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은 <흉노 열전>을 통해 유목 사회의 생활을 자세히 묘사합니다. 그 당시 유목 사회는 어떤 삶의 양식을 지니고 있었는지 엿볼 수 있어 재밌었습니다. 저희는 사마천이 묘사한 유목민의 생활 방식을 통해, 유목 사회와 농경 사회는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독특하고 낯선 유목 사회의 특징을 한 번 보시죠!
“물과 풀을 따라 옮겨 살았기 때문에 성곽이나 일정한 주거지도 없고 농사마저 짓지 않았으나 각자의 세력범위만은 경계가 분명하였다. 글이나 서적이 없었으므로 말로써 약속을 하였다. 어린애들도 양을 타고 돌아다니며 활로 새나 쥐를 쏘고, 좀 자라면 여우나 토끼 사냥을 해서 양식을 충당하였다. 남자들은 자유자재로 활을 다룰 수 있어 전원이 무장 기병이 되었다. 남자들은 자유자재로 활을 다룰 수 있어 전원이 무장 기병이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평상시에는 목축에 종사하는 한편 새나 짐승을 사냥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고, 긴급한 상황일 때에는 전운이 군사행동에 나설 수 있었다. 이것은 그들의 타고난 천성이었다. 그들이 먼 거리에 쓰는 무기는 활과 화살이고, 짧은 거리에 쓰는 무기는 칼과 창이었다. 싸움이 유리할 때에는 나아가고 불리할 경우에는 후퇴하였는데, 도주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오로지 이익을 위해서 일을 꾸밀 뿐 예의는 고려하지 않았다. 임금을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이 가축의 고기를 먹고 그 가죽이나 털로는 옷을 해입거나 침구로 썼다. 건장한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노약자들은 그 나머지를 먹었다. 즉 건장한 사람을 중히 여기고, 노약자들은 경시하였던 것이다. 아비가 죽으면 아들이 그 후처를 아내로 맞고 형제가 죽으면 남아 있는 형이나 아우가 그 아내를 차지하였다.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을 꺼리지 않았으며 성(姓)이나 자(字)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저희가 유목 사회의 특징 중에서 주목한 부분은 “건장한 사람을 중히 여기고, 노약자들을 경기하였던” 사회적 분위기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학교와 각종 매체로부터 배워왔던 노인을 공경해야 한다는 생각과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농경 사회와 유목 사회는 노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왜 이렇게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요? 농경 사회에서는 정주 생활을 하기 때문에, 정착한 땅에서 사계절의 사이클을 많이 겪은 자가 곧 지혜로운 자였습니다. 이 땅에서는 비가 언제, 어떻게 내리고, 가뭄과 홍수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자인 겁니다. 반면에 유목 사회는 일정한 주거지가 없이 떠도는 생활을 합니다. 매번 우발적인 상황에 놓이고, 즉각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힙니다. 유목 사회는 힘의 세계이자 역량을 발휘하는 것으로 자기 지위를 갖는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노인보다는 건장한 사람을 중요하게 여겼던 게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그리고 유목 사회는 어떻게 다른 것들과 잘 섞일 수 있었을까? 반대로 농경 사회는 다른 것들에 대해 배타적이었던 것일까? 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저희는 유목 사회의 유연함을 언제, 어디서나 떠날 수 있는 신체성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성곽이나 일정한 주거지”가 없었기 때문에 언제나 떠돌아다녔고, 떠돌아다녔기에 낯설고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유연해질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농경 사회는 자기 땅이 있기에,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우리 집단과 다른 집단을 나누게 되고, 새로운 것에 배타적으로 되는 특징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농경 사회와 유목 사회의 차이는 공부를 하면서 계속 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소르칵타니 베키)
몽골 제국의 탁월한 여성들
이번 주부터 모리스 로사비의 <수성의 전략가, 쿠빌라이 칸>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칭기스 칸 기>를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유목 문화의 독특성을 발견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희가 유목 제국에서 발견한 첫 번째 특징은 ‘탁월한 여성들’입니다. 몽골의 여성들은 정치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쿠빌라이 칸의 어머니도 정치적 역량이 아주 뛰어난 인물이었는데요! 쿠빌라이 칸의 주요한 특징들은 탁월한 어머니로부터 배웠다고 봅니다. 그녀의 이름은 ‘소르칵타니 베키’인데요. “그녀의 정치적 천재성은 아마도 그녀의 종교에 대한 관용을 통해서 가장 잘 드러날 것이다.”(40) 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그녀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였지만, 불교, 도교, 이슬람교 등등 다른 종교를 차별하지 않고, 심지어 “다양한 종교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41) 했습니다. 자신과 다른 가치, 다른 신념을 가진 존재들을 포용하고 함께 가려고 하는 유목 민족 + 베키의 지혜는 언제나 놀라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쿠빌라이 칸이 중국적인 통치 방식을 익히게 된 배경에도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녀가 다스린 지역은 중국 농민들이 거주하는 곳이었습니다. 보통의 몽골 유목민 통치자들은 몽골식으로 중국 농민들을 통치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농민들을 착취하고 약탈하는 방식이었는데요. 그러나 그녀는 그러한 방식은 근시안적이고, 세금을 오히려 거두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몽골식의 통치가 아닌 중국 농민에게 적절한 정책을 펼쳐서 세입을 크게 늘리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쿠빌라이 칸이 왜 중국의 영토를 지배하게 됐는지 짐작해볼 수 있었던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쿠빌라이에게 영향력이 있었던 참모 중 한 사람은 그의 둘째 부인차비였습니다. 그녀는 쿠빌라이의 종교관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녀는 열렬한 불교도였고 특히 티베트 불교의 신봉자”(46)였다. 쿠빌라이 칸이 티베트 불교를 특히 따르고 존중했던 것은 부인 차비의 공이 큽니다. “차비는 파스파 라마에게 영향을 받아 쿠빌라이와 티베트인 지도자 중 누가 상위에 있는지를 놓고 벌어진 논쟁을 중재한 것으로 전해진다.” (85)
(몽케 카-안)
유목민적 관계 맺음
그리고 몽골 제국의 역사를 보면, 관계를 맺는 방식이 낯설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중국 전통에서는 ‘가족’이라면 법을 어겨서라도 지켜내야 하는 존재, 심지어 자신을 죽이려 해도 못 본 척하고 선으로 이끌어야 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 효(孝)를 강조하고, 형제 사이에는 친(親)함을 강조합니다. 가족 관계는 다른 어떤 관계보다 특별한 지위에 놓입니다. 그런데 유목 민족에게 가족 관계는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뭉케와 쿠빌라이는 고지식한 현실주의자였다. 정책을 결정할 때 감정을 개입시키는 법이 거의 없었다. 눈물의 재회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조차, 그들은 중요한 정책 결정에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사촌, 이모, 그리고 방계의 친척들을 거침없이 숙청할 때에도, 칸의 지위에 있는 뭉케에게 가족애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형제간의 투쟁은 몽골인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쿠빌라이 역시 이후 수십 년 동안 동생과 칸위 계승을 둘러싸고 혈투를 벌일 것이다.” (77)
물론, 중국 역사에서도 가족 관계는 혈투의 장이었습니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죽이는 일은 드물지 않게 나타납니다.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중국 전통에서는 가족애(피로 맺어진 관계를 중시)가 남아있는 느낌이라면, 유목 사회에서는 가족이라는 힘이 약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추측해보면, 그것은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도는 생활 양식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정착하지 않기에, 피를 나눈 사람들과의 관계보다 떠도는 생활 중에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가문의 사람이냐보다 실력이 중요해집니다. 유목민과 정주민이 관계를 맺는 방식은 어떻게 다른지는 <수성의 전략가 쿠빌라이 칸>을 읽으면서 차차 알아 가보겠습니다.
"유목민적 관계 맺음"의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몽골인은 노인보다는 건장한 사람을 중히 여겼고, 가족애보다는 피를 나누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시했다는 지점에 눈길이 갑니다. 아마도 유목민과 정주민의 생활 작동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유목민이 가족애를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는 떠도는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타자를 배척하기보다는 그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몽골 자신들에게도 이익이라고 여겼겠지요. 실제로 쿠빌라이의 참모진들은 위구로인, 중동인, 중국인 등, 여러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었지요. <마르코 폴로> 시리즈를 봐도 쿠빌라이 정권에 수많은 외국인 참모가 등장하는데요, 그것이 신기롭게 느껴졌던 일이 생각납니다. 쿠빌라이가 이질적인 존재들과 함께 몽골 제국을 다스렸다는 점이 동질적인 것만을 중시해 왔던 저의 시선에서는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질성과 함께하도록 하는 작동 방식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박규창
2023-06-23 11:01
두 사회가 기반하는 중심적 질서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고, 확실히 그들의 정주적/유목적 생활양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 같네요. 공부하면 할수록 '유목적'이란 게 뭔지 점점 더 궁금해지네요. 들뢰즈도 저 단어를 활용했던 것 같은데, 들뢰즈를 더 공부하면 알 수 있겠죠? 어쨌든, 실제로 유목민이라고 해서 모두가 계획 없이 떠돌았던 것도 아니고, 산과 평지를 오가는 유목민, 평지와 평지를 오가는 유목민, 이동 범위가 다른 유목민 등등 다양하니까 아무래도 유목민의 생활양식은 더 공부해야 그들의 생활과 사유와의 관계를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새삼 느끼는 건데, 흉노의 생활을 민족적 원한을 가지지 않은 채 바라볼 수 있었던 사마천의 시선 또한 매우 탁월한 것 같아요. 그들이 자신들과 같은 피를 공유한 형제들일지도 모른다는 통찰로 흉노열전을 시작하는 대목은 생각하면 할수록 놀랍습니다. 왜냐하면 당장 자신들과 전쟁하는 부족이고, 예의범절을 모르는 야만인이라고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은 거니까요. 이런 것도 어쩌면 역사의 힘일까요!?
"유목민적 관계 맺음"의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몽골인은 노인보다는 건장한 사람을 중히 여겼고, 가족애보다는 피를 나누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시했다는 지점에 눈길이 갑니다. 아마도 유목민과 정주민의 생활 작동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유목민이 가족애를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는 떠도는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타자를 배척하기보다는 그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몽골 자신들에게도 이익이라고 여겼겠지요. 실제로 쿠빌라이의 참모진들은 위구로인, 중동인, 중국인 등, 여러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었지요. <마르코 폴로> 시리즈를 봐도 쿠빌라이 정권에 수많은 외국인 참모가 등장하는데요, 그것이 신기롭게 느껴졌던 일이 생각납니다. 쿠빌라이가 이질적인 존재들과 함께 몽골 제국을 다스렸다는 점이 동질적인 것만을 중시해 왔던 저의 시선에서는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질성과 함께하도록 하는 작동 방식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두 사회가 기반하는 중심적 질서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고, 확실히 그들의 정주적/유목적 생활양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 같네요. 공부하면 할수록 '유목적'이란 게 뭔지 점점 더 궁금해지네요. 들뢰즈도 저 단어를 활용했던 것 같은데, 들뢰즈를 더 공부하면 알 수 있겠죠? 어쨌든, 실제로 유목민이라고 해서 모두가 계획 없이 떠돌았던 것도 아니고, 산과 평지를 오가는 유목민, 평지와 평지를 오가는 유목민, 이동 범위가 다른 유목민 등등 다양하니까 아무래도 유목민의 생활양식은 더 공부해야 그들의 생활과 사유와의 관계를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새삼 느끼는 건데, 흉노의 생활을 민족적 원한을 가지지 않은 채 바라볼 수 있었던 사마천의 시선 또한 매우 탁월한 것 같아요. 그들이 자신들과 같은 피를 공유한 형제들일지도 모른다는 통찰로 흉노열전을 시작하는 대목은 생각하면 할수록 놀랍습니다. 왜냐하면 당장 자신들과 전쟁하는 부족이고, 예의범절을 모르는 야만인이라고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은 거니까요. 이런 것도 어쩌면 역사의 힘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