), 힘 같은 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게 뭔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ㅋ 랍반 사우마가 유럽으로 떠나고, 비슷한 시기에 마르코 폴로가 중국으로 떠나는 이 교차된 여정은 우연이라고만 하기에는 너무나도 절묘하고, 누군가의 계획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사건들이 작용해야만 했죠. 이번에 읽는 두 개의 견문록은 서로 다른 두 개의 문명이 서로를 어떻게 보는지를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죠. 각자는 서로를 어떻게 봤을지도 궁금하고, 로사비가 질문한 것처럼, 이 둘이 교차하는 세계의 흐름도 궁금하네요!
그리고 저도 송나라는 어느 때보다 유학적 전통을 강하게 세운 나라지만, 이민족에 대한 배타성이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는 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유교가 원래 '한족'이란 정체성을 고집하면서 타문화에 배타적이어서가 아니라 당시 송나라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한족'이란 정체성이 형성되면서 배타성이 강화된 것이었죠. 지금 우리가 내세우는 자존심의 기원을 따라 내려가면 찬란한 무언가가 아니라 아주 환장할 만한 상황들이 펼쳐진다는 게 아주 재밌어요. ㅋㅋㅋ 계속해서 환장할 역사를 보는 게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