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역사서에서 한 인물을 평가할 때, 그 인물의 위대함 혹은 사악함에 초점을 맞추고 기술합니다. 그래서 어떤 인물은 아무런 결함도 없는 인물로 그려지는 반면, 다른 한 인물은 못된 것들로만 이루어진 존재로 그려집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 중에서도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 등등은 ‘까임방지권’을 가지고 있으며 완전무결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가 진정으로 위대한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모순투성이에다가, 관계와 배치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마천은 <사기>를 통해 역사 속의 인물들에게서 다양한 면을 담아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 읽은 <제 도혜왕 세가>와 <소상국 세가>에서는 <본기>에 나왔던 인물이 또다시 등장합니다. 똑같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인물이 <본기>와 <세가>에서 보이는 뉘앙스는 완전히 다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본기>에서의 여태후는 피를 몰고 다니면서 군중 신하들을 제압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로 등장한다면, <제 도혜왕 세가>에서는 패기있는 신하(주허후)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또 <본기>에서는 고조(유방)가 신하의 말을 잘 듣고 신하를 적재적소에 잘 배치하여 쓰는 유능한 군주로 등장한다면, <소상국 세가>에서 고조는 신하를 의심하고, 시험에 드는 찌질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이렇게 사마천은 <본기>와 <세가>와 <열전>에 똑같은 인물을 중첩해 놓고, 조건과 배치가 달라짐에 따라, 관계와 시간의 변화에 따라 한 인물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을 펼쳐낼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이러한 사마천의 시선은 <주역>의 세계관과도 닮아 보였습니다. <주역>에는 고정된 주체가 없고, 때와 자리만 있습니다. 어떤 인물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한 인물이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어떤 조건과 배치 속에 있으냐에 따라 다르게 등장한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이렇게 사마천은 한 인간을 한 가지 면에만 초점을 맞춰서 단정 짓지 않습니다. 사마천은 인간을 아주 복잡하고 모호하게 만들어 놓음으로써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사마천에게 인간은 아주 복잡하고 미묘한 존재였기에 이렇게 해석을 열어놓는 역사 서술을 한 게 아닐까요. 그리고 이제 또 나머지 <세가>의 부분을 읽어가면서 인물의 새로운 면들을 찾고, 다양한 해석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칭기스 칸과 몽골제국
이번 주에는 칭기스 칸과 몽골 제국의 역사를 배웠습니다. 칭기스 칸은 거대한 몽골 제국을 형성한 인물인 만큼 그는 엄청난 ‘생명력’을 가진 존재로 기술이 많이 되어 있습니다. “유년기의 방랑, 매서운 추위와 숨막히는 더위에 대한 저항력, 비상한 참을성, 패배 후퇴 포로 상태에서 부상과 학대에 개의치 않음은 모두 칭기스칸의 놀랄 만한 생명력을 입증한다. (...) 테무진의 정신은 자기가 받았던 시련으로 인해 처음부터 담금질되어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를 철인, 세계를 놀라게 할 사람으로 말들게끔 되어 있었다.” (295) 이렇게 어마무시한 생명력을 가진 존재가 실제로는 얼마나 강한 기운을 뿜어냈을까요? 그러나 거대한 몽골 제국의 형성을 징기스 칸이라는 개인의 위대함에만 초점을 맞춰 설명하는 것에는 의심을 해봐야 합니다.
저희는 세미나에서 먼저 몽골 제국의 ‘관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몽골 제국의 종교는 ‘텡그리’, 즉 하늘의 신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몽골 제국의 흥미로운 점은 정복지에 자신들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케레이트와 웅구트인들 사이에 있던 네스토리우스교의 사제들, 위구르인과 거란인의 불교 승려들, 중국 도교의 도사들, 티베트의 라마들, 프란체스코회 선교사들, 또는 무슬림 물라들처럼 초자연적인 힘에 인도된다고 여겨지는 모든 종파의 지도자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갖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텡크리교가 가지고 있는 미신적 공포 때문에 ‘관용’이 생겼다고 서술하지만, 저희는 나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는 지혜가 유목민들에게는 있지 않았을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공자님이 말씀하신 화이부동(和而不同) 하는 관계 맺음을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를 나눴고, 그 방향으로 다른 책들도 함께 읽어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번 시간에 유목민과 정주민이 서로 침략하면서도 또 서로에게서 배우는 관계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칭기스 칸과 몽골 제국의 시기에 들어오면서 정주 세계로부터 문자와 공용어를 빌리고, “야삭”이라는 법전을 편찬하여 엄격한 규율로 통치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제국 건설에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는 전통 부족을 해체하고, 조직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군대를 10, 100, 1000, 1만명의 단위로 재조직합니다. 이렇게 점점 더 제국적인 면모를 갖춰가는 몽골 제국의 변화를 보면서 저희는 이것을 유목민의 정주화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유목 자체에서도 통치술이 발전된 것으로 보아야 할지? 유목과 정주의 경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것을 보아야 할지 몰라 혼란을 겪기도 했답니다! 유목과 정주의 관계도 앞으로 계속 읽어나가면서 정리해봐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칭기스 칸은 왜 이렇게 영토를 확장했을까? 함께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여기서 저희는 유목민과 정주민의 욕망이 다른 것이 아닐지 상상해보았습니다. 정주민이 전쟁을 일으키는 이유는 안정적인 삶, 평화를 얻기 위함입니다. 전국 시대에 통일의 명분으로 가져온 것은 전쟁을 끝마치기 위함입니다. 전쟁을 없애기 위해 전쟁하는, 나와 다른 것을 모두 제압하여 평화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 정주민의 욕망입니다. 반면에 유목민이 전쟁을 일으키는 이유는 이 세계에 나와 다른 것이 있음을 발견하고, 나와 다른 것들과 섞이고 싶은 욕망으로 전쟁을 벌이고 영토를 확장했던 게 아닐까요? 그리고 유목민에게서는 정주민의 소유욕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유목민에 관한 한 문서에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하늘은 중국의 지나친 사치에 환멸을 느낀다. 나는 북의 야생지역에 남아 있다. 나는 소박함으로 돌아가 한 번 더 절제를 모색한다.” 유목민은 확실히 땅과 재물을 소유하기 위한 전쟁을 벌인 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땅을 확장하고자 한 걸까요? 이 질문도 앞으로 계속 가져가면서 읽어나가야겠습니다.
사마천의 <사기>는 매우 흥미로운 역사책입니다. 사실 저는 <사기>를 왜 읽어야 하는 것인지 잘 몰랐지요. 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본기>에서 <세가>로 넘어가면서 인물들의 복수적인 힘들의 표출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왜 <사기>가 고전이 되었는지 짐작이 가더라고요. 우리의 관계성에서도 '나는, 너는 이러저러한 사람이다'고 단언할 수 없지요. 누구와 어떤 조건과 배치 속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의 힘이 달라지고 관계성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기>가 그런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말로만 듣고 있던 칭기스칸과 쿠빌라이에 대해서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도 있습니다.
떴구나, 칭기즈칸!!!
2023-04-04 22:51
저는 샘들의 후기나 댓글만 따라가고 있는데도 사마천의 [사기] 매력에 점점 빠지고...헤헤! 그냥 무어라도 하나 주워들으려고 읽고 있답니다~~^_____^
그러고보니 이순신, 안중근을 소재로 만든 영화가 큰 흥행을 이뤘죠... 그 영화들이 사마천처럼 인물을 "아주 복잡하고 모호하게 만들어 놓음으로써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면,
역사왜곡이라고 욕을 먹었을까요? 그렇다면 역사의 올바름이란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런 기준이 미치는 효과밖에는 떠오르지가 않네요.
인간의 어느 한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어 그것을 전형적인 주제로 환원하는 영화에서는 인간의 이해는 확장되지 않겠죠.
기존에 알고 있는 관념을 확인하는 방법은 공부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마이너 세계사 덕분에 역사책을 읽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입체적 해석 기대하겠습니다. (^∀^●)ノシ
칭기즈칸 제국의 영토가 어마어마했네요...정주와 유목이라는 서로 상이한 힘의 방향에 관해 여러 측면에서 나눈 얘기와 질문도 재밌어요.
관용, 화이부동, 배움, 관계라는 키워드가 역사에서는 이런 식으로 변주되고 있는 건가? ㅎㅎ, 이번주도 생각할 거리를 얻고 갑니다. 감사해여~~ 파이팅!!! ╰(*°▽°*)╯
박규창
2023-04-05 10:43
우리는 제국과 유목의 세계를 보기 위해 사기와 중앙아시아사를 공부하고 있는데, 사실 같은 이야기를 읽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가 사기에서 보는 건 끊임없이 하나의 해석으로 고정되지 않도록 분열하는 흐름, 주변에 의해 작동되는 중심 같은 것들이죠. 그리고 이건 어쩌면 중앙아시아의 유목적 운동과도 맥이 닿아있는 것 같았어요. 유목의 특징은 고정된 것을 계속해서 파괴하고, 또 다른 것으로 접속시키는 운동이었죠. 그래서 유목민들은 단순히 문화를 옮기는 매개가 아니라 무한하게 흡수하고 변형시킴으로써 그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기도 했죠. 사기의 구성, 읽기 방식은 이런 유목적 운동과 매우 유사하죠. 끊임없이 접속시킴으로써 모든 이야기를 다른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고유하게 작동하게 만드니까요. 그런데 읽다 보니, 제국을 또 새로 공부해야 하나 싶습니다. ㅋㅋ 당초 계획과는 좀 다르게 공부하고 있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지점들이 아주 많아요~~ @_@
사마천의 <사기>는 매우 흥미로운 역사책입니다. 사실 저는 <사기>를 왜 읽어야 하는 것인지 잘 몰랐지요. 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본기>에서 <세가>로 넘어가면서 인물들의 복수적인 힘들의 표출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왜 <사기>가 고전이 되었는지 짐작이 가더라고요. 우리의 관계성에서도 '나는, 너는 이러저러한 사람이다'고 단언할 수 없지요. 누구와 어떤 조건과 배치 속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의 힘이 달라지고 관계성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기>가 그런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말로만 듣고 있던 칭기스칸과 쿠빌라이에 대해서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도 있습니다.
저는 샘들의 후기나 댓글만 따라가고 있는데도 사마천의 [사기] 매력에 점점 빠지고...헤헤! 그냥 무어라도 하나 주워들으려고 읽고 있답니다~~^_____^
그러고보니 이순신, 안중근을 소재로 만든 영화가 큰 흥행을 이뤘죠... 그 영화들이 사마천처럼 인물을 "아주 복잡하고 모호하게 만들어 놓음으로써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면,
역사왜곡이라고 욕을 먹었을까요? 그렇다면 역사의 올바름이란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런 기준이 미치는 효과밖에는 떠오르지가 않네요.
인간의 어느 한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어 그것을 전형적인 주제로 환원하는 영화에서는 인간의 이해는 확장되지 않겠죠.
기존에 알고 있는 관념을 확인하는 방법은 공부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마이너 세계사 덕분에 역사책을 읽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입체적 해석 기대하겠습니다. (^∀^●)ノシ
칭기즈칸 제국의 영토가 어마어마했네요...정주와 유목이라는 서로 상이한 힘의 방향에 관해 여러 측면에서 나눈 얘기와 질문도 재밌어요.
관용, 화이부동, 배움, 관계라는 키워드가 역사에서는 이런 식으로 변주되고 있는 건가? ㅎㅎ, 이번주도 생각할 거리를 얻고 갑니다. 감사해여~~ 파이팅!!! ╰(*°▽°*)╯
우리는 제국과 유목의 세계를 보기 위해 사기와 중앙아시아사를 공부하고 있는데, 사실 같은 이야기를 읽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가 사기에서 보는 건 끊임없이 하나의 해석으로 고정되지 않도록 분열하는 흐름, 주변에 의해 작동되는 중심 같은 것들이죠. 그리고 이건 어쩌면 중앙아시아의 유목적 운동과도 맥이 닿아있는 것 같았어요. 유목의 특징은 고정된 것을 계속해서 파괴하고, 또 다른 것으로 접속시키는 운동이었죠. 그래서 유목민들은 단순히 문화를 옮기는 매개가 아니라 무한하게 흡수하고 변형시킴으로써 그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기도 했죠. 사기의 구성, 읽기 방식은 이런 유목적 운동과 매우 유사하죠. 끊임없이 접속시킴으로써 모든 이야기를 다른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고유하게 작동하게 만드니까요. 그런데 읽다 보니, 제국을 또 새로 공부해야 하나 싶습니다. ㅋㅋ 당초 계획과는 좀 다르게 공부하고 있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지점들이 아주 많아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