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고의 <한서>는 ‘때’를 중심에 놓고, 역사를 구성했습니다. <한서>는 한 나라의 역사를 전체로 펼쳐서 생장수장(生長收藏)의 흐름을 잡고, 그 위에서 역사적 인물들이 어떻게 자신의 기량을 펼쳐내는지 보여주었습니다. <한서>(원서는 읽지 못했지만)에서는 유방이 유방일 수 있었던 이유를 봄의 때(時)를 맞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여태후의 잔혹한 정치에도 백성의 삶이 편안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때(時)를 맞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저희는 반고의 <한서>가 우리에게 개인을 너머에 존재하는 거대한 흐름을 알려준다고 이해했습니다. 저희는 거대한 흐름(時)이 우리 삶을 좌우한다는 점을 동의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질문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거대한 흐름에 영향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 건가? 양아치였던 유방이 한 나라의 황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때(時)로만 설명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소거되는 게 아닌가?
반고의 <한서>와 달리 사마천의 <사기>는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합니다. (두 역사서를 비교하며 읽으면 참 재밌습니다) <사기>는 때(時)가 아닌 ‘개인’을 중심에 놓고 인간의 역사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사마천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엇을 행하고, 어떻게 행하는지 자세하게 관찰합니다. 사마천이 ‘개인’을 주목한 이유는 세계를 움직이는 힘은 개인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특권적인 개인이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건 아닙니다. <사기>의 <본기>에는 세계를 이끄는 중심적 인물이 나오지만, 그 주변으로는 <세가>, <열전>의 인물들이 종으로, 횡으로 포진되어 있습니다. 황제는 황제대로, 신하는 신하대로, 또 다른 인물들은 각각의 인물들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사기>의 구성을 봤을 때, 사마천은 여러 개인들의 서로 다른 운동을 통해 전체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희는 교과서를 통해 중요한 사건, 객관적인 사건들의 나열로 역사를 배워왔습니다. 그것과 비교하면 사마천의 역사 서술은 참 독특합니다. 사마천은 왜 이러한 방식으로 역사를 서술했을까? 이 질문을 품고 저희 마이너 세계사는 앞으로도 계속 <사기>를 탐구해볼 예정입니다^^
여태후가 왜 <본기>에?!
이번주에 저희가 읽은 부분은 <여태후 본기>와 <효문 본기>입니다. 확실히 임펙트가 있는 이야기는 <여태후 본기>였답니다.^^ 여기서 우선 주목해야 할 점은 사마천이 <본기>에 여태후를 넣었다는 점입니다. <본기>에는 주로 고조, 효문제, 효경, 효무제와 같은 황제의 지위에 있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여태후는 황제인 효혜제가 있었음에도 그를 대신하여 <본기>의 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저희는 사마천이 왜 여태후를 <본기>에 넣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사마천이 <본기>를 구성할 때, <본기>에 들어가는 인물의 기준을 ‘황제의 자리에 앉은 사람’으로 삼은 게 아니라 ‘황제와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으로 삼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마천은 <여태후 본기>를 통해 황제가 아닌 자도 황제와 같은 영향력을 펼칠 수 있음을, 남자가 아니어도 최고의 권력을 지닐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주로 남성이 정치와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시절에 이러한 점을 포착했다는 점에서 사마천은 참으로 현실적이고, 유동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마천이 여태후라는 인물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한 번 상상해보았습니다. 사마천은 여태후라는 인물을 이렇게 평합니다. “모든 정치가 방 안에서 이루어졌지만, 천하가 태평하고 안락했다. 형벌을 가하는 일도 드물었으며, 죄인도 드물었다. 백성들이 농삿일에 힘을 쓰니 의식(衣食)은 나날이 풍족해졌다.” 사마천은 여태후가 정치를 하는 시기에 천하가 태평했다고 합니다. 저희는 여태후가 권력을 잡았는데, 어떻게 천하가 태평할 수 있지? 의문을 품었습니다. 왜냐하면, 여태후만큼 잔인하고, 잔혹한 정치를 펼친 인물은 없기 때문입니다. 여태후는 자신의 정적을 모두 제거하고, 자신의 친인척을 이용하여 권력을 모조리 장악하며 아주 폭력적인 정치를 행했습니다. 저희는 이런 인물이 정치를 주도하면 천하가 어지러울 것 같습니다만, 놀랍게도 그 당시 천하는 태평해집니다. 이 아이러니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중국의 4대 악녀로 유명한^^ 여태후)
저희는 두 가지 측면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첫 번째로는 도덕적인 것과 정치적인 역량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이죠. 여태후는 잔혹한 인물이었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정치적 계산이 아주 탁월한 인물로도 보입니다. 개국공신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여씨 일족으로 채우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같은 시대를 살아도, 서로 다른 세계를 겪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도, 모든 사람이 여태후의 영향 아래에 놓여있는 건 아닙니다. 여태후의 영향 바깥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마천은 여태후라는 인물을 통해서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또 살아갈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마무시한^^유라시아 대륙의 역사
지난 주에 <중앙아시아사>를 끝내고 이번 주부터는 <유라시아 유목제국사>를 시작합니다. <중앙아시아사>에서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얼마나 다이나믹한 혼합(문화, 종교, 언어)이 있었는지를 보았다면, <유라시아 유목제국사>에서는 유라시아 유목민들이 ‘강인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고원지대의 매서운 바람, 혹심한 추위와 타는 듯한 더위는 주름진 눈매, 높이 솟은 광대뼈, 숱이 없는 머리털로써 그들의 얼굴을 조각하였고, 힘줄이 불거진 그들의 몸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유라시아 유목제국사>에서는 유목민들의 강인함을 혹독한 기후조건을 원인으로 삼습니다. “엄혹한 기후조건이 지배하고 10년에 한 번은 물 있는 곳이 말라버려 초목이 마르고 가축이 폐사하며 그들과 함께 유목민들도 쓰러져갔던 지대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 환경은 그들을 혹독하게 했으며, 그 혹독함이 강인한 기질을 형성시켜준 것이죠. 그리고 혹독한 기후 조건은 유목민들에게 아주 독특한 생존 방식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은 ‘약탈’입니다. 유목민은 자급자족의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정주민의 지역을 약탈하며 생계를 이어갑니다. 정주민으로 30년을 살아온 저의 입장에서는 ‘약탈’한다고 하면 ‘도둑질’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들의 행동이 부정적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유라시아 유목제국사>에서는 그들의 행위를 항변해줍니다. 혹독한 기후 조건이 만들어 낸 “자연의 법칙”과도 같은 것이라고요.
그런데 여기서 규창군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유목민이 ‘약탈’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이것이 바로 정주민의 관점이 아닌가!!! 라고요. 확실히 이전에 읽었던 <중앙아시아사>에서는 “실제로 유목민은 문명화된 이웃 정주민들과 견주어 더 잔인하거나 금과 비단을 탐내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이야기하며, 오히려 자신들이 풍부하고 우월한 삶을 산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유목민을 보는 관점은 왜 이렇게 다른 걸까요?^^ 앞으로 계속 공부해가면서 어떤 관점으로 유목민의 역사를 바라보아야 할지 고민해나가야겠습니다.
(저렇게... 넓은 땅을!! 지배했던 흉노 제국... 그와 비교해 초라해 보이는 중국의 땅...^^ )
그리고 사마천의 <사기>와 <유라시아 유목제국사>를 함께 읽으면서 재밌었던 점은 두 이야기가 중첩되고 서로 얽히면서 읽힌다는 점입니다. <사기>에서는 한 나라의 관점에서 흉노와의 관계를 서술한다면, <유라시아 유목제국사>에서는 흉노 제국의 관점에서 한 나라와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서로 다른 관점을 보면서 이 세계가 얼마나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볼 수 있어서 재밌었고. 이전에는 중국의 한 나라가 정말 크고 대단한 나라로 보였는데, 한 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더 거대하고 넓은 유목의 땅(흉노 제국, 월지, 선비(?)... 등등)이 있음을 알게 되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유라시아의 역사가 낯설기에 딱 들어오지는 않지만, 그들의 역사가 얼마나 광대했는지는 매번 책을 펼칠 때마다 느끼게 됩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처럼 유라시아의 역사 속에 등장했던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면 참!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듭니다. 다음 시즌에 칭기스 칸을 읽으면 유목민들의 이야기를 좀 더 생생하게 들을 수 있겠죠..? ㅎㅎ 아쉬움을 뒤로한 채 이상으로 이번 주 후기를 마칩니다-!
눈웃음이 많은 후기로군요. ^^ 덕분에 읽는 동안 저도 살짝 웃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보니, 확실히 많은 것을 얘기하는 세미나군요. ㅋㅋㅋ 역사에 대해 고민하는 한편, 유목민과 정주민에 대해서도 고민하니까요.
역사에 관해서는 사마천의 <사기>가 확실히 흥미로운 질문을 많이 끌어올릴 수 있는 텍스트인 것 같습니다. 다케다 다이준은 사마천이 '개인',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분열'을 자아내는 인간이자 정치적 인간으로서의 개인을 서술했다고 해석하죠. 읽으면서 확실히 그렇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때의 '개인'은 과연 주체적인 의미로서의 개인일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안티 오이디푸스>를 읽고 있어선지, 그건 '개인'으로 표현된 힘이자 세상을 절단, 접속하는 기계에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이건 좀 더 공부하면서 구체화해야 할 것 같지만요.
유목민에 관해서는, 점점 더 미지의 세계로 빠지고 있습니다. @_@ 어떤 분석이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는 데다가, 사실 저희가 유목민에 대해 이제 겨우 조금 아는 수준이라서 뭐가 맞고 틀린지 얘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중앙아시아사>와 관점이 미묘하게 다른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를 읽으면서 "불-편"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나중에 생각이 들었습니다. ㅋㅋ 중요한 건 그러한 분석을 통해 어떤 세계, 어떤 관계를 그리고 있는지 읽어내는 거겠죠. 호오... 점점 더 개론서가 아니라 유목민의 관점으로 쓰인 역사를 읽고 싶은 갈망이 커지고 있습니다.
힐데
2023-03-22 18:28
마이너 세계사의 매력은 우리의 상식을 가감 없이 깨준다는 것에 있지요. 오랑캐이자 야만족으로만 알고 있었던 흉노와 돌궐은 몽골 제국에 맞먹는 땅을 차지하고 있었지요. 소국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스피로자의 말대로 우리가 이성에 따른 적합한 인식을 한 것이 아니라 상상에 바탕한 부적합한 인식을 한 결과이겠지요.
우리는 유목민을 '지성'이 없는 자들로 간주하면서 그들을 야만인으로 취급하는데요. 무엇이 야만(인)이고 문명(인)인 것인지 앞으로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야만과 문명의 구분도 어쩌면 차이와 다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생겨나는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기가 눈웃음 맛집이라는 소문듣고 왔어요~~
2023-03-22 21:07
^0^ 규창샘을 '살짝 웃게 만들어버린' 후기 잘~~ 읽었습니다요~~
문득 요런 생각이 드네요. 팀원과 세미나를 하고 후기를 쓰면서 내 역사를 기록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삶의 과정에 있을 뿐이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직시할 수 있어야,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단편적으로 읽지 않겠죠.
그러기 위해서, 우리 삶을 거대한 흐름속에서 보는 관점, 무엇 하나에 주목해 보는 관점이 모두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자신을 포함한 이 세계 역사를 하나의 고정된 관념으로 환원하지 않을 지혜가 생기지 않을까 싶네요.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고 계속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 여기서 마주하는 질문을 문빈샘이 계속 하고 있죠.
그렇다면 "우린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 건가?"(>人<;)
누군가는 후기를 열심히 썼고, 누군가는 빙긋 웃으며 댓글을 달고, 또 누군가는 그것을 읽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 o( ̄┰ ̄*)ゞ
다른 강의 시간에 채운샘이 사마천이 제후인 적이 없는 공자를 본기에 넣은 것(채운샘 표현으로는 우기고 설득시키기)이, 지금까지 우리가 사마천을 읽게 만드는 매력이라고 하셨던 게 기억나요. 중심적인 가치에서 균열을 만드는 힘으로 작동되는 매력적인 이야기들. 현주샘 표현처럼 상식을 가감없이 깨주죠. ㅎㅎ
그래서 여태후에 대한 사마천의 이야기를 두고 상상과 논의를 통해 여러 측면에서 '해석하려는 샘들의 의지' 부럽고요~~ 응원합니다!
정주민과 유목민의 '약탈'에 대한 얘기도 흥미롭네요. 저도 약탈을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샘들 의견처럼 기후 환경 조건으로 그 자체의 어떤 본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결정하여 출현시키는 그 관계성이 어떤 본성으로 출현되는 것으로 이해해 보면 어떨까... 정주민과 유목민의 차이도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어떨까?
(우린 베르그손의 [창조적 진화]를 읽고 있으니까요) 몰겠당 ㅋㅋㅋ
어쨌든 자연이라는 생명차원에서 우린 서로를 약탈함으로써 생명을 이어가고 있으니까요. 그런 본성의 차원을 공부하는 지점에서 선악이라는 이분법과 관념적 사고를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존의 상식과 관념을 깨는데 각자 읽고 있는 텍스트가 마구 침투해 오니 좋네요~~
아쉬움과 갈망이 넘치는 이번 역사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o(* ̄▽ ̄*)ブ
눈웃음이 많은 후기로군요. ^^ 덕분에 읽는 동안 저도 살짝 웃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보니, 확실히 많은 것을 얘기하는 세미나군요. ㅋㅋㅋ 역사에 대해 고민하는 한편, 유목민과 정주민에 대해서도 고민하니까요.
역사에 관해서는 사마천의 <사기>가 확실히 흥미로운 질문을 많이 끌어올릴 수 있는 텍스트인 것 같습니다. 다케다 다이준은 사마천이 '개인',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분열'을 자아내는 인간이자 정치적 인간으로서의 개인을 서술했다고 해석하죠. 읽으면서 확실히 그렇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때의 '개인'은 과연 주체적인 의미로서의 개인일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안티 오이디푸스>를 읽고 있어선지, 그건 '개인'으로 표현된 힘이자 세상을 절단, 접속하는 기계에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이건 좀 더 공부하면서 구체화해야 할 것 같지만요.
유목민에 관해서는, 점점 더 미지의 세계로 빠지고 있습니다. @_@ 어떤 분석이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는 데다가, 사실 저희가 유목민에 대해 이제 겨우 조금 아는 수준이라서 뭐가 맞고 틀린지 얘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중앙아시아사>와 관점이 미묘하게 다른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를 읽으면서 "불-편"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나중에 생각이 들었습니다. ㅋㅋ 중요한 건 그러한 분석을 통해 어떤 세계, 어떤 관계를 그리고 있는지 읽어내는 거겠죠. 호오... 점점 더 개론서가 아니라 유목민의 관점으로 쓰인 역사를 읽고 싶은 갈망이 커지고 있습니다.
마이너 세계사의 매력은 우리의 상식을 가감 없이 깨준다는 것에 있지요. 오랑캐이자 야만족으로만 알고 있었던 흉노와 돌궐은 몽골 제국에 맞먹는 땅을 차지하고 있었지요. 소국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스피로자의 말대로 우리가 이성에 따른 적합한 인식을 한 것이 아니라 상상에 바탕한 부적합한 인식을 한 결과이겠지요.
우리는 유목민을 '지성'이 없는 자들로 간주하면서 그들을 야만인으로 취급하는데요. 무엇이 야만(인)이고 문명(인)인 것인지 앞으로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야만과 문명의 구분도 어쩌면 차이와 다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생겨나는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0^ 규창샘을 '살짝 웃게 만들어버린' 후기 잘~~ 읽었습니다요~~
문득 요런 생각이 드네요. 팀원과 세미나를 하고 후기를 쓰면서 내 역사를 기록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삶의 과정에 있을 뿐이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직시할 수 있어야,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단편적으로 읽지 않겠죠.
그러기 위해서, 우리 삶을 거대한 흐름속에서 보는 관점, 무엇 하나에 주목해 보는 관점이 모두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자신을 포함한 이 세계 역사를 하나의 고정된 관념으로 환원하지 않을 지혜가 생기지 않을까 싶네요.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고 계속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 여기서 마주하는 질문을 문빈샘이 계속 하고 있죠.
그렇다면 "우린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 건가?"(>人<;)
누군가는 후기를 열심히 썼고, 누군가는 빙긋 웃으며 댓글을 달고, 또 누군가는 그것을 읽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 o( ̄┰ ̄*)ゞ
다른 강의 시간에 채운샘이 사마천이 제후인 적이 없는 공자를 본기에 넣은 것(채운샘 표현으로는 우기고 설득시키기)이, 지금까지 우리가 사마천을 읽게 만드는 매력이라고 하셨던 게 기억나요. 중심적인 가치에서 균열을 만드는 힘으로 작동되는 매력적인 이야기들. 현주샘 표현처럼 상식을 가감없이 깨주죠. ㅎㅎ
그래서 여태후에 대한 사마천의 이야기를 두고 상상과 논의를 통해 여러 측면에서 '해석하려는 샘들의 의지' 부럽고요~~ 응원합니다!
정주민과 유목민의 '약탈'에 대한 얘기도 흥미롭네요. 저도 약탈을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샘들 의견처럼 기후 환경 조건으로 그 자체의 어떤 본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결정하여 출현시키는 그 관계성이 어떤 본성으로 출현되는 것으로 이해해 보면 어떨까... 정주민과 유목민의 차이도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어떨까?
(우린 베르그손의 [창조적 진화]를 읽고 있으니까요) 몰겠당 ㅋㅋㅋ
어쨌든 자연이라는 생명차원에서 우린 서로를 약탈함으로써 생명을 이어가고 있으니까요. 그런 본성의 차원을 공부하는 지점에서 선악이라는 이분법과 관념적 사고를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존의 상식과 관념을 깨는데 각자 읽고 있는 텍스트가 마구 침투해 오니 좋네요~~
아쉬움과 갈망이 넘치는 이번 역사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o(* ̄▽ ̄*)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