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세계사 3주차 공지
한신 노관 열전, 자리(位)가 감당 안 되는 인물들!
저희는 이번 주에 <한신 노관 열전>을 읽으면서, 사마천이 이번 편에서는 자리(位)를 감당하지 못하는 인물들에 대해 쓴 게 아닐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韓) 나라 왕 한신은 “키가 여덟 자 다섯 치”나 되는 우람한 신체성을 가진 인물입니다. 항우가 여덟 자, 유방이 일곱 자라고 하니, 그들보다 더 거대한 인간이었습니다. 타고난 신체성 덕분에 한신은 군자적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스러운 자로 여겨졌습니다. 실제로 초-한 전쟁 당시에는 한왕(유방)을 따르며 천하를 평정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줍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초-한 전쟁 때 장점으로 발휘되었던 그의 신체성은 초-한 전쟁이 끝난 후에는 단점으로 발휘되는 듯합니다. 싸움은 잘했지만, 지혜가 부족했던 겁니다. 초-한 전쟁이 끝난 후 한신은 변방(흉노와 대치)을 지키는 지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조(유방)는 한신이 흉노와 딴마음을 품은 건 아닌지 ‘의심’을 하기 시작합니다. 한신은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내몰리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바로 옆에 있는 흉노에게로 튀어버립니다. 저희는 한신의 이야기를 보면서, 싸움을 잘하는 것도 어느 특정한 시점에서만 장점으로 쓰이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눴고, 때가 변하고, 관계가 바뀌고, 자리가 변했기에 다른 역량을 발휘할 수 있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하지만 한신은 그 자리를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인물은 노관입니다. 그의 특징은 유방과 ‘소꿉친구’였다는 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유방과 글을 배우고, 서로 친하게 지냈습니다. 노관은 언제, 어디서나 늘 유방을 따라다녔고, 유방의 침실을 드나들 정도로 둘 사이는 친밀했습니다. 유방 역시 노관을 그 누구보다 총애하고 아꼈습니다. 심지어 개국공신이었던 소하와 조참보다도 노관을 더 신임하였습니다. 초-한 전쟁이 끝나고 유방은 노관에게 왕의 지위를 주고 싶었지만, 신하들이 불만을 가질까 그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연히도 연나라 왕 자리에 공백이 생기게 되고, 신하들도 유방의 마음을 읽어서 노관에게 그 자리를 맡기게 됩니다. 그런데 얼마 뒤 노관은 유방의 의심을 받는 상황에 부닥칩니다. 노관이 연나라 왕의 자리를 오랜 시간 지속시키기 위한 얄팍한 계책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유방과 노관은 상황이 꼬이고 꼬여서 의심을 풀 수 없는 상황에 처하고, 결국 노관 역시 흉노에게도 도망가버립니다. 이 또한 노관이 자기 역량보다 높은 ‘자리’를 감당하지 못해 생긴 일이 아닐까요? 우리는 자리가 높으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지만, 사마천은 자리를 감당하지 못하는 자가 그 자리를 차지했을 때 처하게 되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자리(位)에 알맞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요! 고민을 하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전담 열전, 어찌 함께 죽은 것인가?
<전담 열전>에서는 전횡과 그를 따르는 500명의 빈객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초-한 전쟁이 끝나고, 제나라 왕이었던 전횡은 자신을 따르는 500명의 무리와 함께 바다로 들어가 섬에서 조용히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방은 전횡의 무리가 나중에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횡을 자기 신하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전횡은 유방의 뜻을 거절합니다. 책에서는 “치욕스러운 마음”, “부끄러운 생각” 때문이라고 나오지만, 그 안에는 무수한 과거가 함축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과거에 어깨를 나란히 했던 유방과의 관계가 어느새 역전이 되고, 또 자신이 실수로 죽였던 사람의 동생이 유방의 장수로 있고, 또 그 밖에도 무수한 사건이 얽혀있고, 인연이 얽혀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도저히 그는 유방의 신하로는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방의 뜻을 거절하면 자신뿐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빈객도 죽임을 당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전횡은 스스로 목을 베어 자신을 따랐던 빈객들을 살리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은 그 소식을 들은 500명의 빈객들이 모두 전횡을 따라 목숨을 끊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건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자신이 따르던 한 인물이 죽었다고 하여, 어떻게 함께 죽는 선택을 하는 것인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칭기스칸 기, ‘최초의 세계사’
이번 주에 라시드 앗 딘의 <칭기스칸 기>를 읽으면서, 이것이 ‘왜 최초의 세계사’인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몽골 제국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한 지역의 역사’, ‘민족의 역사’를 썼습니다. 세상을 인식하는 범위가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 민족으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칭기스 칸 이후 동-서로 세상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세계라는 게 민족 단위, 지역 단위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전체 차원에서 무수한 인과 고리들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라시드 앗 딘의 질문은 ‘칭기스 칸’이라는 위대한 인물이 어떻게 탄생했는가?입니다. 라시드 앗 딘은 단순히 몽골의 작은 움막에서 태어났고, 가족 관계와 자라온 환경을 서술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을 이야기하지만, 그 이야기로만 칭기스 칸을 설명하지 않는 게 주요한 특징인 것 같습니다. 라시드 앗 딘은 ‘칭기스 칸’이라는 위대한 인물의 탄생을 살펴보기 위해 진짜 ‘세계 전체’를 봅니다. 칭기스 칸이 13세 때 전체 지구(이란, 이집트, 투르키스탄, 러시아, 위구르, 시리아 등등)에서는 어떤 움직임들이 펼치고 있었는가? 세계가 어떻게 움직였기에 칭기스 칸이라는 위대한 인물이 탄생했는가?!! 라시드 앗 딘은 칭기스 칸의 개인의 능력보다도 이 세계의 움직임을 주목하는 역사가였습니다. 흥미롭지 않나요?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제가 느끼는 재미도 여기에 있는 거 같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렇게 존재하는가?’ 그 이유를 그전에는 나의 좁은 동선/자라온 환경/관계로 파악했다면,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내가 얼마나 무수한 것들과 연결되어 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좁은 시각에서 나와 세계를 만나다가, 세계사는 넓은 시각에서 나와 세계를 새롭게 볼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재밌습니다^^ 다음 주차는 <사기 열전> 역생육고열전, 부근괴성열전, 유경숙손통열전, 계포난포열전을 읽고, <칭기스칸 기> 2장 3절 1195 ~ 1203년 ~ 4절 1204 ~ 1210년까지 읽습니다!!
500명이 따라 죽다니.. 상징이나 비유가 아니라면 정말 놀랍군요 ㅎㅎ
역사 공부에서 '자리'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자기 자신을 세계사적 시각에서 보는 시도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고대의 우정이나 객 이야기는 지금 기준으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만큼 자기 스스로를 생각하는 범위가 달랐던 것 아닐까 싶구요. 500명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