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선생님 영상의 썸네일처럼 제목을 달아봤습니다. ㅋ 작년보다 인원은 조촐해졌지만, 이야기는 작년 못지않게 풍성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발견, <한서>라는 역사책>과 <중앙아시아>를 읽었는데, 역사란 무엇이고, 우리는 역사를 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등등 아주 근본적인 이야기들부터 유목민의 관점에서 세계가 완전히 다르게 그려질 수 있다는 것 등 신선한 이야기들까지 나눴습니다. 재밌는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는데 제가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ㅋㅋ;;
“역사는 운명이다”, 그리고 마음이 중요하다
<발견, <한서>라는 역사책>에서 반복되는 주제입니다. 그러나 이때 운명은 결정론적인 의미라기보다 인간 개인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거대한 필연성에 가깝습니다. 반고는 시대의 흐름과 사건의 발생을 <주역>적으로 이해합니다. 한나라가 성립하고 멸망하기까지의 과정을 생장수장(生長收藏), 계절의 리듬으로 이해하고, 각각의 국면을 하나의 괘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자신이 놓인 때[時]를 파악하는 것을 중요한 능력으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저희는 <주역>을 공부할 때와 똑같은 질문에 봉착합니다. ‘도대체 때를 읽는다는 건 무엇일까?’ ‘때를 읽은 성인은 그래서 보통 사람과 어떻게 다르게 살아갈까?’
일차적으로 때를 읽는 건 화를 자초하지 않고, 자신이 놓인 조건으로부터 역량을 발휘하는 것인 듯합니다. 유방과 항우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방은 성격이 좋지도 않고 타고난 재능도 없는 동네 건달에 불과하지만, 항우는 좋은 가문에 태어나 뭐든 쉽게 배우는 천재입니다. 하지만 유방은 항우를 이기고 한나라를 세워 천자에 자리에 오르는 대업을 달성하죠. 거기에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고 배움을 요청하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의 자세를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잘 배우기 때문에 누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해서 적재적소에 인재를 기용했던 것이죠. 반면에 항우는 쉽게 배우는 만큼 금방 싫증 냈고, 주위 사람들보다 뛰어난 능력만을 자신하느라 직접 나서야만 마음이 편했습니다. 혼자 고생한다고 생각하고 혼자 모든 공을 이뤘다고 생각한 결과, 항우 밑에 있던 수많은 인재들은 떠나갔죠. 유방과 항우의 운명이 엇갈린 건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자신이 놓인 때를 읽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었습니다.
유방과 항우의 승부를 통해, 고대 중국이 세우는 바람직한 인간상은 결코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주역>에서는 우환의식을 갖고 함께 살아가는 성인이 등장하죠. 유방을 그런 성인이라고 할 수 없지만, 최소한 다른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며 힘을 조직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종류의 역량을 발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개인과 개인으로 싸우면 분명히 패했을 항우와의 싸움에서 유방이 끝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이렇게만 말하면 어쩐지 때를 읽는 것이 결과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갈 수 없고,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날 수 없는 때도 있지 않나요? 그때도 때를 읽는 것은 무엇일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질문은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다른 한편 반고는 마음을 강조함으로써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혹은 ‘사건을 역사적으로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경제 유계(景帝 劉啓)는 제후들의 세력이 너무 강성해지자 조조(晁錯)의 영지 삭감 정책을 채택하죠. 이에 분개한 제후들이 난을 일으키고, 이게 BC154년에 일어난 오초칠국의 난입니다. 사마천은 조조의 정책을 “권모술수”라고 비판합니다. 정책 자체는 합리적이었으나, 이득과 성과를 내려는 욕심으로부터 성급하게 진행되었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났다는 것인데요. 이와 달리, 반고는 조조의 정책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게 도화선의 불을 당긴 계기일 수는 있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사건이 중첩되지 않았다면 오초칠국의 난 같은 거대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죠. 그래서 반고는 때를 읽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의 충성심에 경의를 표합니다. 생각해 보면, 나의 진퇴와 무관하게 사건이 결정될 때, 길흉이 동시에 찾아올 때, 나아가야 하는지 물러나야 하는지 50:50인 때 등등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삼아야 할 행위의 기준은 ‘마음을 떳떳하게 만드는 것’인 듯합니다. 떳떳한 마음 만들기는 어쩌면 나의 힘으로 좌우되지 않는 이 세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지 않을까요? 적어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사건들을 겪어나갈지, 그게 생각보다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는 걸 역사를 통해 알게 됩니다. ‘때를 읽는다’는 문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같은 얘기를 하게 되더라도, <주역>과는 또 다르게 생각하게 되네요.
유목이 세계를 만들었다
오전에 철학적 질문으로 역사를 질문했다면, 오후에는 정치적으로 역사를 공부했던 것 같아요. 이번에 <중앙아시아사>를 읽으니, 확실히 ‘세계’를 만든 건 떠도는 사람들, 유목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정주민과 유목민이 공생관계를 이루지 않았다면, 곳곳에 있는 문명도 그만큼 복합적으로 발달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유목제국이 세워지면서 정주민 국가와 유목민 국가가 더욱 복잡하게 얽히기도 했고요. 우리는 정주를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봤지만, 유목민의 힘과 영향력은 우리의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우선, 우리는 유목민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유목민이라는 말로 묶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일부는 장기적 계절 이동을 하는 완전한 유목민이었고, 일부는 농경을 주업으로 하며 최소한의 이동을 하는 반(半) 유목민이었”습니다.(33, <중앙아시아사>) 산을 오르내리며 “‘수평적’ 이동을 하는 유목민들”이 있는가 하면, 평야를 떠돌며 “‘수직적’ 이동을 하는 유목민들”도 있었습니다.(36) 정주민은 자신의 입장에서 유목민을 야만인, 오랑캐 등 다양한 언어로 폄하하지만, 실제 고대 유목민은 정주민보다 훨씬 더 풍족하고 건강하게 생활했습니다. 당연히 그들만의 정치체계도 있었고, 재산에 따라 빈부의 차이도 분명했습니다. 오히려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으면 (…) 유목 생활을 포기하고 정착해 농경민이 되었”습니다. 유목민들에게 “정착 생활은 신분의 추락을 의미”합니다.(35)
어떤 강력한 정주 공동체도 유목민과 섞이고 공생관계를 구축하지 않고 생존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웃 공동체와의 전투에서 패배하거나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유목민과 다양한 문물을 교환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유목민과 공생관계를 이루지 못하면 수시로 쳐들어와 매우 괴롭힘을 당합니다. 찬란하고 강대한 제국으로 불리던 중국의 한나라도 실상 유목민들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했습니다.
한나라의 입장에서 흉노는 수시로 쳐들어와서 국경을 어지럽히는 골칫덩이였습니다. 살 만하면 쳐들어와서 약탈해 가고, 정복하자니 부족들이 너무 많아서 일망타진이 되지도 않고, 무엇보다 유목민들에게는 지켜야 할 땅이 없어서 ‘정복’ 혹은 ‘지배’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몇 번의 승리를 거두었지만 끝내 한나라는 흉노와 화친을 맺고 공물을 보내죠. 재밌는 점은, 흉노에 대한 복수혈전을 꿈꾸던 한나라와 달리, 흉노는 애초에 한나라에 대한 어떤 묵은 감정도 없었다는 것, 한나라가 보내온 공물에 대해 더 크게 보답하며 대국의 품격을 보여줬다는 것입니다. <사기>에서 흉노를 정벌하려는 대목들을 보면 비장함과 긴장감이 넘쳤는데, 흉노의 관점에서 한나라의 존재는 한나라가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정주민들에게 유목민들은 공포스런 존재로 그려지는 것 같아도, 유목민들에게 정주민들은 그리 공포스런 대상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유목민에 대한 우리의 익숙한 표상, ‘야만인이다’, ‘비사회적이다’ 등등은 정주민들의 공포가 투영된 결과일 뿐 그들의 실제 삶을 전혀 반영한 게 아닙니다.
유목민들의 복잡한 사회 체계
제국을 건설할 정도로 유목민들도 정주민 못지않게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오히려 정주민이 주장하는 혈연이나 인종, 민족, 현대에 와서는 국적 같은 정체성은 유목적 운동, 섞임의 결과입니다. 정주민들은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누구인지에만 주목하지만, 유목민들은 섞이는 운동에 입각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다 유연하게 형성합니다. 그런 점에서 유목이야말로 모든 공동체를 관통하는 원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새 언어를 전파하는 이주민들 또한 많은 경우 여러 민족과 언어의 융합으로 형성된 집단이었다. 새로운 민족 이동과 함께, 이 집단에서 사용하는 이름과 언어가 릴레이 경주에서처럼 또 다른 집단에 이전되었다. 따라서 동일한 집단명과 공통 언어를 가진 민족들도 사실은 여러 다양한 민족의 혼합 집단일 수 있다. 민족들의 이동은 복잡한 모자이크를 만들어냈다. 오늘날의 민족ㆍ언어 지도는 수천 년 넘게 이어져온 민족들의 혼합 과정을 한 특정 시점에 찍은 스냅 사진에 불과하다. 민족들의 형성 과정은 현재에도 진행 중에 있다.”(23~24)
하지만 구체적으로 유목민들이 사회를 조직하는 과정이 어떤지는 참 궁금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유목민들은 정주민들에게만 이질적인 존재인 게 아니라 다른 유목민들에게도 너무나도 이질적인 존재입니다. ‘유목민’이란 정체성만으로 그들은 결코 한 사회에 묶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원리에 의해 제국이나 연합을 하게 되는 걸까요? 흉노는 공물을 받은 첫 유목제국인데, 묵특선우는 어떻게 그런 거대한 유목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요? ‘정복’이나 ‘지배’ 자체가 불가능한 유목민들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또 다른 원리에 의해 한 데 묶인 게 아닐까 상상만 해봅니다. 아직 아는 게 없어서. ㅋㅋ;;
몽골의 역사를 공부할 때 주목할 포인트
그래서 <몽골비사> 같이 유목민들의 관점에서 세계가 어떻게 그려지는지를 유심히 살펴봐야겠습니다. 정주민은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유목민은 사람과 짐승이 항상 함께 다니기 때문에 사람이 없는데 짐승만 있으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죠. 언젠가 한나라 장수 왕희가 흉노를 유인해서 몰살하려고 매복했던 작전이 실패한 것도, 마을에 있던 가축을 전혀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몽골의 역사를 공부할 때 특히 이런 점들에 주목해야 할 것 같아요. 유목민들에게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었고, 특정 사물에 대해 정주민이 관계 맺는 방식과 어떻게 다른지, 결정적으로 칭기스 칸은 어떻게 그 많은 유목민들을 한 집단으로 묶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유목민들의 사유란 무엇일지, 거기에 스텝 지대의 독특함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국가적 사유로 황노학을 채택하는 것과 신유학을 채택하는 것에 따라 한나라가 완전히 다르게 운동했던 것처럼, 한 집단의 행보는 특정한 사유로 드러납니다. 몽골 제국의 사유는 어땠는지, 그 흡입과 확산은 어디서 비롯되었던 걸까요?
이밖에 다른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대략 이 정도로 정리해야겠군요. ㅋ
다음 시간에는 <발견, <한서>라는 역사책> 나머지, <중앙아시아사>는 4~6장을 읽어 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문빈에게 부탁하겠습니다~~
역사를 발전과 진보적 관점으로 서술한 게 아니라 생장수장의 관점, 변화의 관점에서 서술했다는 게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생애에 개인의 능력과 의지보다 '때'가 지대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역사 속 인물의 이야기로 보니 아주 쏙쏙 들어옵니다^^ 유방과 문제의 인생역전 이야기! 여태후, 척부인 등등! 때를 떠날 수 없는 우리가 어떻게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해봅시다^!^ 그리고 민족, 문화, 언어 등등 온갖 것이 뒤섞이고 교류하며 전세계를 이어준 낯설지만 흥미로운^^ 유목 세계를 탐구해봅시다!
( •̀ .̫ •́ )✧'때를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규창샘의 글에 도움을 받아 보니, 자기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국면 앞에서 자신이 놓인 조건을 생각해 보는 것이지 않을까... 즉각적 판단을 유보한다는 게 되게 힘든 일이죠. 일상에서 내 눈빛 하나, 말 한마디, 행동들이 어떤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인지 숙고하거나, 다른 측면에서 타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하지 못하고 흘려보내고 마니까요. 그 '때' 라는 것의 필연성을 총체적으로 보기 위해 각자 공부에서 자기 질문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유목이 역사를 만들었다'는 관점도 흥미진진합니다. 앞으로도 "마이너 세계사" 열심히 읽고 재밌게 써 주세요~~ 파이팅~~\(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