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다음 시간 공지하겠습니다! 〈원앙조조열전〉, 〈장석지풍당열전〉, 〈만석장숙열전〉, 〈전숙열전〉과 《칭기스 칸 기》 2편 2장 5절(272)부터 6절(406)까지 읽어 오시면 됩니다. 《칭기스 칸 기》를 읽으실 때는 칭기스 칸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는 장면 하나를 꼽아오시면 됩니다. 사마천이 인물을 설명할 때 항상 그 인물의 특징을 첫 장면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해보죠! 이번 학기의 목표가 칭기스 칸과 쿠빌라이 칸 둘 중 하나를 골라서 열전을 쓰는 거였으니, 차근차근 이야기 소스를 만들어 가보자는 취지입니다. ㅎㅎ 간식은 현주쌤께 부탁드릴게요~
변설(辨說)과 유세(遊說)의 시대
다양한 삶으로 한나라의 역사를 다양하게 조망하는 사마천이지만, 여러 이야기를 관통하는 일관된 질문이 몇 개 있는 것 같아요. 그 중 하나가 ‘말하기’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 읽은 〈역생육고열전〉과 〈유경숙손통열전〉에서는 유세와 변설의 달인들이 나오죠. 뛰어난 말솜씨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고 군주에게 등용 당하는 것. 춘추전국시대에서는 이를 유세(遊說)라 규정했죠. 상대방의 논리를 타파하는 걸 변설(辨說)이라고도 하는데, 사실 유세나 변설이나 말로 상대방을 설득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진 않죠. 사마천은 춘추전국시대에서부터 한나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을 보여주면서도, 유세객들의 삶이 어떤지를 탐구합니다. 사마천은 이들을 통해 ‘말 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역생육고열전〉을 보면, 말로 날아다니는 역생과 육고를 볼 수 있습니다. 60살까지 비천한 일을 하면서 때를 기다린 역생은 말 한 마디로 유방에게 등용되고, 제나라 왕 전광으로 하여금 한나라에 항복하도록 설득하죠. 비슷하게 육고는 당시 변방의 이민족이었던 남월의 왕 위타가 한나라에 복속되도록 설득하고요. 사실 저는 말재주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다른 사람을 설득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건 결국 부귀영화를 실현하는 사욕(私欲)의 연장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마천은 ‘개 짖는 소리’와 ‘닭 울음소리’를 내는 것도 능력으로 보는 만큼, 능력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편견도 없었습니다. 중요한 건, 그가 지닌 능력이 그의 삶을 어떻게 이끄는지, 그 능력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었죠.
다만 시대적으로 봤을 때, ‘말하기’란 매우 힘 있으면서도 위험한 수단이었습니다. 춘추전국시대에서부터 한나라에 이르기까지 말하기는 정치판에서 가장 유효한 능력이었죠. 말 한 마디로 사이가 나쁜 두 사람의 관계도 유화시킬 수 있지만, 반대로 사이 좋은 사람들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실제로 육고의 말 한 마디로 행실이 청렴 결백한 평원군 주건과 남의 비위를 맞춰서 출세한 벽양후 심이기의 관계도 이어지게 만들었죠. 이걸 보면서 말하기란 욕망과 뜻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정치적 능력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마천이 보여준 말하기란 항상 타자와의 위태위태한 관계에서 발휘되는 능력입니다. 마치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이에 있었던 진실 말하기 게임처럼 유세와 변설이 실패하는 순간 자기 목이 날아가거나 궁형을 당할 수 있죠. 따라서 이들에게 말하기란 갈고 닦아야 할 기예였죠. 반면에 지금 우리에게 타자와 함께 살기 위해 어떤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관한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아픔을 다독이는 힐링 담론이나 보다 건강해지기 위한 자기계발서 정도는 봤지만, 누군가와 어떻게 어울려 살기 위해 어떤 훈련을 할 것인가 등등에 대한 얘기는 별로 못 본 것 같아요. 어떤 능력을 어떻게 발휘할 것인가,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서 갖게 되는 질문이네요.
지인(知人), 고대 중국인들의 실존 윤리
지난번 전횡을 따라 죽은 제나라 빈객 500명의 이야기에서도 살짝 나왔지만, 고대 중국에서 중요한 윤리적 요소 중 하나가 지인(知人)인 것 같습니다. 나를 알아봐 준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게 이상하기보다 매우 중요한 덕목처럼 여겨지니까요. 이건 단순히 사적으로 의리를 지킨다거나 상대방에 대한 맹목적 충성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 만약 그런 정도였다면 그렇게 죽은 이들에 대해 적대시하던 사람들이 감탄하는 일이 없었을 테니까요. 뭔가 공적인 차원에도 적용되는 윤리인 것 같은데, 어쨌든 지금 저희의 감성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네요. 아마도 실존을 인식하는 범위 혹은 실존을 완성하는 기준이 저희와 매우 다르기 때문이겠죠.
‘지인’이 나왔으니까, 공자 얘길 빼놓을 수 없죠. 다만 사마천이 주목한 ‘지인’은 공자와 좀 다른 것 같아요. 사마천에게 ‘지인’은 나를 알아본 그를 위해 목숨 바쳐 수행하는 걸로 완성되죠. 반면에 공자는 아예 시선을 전환시키죠. ‘누군가가 나를 알아봤다’가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알아본다’는 걸로요. 여기에는 내가 배울 만한 사람, 뜻을 함께할 만한 사람 등등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공자 나름의 문제의식이 있는데요. 나중에 비교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세상이 만든 ‘칭기스 칸’, “인생은 40대부터!”
마이너 세계사 시즌2의 주역은 몽골인데, 어쩐지 칭기스 칸 일대기보다 사마천의 열전을 더 재밌게 읽고 있는 요즘입니다. ^^;; 그래도 읽다 보면 재밌는 지점이 하나둘 발견됩니다.
이번에 읽은 범위까지 보면, 드디어 테무진이 칭기스 칸(가장 단단한 자)이란 칭호를 받았고(1206년), 쫓겨다니던 자에서 자기만의 세력을 일궈 주변 유목민족을 통합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저는 여기까지의 이야기보다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칭기스 칸의 이야기가 좀 더 궁금해졌습니다. 잘 모르는 우리들은 칭기스 칸이 몽골 제국을 건설하려는 야욕을 가지고, 뛰어난 재능으로 그것을 해냈을 거라고 상상하죠.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칭기스 칸에게 거대한 야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43살 전까지 계속해서 쫓겨다니며 살았습니다. 자기 세력이랄 게 거의 없었죠. 지난번에 저희가 본 영화 <몽골>은 그런 그때의 칭기스 칸에 주목했죠. 끊임없이 잡히고, 탈출하고, 또 잡히기를 반복했습니다. “칭기스 칸”이란 이름에 대한 우리의 표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세월이 매우 길었던 거죠.
그러다 43살 이후, 대략 48살부터(1203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면서 자기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갑자기 적은 병사로 주위 유목민들을 이기고, 통합하기 시작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 라시드 앗 딘은 이걸 ‘기적’으로 설명해서 실제로 어땠을지 궁금해지는데요 - 인생의 전성기랄 게 매우 뒤늦게 찾아온 거죠. 저는 이걸 보면서 이슬람의 첫 지도자 무함마드가 떠올랐습니다. 그 또한 40살에 계시를 받고, 42살에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요. 유목민족, 40살 이후의 전성기, 혼란스러운 분열과 불화를 종식시킨 제국의 건설자 등등 겹치는 지점이 꽤 있었습니다. 어쨌든 칭기스 칸이란 인간은 단지 개인의 뛰어난 재능이나 야욕, 노력 같은 것만이 아니라 시대적 조건도 크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확실히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선 시대적 조건을 함께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왜 라시드 앗 딘이 주변 나라들의 역사를 함께 서술했는지도 이제 알 것 같네요. 칭기스 칸이 살았던 시대가 어떤 혼란을 겪었는지 주변국들에서 잘 보이니까요. 그동안에는 좀 후루룩 지나가고 말았는데, 다음에는 칭기스 칸이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도 같이 보죠!
'말하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입 밖으로 말을 내뱉으면, 어찌 됐든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세상에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사기>를 보면 말 한 마디가 인간관계를 변형시키고, 한 나라의 중요한 정책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무모한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말의 힘은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마어마한 원인으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고민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말을 잘한다는 게 무엇인가? 상대를 잘 설득하는 것인가? 유창하게, 막힘없이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사기>를 읽어가며 고민해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