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봄내음이 물씬 나는군요. 뭔가 여기저기를 떠도는 유목적 본능(?)에 몸이 움찔거리고 있습니다. 소풍을 한 번 가볼까... 생각 중입니다. ㅋ
사마천과 반고
한서를 읽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사마천과 반고의 관점은 다른 것 같습니다. 반고는 생장수장(生長收藏)의 필연적 리듬이 세계를 관통하고, 그 가운데서 인간이 어떻게 때를 읽고 순응하며 살아갈 것인지, 그의 마음은 어떠한지를 보려고 했죠. 이런 점에서 반고에게 역사란 인간의 마음이 펼쳐지는 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에 사마천은... 좀 더 읽어봐야겠지만, 매우 울퉁불퉁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자신도 모르게 분열되는 지점도 있었던 것 같고요.
가령, <항우 본기>를 보면, 항우의 영웅적 면모를 그렸던 앞의 서술들이 무색하게 사마천은 매우 박하게 평가하죠. “항우는 스스로 공로를 자랑하고 자신의 사사로운 지혜만을 앞세워 옛것을 스승삼지 아니하며, 패왕의 공업(功業)이라고 하고는 무력으로 천하를 정복하고 다스리려고 하다가 5년 만에 마침내 나라를 망치고 몸은 동성(東城)에서 죽으면서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책망하지 않았으니 이는 잘못된 것이었다. 그리고는 끝내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 결코 내가 싸움을 잘하지 못한 죄가 아니다’라는 말로 핑계를 삼았으니 어찌 잘못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토론에서는 ‘죽음조차 의연하게 받아들인 항우를 그저 오만하고 공을 나누려 하지 않은 소인배로 봐도 될까?’라는 질문이 있었죠. 항우가 자신의 패배와 죽음을 천명으로 받아들이는 부분을 보면서, 이것도 나름대로 때를 읽어내는 역량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하지만 사마천은 그 자신이 주목했던 영웅적 항우의 면모를 갑자기 유방과의 싸움에서 실패한 단점으로 정리해버리죠. 저희는 이 부분에서 혼란에 빠졌는데, 근거 없는 추측이지만, 아마도 항우에 대한 평가는 유방의 승리와 대비된 모습을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쓰인 게 아닐까 했습니다. 그러니까 앞의 서술들과 “태사공왈”로 시작하는 평가는 애초에 서로 다른 관점이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항우 본기가 세계를 움직였던 항우의 영웅으로서의 면모에 주목했다면, 통치자의 역량을 평가하는 본기적 질서에서는 세계의 중심을 만드는 인물이라 하기에는 부적절했다고 말한 게 아닐까요?
그러나 여기서 또 이런 질문이 들죠. 그렇다면 왜 항우를 굳이 본기에 넣었을까 하는 건데요. 여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다케다 다이준을 따라, 항우와 유방은 동시대에 세계를 움직인 두 개의 거대한 중심이었고, 둘이 서로를 통해 서로를 더욱 빛내는 관계였기 때문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사마천 본인도 의식하지 못한 분열, 제국주의적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동시에 그로부터 이탈하는 것이 나타났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이런저런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본기와 세가, 열전을 넘나들면서 동일한 인물도 다양하게 포착할 수 있는 여백이 있다는 정도로 얘기를 마무리했습니다. 앞으로 본기를 읽는 동안 ‘본기적 질서’ 같은 게 있는지, ‘본기를 구성하는 사마천의 주요 관점’은 무엇인지 유의해서 봐야겠습니다. 또, 나중에 사기 리라이팅을 시도해보고픈 열망도 살짝 생겼습니다. ㅎ
세계에서 ‘삭제’된 유목의 흔적
정말 많고 많은 나라의 이야기가 한정된 분량에 담겨 있습니다. 하나하나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요. 아마 곧 까먹지 않을까 싶네요. ㅋㅋㅋ...ㅠ 하지만 이번에 확실하게 알게 된 게 있다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세계 여기저기에 유목민들의 흔적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문화적 영향이 있었다는 정도가 아니라 근대의 굵직한 국가들이 성립하는 데에도 유목민들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가령, 무굴 제국이나 러시아 제국의 성립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저는 무굴 제국의 창립자가 칭기스 일족 중 한 명이었고, 중앙아시아 국가적 교육을 중요시했다는 걸 몰랐습니다. 그리고 ‘차르’라는 칭호를 사용하면서 러시아의 영토를 확장했던 이반 4세가 스스로를 “비잔티움 황제들과 몽골 칸들의 계승자임을 자처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됐습니다.(235)
생각해 보면, 세계를 휩쓴 거대한 몽골 제국의 흔적이 갑자기 역사적 흐름에서 사라지는 건 매우 부자연스럽습니다. 분열을 겪었다고 해도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있고, 그에 따라 중앙아시아 주변과 교류하면서 서로 영향을 끼칠 테니까요. 칭기스 칸 이후, 몽골 제국은 각 부족의 혈통보다 칭기스의 혈통을 중요시하게 됐죠. 하지만 모든 중앙아시아와 그 일대의 국가들이 그 혈통을 소유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슬람이나 티벳 불교 같은 이념으로 자신들의 주요 정체성을 삼기도 했죠. 중앙아시아가 주변과의 관계에서 변용됐던 것처럼, 주변에서도 중앙아시아와의 관계 속에서 변용됐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에서는 그런 것들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생략합니다. 러시아 제국이 세워지는 데 있어서 사실 중앙아시아와의 관계도 매우 중요했는데, 비잔티움 제국과의 관계만 있었던 것처럼 기술합니다. 이슬람과 불교가 지금처럼 널리 퍼질 수 있었던 데에도 중앙아시아에서의 유목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종교들이 확장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이념적 요소를 빼놓을 수 없지만, 정치적 요인도 그에 못지않게 매우 중요했던 거죠. 지금 현재를 생각할 때 중앙아시아를 생각하지 못하는 건, 그만큼 우리가 세계를 특정 국가, 민족, 인종 중심적으로 보고 있었다는 걸 반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중앙아시아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도 모르는 걸 테고요. 왜 세계사를 다시 쓸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하는지 공부하면 할수록 여러 생각이 듭니다.
다음 주에는 <여태후 본기>와 <문제 본기>, 르네 그루쎄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1장을 읽어 옵니다. 간식은 제가 준비할게요~~
저도 중앙아시아와 중국, 그리고 몽골과 중국의 관계를 통해 중국이 동아시아의 중심축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현재와 같은 위치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 중국이 기마민족 흉노에게 공물을 바친 사실도 저의 상식을 깨는 이야기 였습니다.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역사는 특정 민족의 것의 아니라는 사실. 이질적인 힘들의 혼합과 뒤섞임 속에서 종합된 것이 역사라 할 수 있는데, 우린 그런 힘들을 단선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ヾ(≧▽≦*)o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제게 '역사'라고 하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일직선을 그어 언제 누가 무슨 일을... 요래 시간적 표상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다른 시공간적 관계 맥락 안에서 이야기로 구성하면 매우 다르게 읽히겠군요. 특정 중심축도 하나의 관점일 뿐, 사마천이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배우는 것이 되겠고요. 규창샘이 강조한 세계사에서 유목의 흔적과 영향(관계, 섞임, 변용)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유행처럼 쓰이던 '유목적 삶의 이미지'가 넘 강해서리... 인생은 실전임을... ㅎㅎ) 규창샘말처럼 지금까지 다른 좌표를 가진 세계사를 써보고 읽어야 하는지 그 중요성은, 역시나 역사에만 국한되지 않은 것 같아요. 우리가 각자 하고 있는 공부에서, 세상을 다르게 느끼기 위한 관점을 배우고 있으니까요. 우리 모두 즐겁게 열공해여~~ o(* ̄▽ ̄*)ブ
사마천 사기에서 항우와 유방을 대립하는 두 태양으로 설명하는 게 재밌었어요! 그리고 항우의 이야기 속에서 유방이 나타나고, 또 유방의 이야기 속에서 항우가 나타나면서 인물이 서로 중첩되고, 그래서 인물이 더욱 입체적으로 되는 것도 재밌었습니다. 규창샘 말처럼 사마천은 항우의 기질 중 몇 몇 부분을 드러내며 , 패배의 원인으로 삼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우를 소인배로 만드는 건 큰 오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중앙아시아는 정말 매번 어지럽고(^^) 복잡한 세계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민족, 언어, 종교가 뒤섞이고 변형된 세계! 아직 유목 민족의 용어가 익숙하지 않아 따라가는 것이 어렵지만, 계속 해나가면 유목 민족의 삶을 좀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