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가 매우 늦어버리고 말았군요. ㅠㅠ 후다닥 정리해보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도혜왕세가〉, 〈소상국세가〉, 〈조상국세가〉를 읽고,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5~6장을 읽어오시면 됩니다.
〈효무본기〉, 세계의 중심을 세우다
〈효무본기〉는 무제가 여기저기를 떠돌며 제사를 하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입니다. 무제의 흉노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정벌, 실크로드 개척기 같은 건 나오지 않죠. 세계의 중심을 세우는 본기에, 무제라는 인간으로 표현하는 세계의 중심적 질서를 이야기하는 데 왜 제사 이야기만을 채운 걸까요? 어떻게 보면 제사만 신경 쓰는 무제의 모습이 지금 우리에게는 미신에 빠진 무지한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얘기도 있었는데요. 저희가 봐야 할 건, 사마천이 봉선 의식을 비롯한 제사를 통해 보여주려고 한 중심적 운동이 과연 무엇인가겠죠.
우선, 지금 우리와 무제가 살았던 시대에서 규정되는 합리와 무지의 기준이 다르다는 걸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하늘과 땅, 귀신과 소통하는 것은 비합리적 행위, ‘미신’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무제가 살았던 시대에서 그러한 소통은 통치의 기본 조건이었습니다. 항우의 말에서도 나왔듯, 일이 이루어지고 실패하는 데에는 단순히 사람의 힘만으로 좌우되지 않습니다. 이른바 천명(天命)이라든지 운(運)이라든지 사람들의 마음이라든지 특정한 의지나 의도의 작동을 넘어서는 더 강력한 무엇이 작용합니다. 그래서 정치에서도 잘 시행되고 있으면 길한 징조가 나타나고, 반대로 그렇지 않으면 가뭄이라든지 천재지변이 일어난다고 생각했죠. 이런 맥락에서 무제는 통치를 위해 하늘과 소통하고 감응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게 제사라는 행위로 드러난 것이죠. 효무본기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포착해서 보여줍니다.
“효무황제는 제위에 오르자 더욱 공손히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일을 받들었다.”
“그후 천자의 궁원인 상림원에 흰 사슴이 나타나자, 그것의 가죽으로 화폐를 만들어서 이것이 천자의 어진 정치에 하늘이 감응하여 내보인 길한 조짐임을 선양하였고, 백금 화폐를 만들었다.”
따라서 무제의 다른 업적들보다 제사에 몰두하는 모습이 그려졌다고 해서, 무제를 무지한 사람으로 볼 수만은 없죠. 그건 어떻게 보면 이전 본기들의 이야기와 동등하게 중심적 질서를 형성하는 운동이자, 이전과 완전히 구별되는 또 다른 중심적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는 실제로 궁궐의 권력을 개편하고, 백성들의 삶이 윤택해지도록 노력하는 정치가 돋보였다면, 무제에서는 정치의 또 다른 축으로 하늘(혹은 우주)가 적극적으로 등장합니다. 하늘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모습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알리는 퍼포먼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마천, ‘외부(혹은 주변)’를 사유하다
이번에 문빈이 범위를 잘못 알아서 〈외척세가〉, 〈초원왕세가〉, 〈형연세가〉를 안 읽고 〈오태백세가〉를 읽고 왔습니다. 하지만 크게 보면, 사마천이 역사에서 ‘외부’를 끊임없이 포착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태백세가〉는 오나라가 어떻게 성립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오나라를 세운 창립자 오태백은 주나라 태왕 고공단보의 아들이며, 주나라 왕 계력의 형입니다. 아버지 고공단보가 계력의 아들 창에게 왕위를 전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눈치챈 오태백이 미리 짐을 싸고 나라를 나간 거죠. 왕위를 선양한 것이죠. 여기서 포인트는, 중원과 다른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민족이 사실은 주나라 왕족과 같은 핏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마천은 지금 자신들이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우리가 같은 뿌리에서 나온 형제라고 말하는 거죠.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담은 〈오태백세가〉를 세가에서 가장 앞에 둔 것은, 자신들의 기원을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찾겠다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외척세가〉의 의의도 정치적 권력의 형성과 분열이 끊임없이 이민족들과의 섞임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외척들이 어떠했는지를 말하기에 앞서, 사마천은 하나라에서부터 한나라에 이르기까지 천명을 받은 군주들에게는 그들을 도운 외척이 있었음을 역사적으로 밝힙니다. 물론 외척들이 항상 군주의 권력에 이바지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여성들은 자신들이 속한 일족이 권력을 잡도록 힘을 썼고, 그 결과 분열을 야기하기도 했죠. 그러니까 모든 정치적 권력에는 외척 같은 외부, 황제와 혼인함으로써 권력을 새롭게 형성하기도 하고 동시에 분열하는 힘이 계속해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죠.
도올 선생님은 사마천이 동북공정의 선두주자라고 말씀하시지만, 저희가 읽는 사마천은 오히려 어떤 견고한 중심도 허물어지고, 분열되고, 주변화하게 되는 힘들을 포착하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세가를 쓴 것도 그런 노력의 결과 아닐까요? 본기에 나오지만, 본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들을 통해서, 다른 중심 혹은 중심 못지않은 주변을 볼 수 있습니다. 〈오태백세가〉와 〈외척세가〉가 대표적인 예죠. 이 이야기들은 주변적이지만, 중심을 작동시키는 주변적인 것들을 보여줍니다. 마치 세가를 읽음으로써 본기의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지는 것처럼요. 아직 몇 편 읽지 않았지만, 사마천에게 중심과 주변의 문제가 어떻게 풀리는지 주의 깊게 봐야겠습니다.
세계는 중앙아시아로 연결된다
읽으면 읽을수록 중앙아시아의 운동 없이 세계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중앙아시아에서 종횡으로 뛰어다닌 유목민들이 중국과 이슬람, 페르시아, 그리스의 문물을 서로 교환하는 매개 역할을 해줬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세력이 좀 더 힘을 발휘하도록 거기에 합류하거나 아니면 억제하기도 했죠. 대표적인 예로, 훈족은 유럽을 휩쓸었지만, 불가르와 마자르(훗날 불가리아와 헝가리를 이루는 민족)는 유럽의 종교를 받아들임으로써 중앙아시아의 침략을 막는 방패 역할을 하기도 했죠. 마치 사마천이 〈외척세가〉에서 하나의 세력이 주변에 있는 다른 이민족과의 연합하거나 대립하는 모습을 서술했던 것처럼,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이 여기저기에 붙거나 그들을 공격함으로써 세력의 판도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죠.
그리고 과거 당나라는 확실히 세계의 중심이라고 할만 했던 것 같아요. 당나라가 중앙아시아를 제압하느냐 못하느냐, 그들을 그곳에 정착하도록 협력을 하느냐 내쫓느냐에 따라서 유목민이 움직였고, 그 결과 유럽 국가들이 공격을 당하거나 평화를 유지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죠. 가령, 당나라가 성립하는 것과 비슷한 시기에 돌궐(투르크)이 분열한 건 그리고 이때 서돌궐이 서진해서 비잔티움을 공격하고 그 땅을 차지한 것도 우연의 일치라고만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거의 모든 역사 서술이 이런 중앙아시아의 판도와 무관하게 갑자기 이민족이 쳐들어오거나, 없었던 기술력이 갑자기 생겨난 것처럼 묘사됩니다. 유목민의 운동을 역사에서 아예 고려하지 않는 것과 지금 우리가 유목민을 ‘야만인’으로만 묘사하는 것도 그들의 역량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분명 밀접한 연관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유목민들의 움직임은 실제로 매우 파괴적이기 때문에, 그들을 낭만화할 수는 없겠죠. 그러나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이 문화도 형성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역사에서 유목민의 존재를 어떻게 사유할 수 있을지 점점 고민이 되네요.
흥망성쇠란 "단순히 사람의 힘만으로 좌우되지 않는다" 라는 것을, 모든 일에 있어 '이루어진다' 라는 관점에서 이해해 본다면...
천명(天命), 운(運), 사람들의 마음이 "특정한 의지나 의도의 작동을 넘어서 더 강력히 작용한다" 는 것을 이해하는 만큼 특정 목적에서 얽매이지 않고 또 그만큼이 자유겠죠.
그러니 피할 도리 없이 겪은 어떤 사건을 '하늘이 도왔다' 고 했을 떄, 좋고 나쁨은 이후 자기 삶의 과정에서 만들어지겠구나... 겸손한 맘으로 살아야 하겠다... 생각해 봅니다.
목적론이나 운명 또는 신적인 것을 특권화하지 않을 방법은 사건을 "이해"하는 것이겠죠? 그래서 역시 역사 공부가 필요하다는 '기승전 역사!!!!'~~(^∀^●))v
우주의 본질적 질서인 구심력과 원심력이라는 운동이 역사라는 생명을 살게 하고 있음을 배울 수 있다는 점,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통찰까지는 이르지 못해도 반성해 보게 되는,
중심과 주변을 입체적으로 그려보는 생생한 역사 이야기, 이번주도 잘~~ 읽고 갑니다!(づ ̄3 ̄)づ╭❤️~
( "마이너스 형제들" 다음 컨텐츠도 재미나게 만들어주세요!!!!)
<세가>의 첫 번째 편으로 <오태백세가>가 온 것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제국의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중심이 되는 제후국의 이야기를 쓴 게 아니라 가장 변방에 위치한 오나라의 이야기가 제일 처음이라니...! 이것은 규창샘 말대로 주변적이지만, 중심을 작동시키는 주변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본기>와 <세가>의 관계도 그렇겠지요. 아직 <세가>를 몇 편 읽지는 않았지만, <세가>를 읽어가면서 사마천은 중심과 주변의 관계를 어떻게 사유했는지 고민해봅시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세계사'는 유목민의 운동을 빼놓고는 절대 NEVER 이야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목민이 서쪽으로 이동하느냐, 남쪽으로 이동하느냐에 따라서 세계가 함께 출렁이는 느낌...! 이전에는 동양과 서양이 각자의 역사를 진행해 가면서 약간의 교류가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유목민의 역사를 읽으니 동서양의 역사는 유목민의 역사, 그리고 그들의 운동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고, 유목민족 또한 어마어마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놀랍고 또 놀랍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역사가 아직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읽어가면서 이 세계를 만든 두 축! 유목민과 정주민에 대해 생각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