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사기》의 세가에서도 〈양효왕세가〉ㆍ〈오종세가〉ㆍ〈삼왕세가〉만을 남겨두고 있네요. 그 다음 열전부터는 다음 학기에 탐독할 예정인데, 분명 《사기》의 맛, 역사를 읽고 쓰는 것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될 것 같습니다.
다섯 명의 신하들
이번에 읽은 부분까지 해서 한나라를 세운 5명의 개국 공신들의 스토리가 정리됐습니다. 소하와 조참, 장량, 진평, 주발을 통해서 사마천은 신하의 다섯 가지 유형을 보여줬습니다. 어떻게 묶느냐에 따라서 이 다섯 가지 이야기만으로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가령, 치세를 열고 유지하는 것으로 소하와 조참을, 무너진 황권을 세우고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는 두 가지 태도로 진평과 주발을 묶을 수도 있죠. 장량은 좀 독특한 편이긴 하지만, 진평과 묶어서 진퇴를 사유하는 두 가지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한나라가 세워지고 통일이 됐다고 해서 결코 평화롭지만은 않다는 걸 저희는 《사기》를 통해 읽어낼 수 있었고, 평화로운 시대에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다섯 명의 신하들의 고군분투 또한 볼 수 있었죠.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과연 ‘평화’란 게 무엇일지 생각도 해봤는데, 이건 좀 더 묵혀서 발전시켜보겠습니다. ㅋ
역사와 때
어쨌든 저희는 《사기》의 묘가 본기와 세가가 복잡하게 얽히는 데 있다는 걸 조금씩 실감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호견법(互見法)을 하고 있는데요. 《사기》 전체를 다 읽고 나서 다시 읽을 때 과연 어떤 역사가 그려질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읽으면서 풀리지 않는 질문이 있는데요. 거칠게 정리하자면, ‘능동적으로 때를 맞이하는 것은 무엇일까?’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때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일단 《발견, 《한서》라는 역사책》에서 다루는 주요 키워드이기도 한 ‘때’는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필연적 흐름으로 인간사에 작용합니다. 사마천도 그러한 관점을 어느 정도 수용하는 것 같은데요. 일차적으로 이러한 이야기는 인간의 힘만으로 모든 사건을 결정할 수 없다는 인간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자연 전체의 흐름을 뒤엎을 수 있는 선택받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죠.
하지만 저희는 여기서 이런 질문이 듭니다. 저희에게 ‘때’는 다소 인간이 개입 불가능한, 그리하여 인간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다른 질서처럼 느껴집니다. 만약 그렇다면, 애초에 인간의 노력보다 ‘때’가 더 강력한 힘을 지닌다면, 우리의 많은 시도가 너무 허무해지지 않을까요? 가령, 윤석열의 당선은 참으로 이해하기가 힘든데요. 많은 역술가들이 윤석열의 ‘때’가, 사주로 보이는 기운의 배치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윤석열이 맞이한 때에는 정말 동시대 사람들의 욕망이라든지 그런 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걸까요? 사건을 ‘때’로 이야기하는 순간 시대적인 것을 물을 수 없게 되고, 시대적인 것을 얘기하는 순간 ‘때’를 놓친다는 점에서 저희는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아마 사마천이 호견법을 발명함으로써 이야기와 이야기를 얽고, 정해진 시대, 정해진 인물, 정해진 사건 같은 것을 탈피하려고 했던 것도 그런 문제의식 때문인 듯합니다. 우리는 《사기》를 읽으면서 어떤 인물, 어떤 중심, 어떤 배치가 형성되느냐에 따라 ‘때’도 다르게 형성되는 걸 볼 수 있었죠. 그런데 때를 다르게 형성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요? 다케다 다이준은 그걸 근대적 주체에게 있다고 해석하지만, 이미 주체의 특권을 의심하고 있는 저희로서는 다이준의 해석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 부분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데, 아마 역사 공부를 하는 한 두고두고 가져가야 할 질문인 것 같습니다.
유목 제국, 유목민의 정주민화? 또 다른 유목적 삶의 양식?
지난 시간 칭기스 칸에 이어, 이번에는 쿠빌라이 칸을 공부했는데요. 문빈도 공지에서 제기하고 있지만, 풀리지 않는 질문은, ‘유목민들이 어떻게 제국을 형성할 수 있었을까?’입니다. 유목민들이 저희의 상식과 달리, 무작정 여기저기 영토 없이 떠돌아다니는 야만인들이 아니라는 것은 조금씩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국은 단순히 거대한 땅이 아니라 여러 문화를 연결하고 포용하고 변형시키는 거대한 네트워크입니다. 제국을 형성한다는 건 정주민과 유목민의 기질을 모두 발휘해야 하는데요. 어떻게, 갑자기, 왜 1206년을 기점으로 정복 전쟁을 벌이게 된 걸까요?
각자 자신이 읽은 자료를 참고하면서 추측을 해봤습니다. 기억에 남는 건, 애초에 ‘정복 전쟁’을 한다는 목표가 없었고, ‘정복’의 필요성은 연이은 승리 이후에 요청된 것이란 얘기였는데요. 실제로 몽골의 역사서를 읽으면서 생각해볼 수 있겠다는 정도로 이야기를 마무리했습니다.
제국의 형성뿐만 아니라 실제로 유목민들 안에서 정주민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쿠빌라이 칸이 궁금합니다. 쿠빌라이 칸은 칭기스 칸의 손자이자 정통성을 물려받은 후계자입니다. 그런데 쿠빌라이 칸 시대에 여러 유목 부족들은 분열하는데요. 그루쎄를 비롯해서 드라마 《마르코 폴로》에서는 그 원인으로 쿠빌라이 칸을 지목합니다. 쿠빌라이 칸이 중국인의 문화를 닮고자 하는, 정주민의 욕망을 내면화했기 때문에 유목민의 전통을 지키려는 카이두 같은 다른 후계자들과 대립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쿠빌라이 칸을 과연 유목민의 문화를 버리고 중국화를 욕망한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유목민과 정주민의 삶의 양식을 조합하고 변형된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쿠빌라이 칸을 비롯해서 유목민이 정주민, 중국의 문화를 어떻게 보고 있었을지 정리해야 하는데요. 이것 역시 몽골의 역사서를 읽으면서 정리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정리되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아지네요. @_@
다음 시간에는 〈양효왕세가〉ㆍ〈오종세가〉ㆍ〈삼왕세가〉,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10~12장 읽어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제가 준비할게요~
사기와 유목 제국! 아직 풀어야 할 질문이 많네요!
다음 시즌 <사기 열전>과 <칭기스 칸 기>, <쿠빌라이 칸> 이야기를 읽으면 또 다른 게 보일 것이란 기대를 해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주에 읽은 <사기 세가>에서는 유후(장량)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뜬금없이 노인을 만나서 노인이 시키는 대로 뺑이(?)를 치다가 <태공병법>을 받는 신화 같은 이야기가 왜 들어갔는지..ㅋㅋ
사마천의 역사서를 보면 소설 같고 신화 같은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오는데, 사마천은 역사에 객관적인 진실(fact)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는지,
아울러 사마천에게 역사란 무엇이었는지 질문하고 이야기 나눴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쿠빌라이 칸은 원나라를 세우고 중국 전통을 계승했다고 서술되어 있는데, 정말 그가 중국화, 정주민화를 원했는지 계속 탐구해보면 재밌을 듯 합니다!
쿠빌라이 칸의 중국화 욕망으로 인해 몽골제국이 분열하게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 시선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드는 점이 있는데요. 중국화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중국 문화를 수용하고 모방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중국 땅을 정복하고 그곳을 통치하는 사람이 완전히 중국 문명을 도외시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무튼 유목민의 입장에서 보는 정주민, 그리고 중국 문화에 대한 생각이 어떨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