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공지가 늦었습니다요. ㅠ 마이너 세계사 시즌1 마무리를 앞두고.... ㅠㅠ
이제 대망의 지도 발표만을 남겨두고 있네요. 다음 시간에는 오전에 진득하게 지도를 그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번 시즌에 지도 그리면서 느꼈던 바도 함께 정리할 테니 생각해 오시고요! 그럼 간단하게 지난 시간 채운 선생님의 강의를 정리하는 걸로 공지 겸 후기를 마무리할게요.
‘역사’의 탄생=‘인간의 시간’의 시작
‘역사학’은 근대 이후에 생겨난 학문입니다. 이전까지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라 할 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헤로도토스의 《The Histories》나 사마천의 《사기(史記)》, 《조선왕조실록》 같은 게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은 ‘기록물’의 성질이 매우 강합니다. 헤로도토스의 텍스트 제목은 당시에 ‘기록’, ‘탐문’, ‘조사’을 뜻하는 단어였고, 실제로 페르시아 전쟁에서 아테네가 이길 수 있었던 조사한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마천의 《사기》도 그가 젊은 시절 천하를 떠돌면서 들었던 ‘신빙성 있는 이야기’들이 병렬적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란 단순히 이야기의 기록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근대 이전까지의 역사서를 보면, 그것은 이야기의 기록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보물을 구성하는 데에는 ‘인간의 시간’이라 할 만한 게 반영돼 있지 않습니다. 가령, 서양의 중세시대는 ‘신의 시간’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즉,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종말의 날에 구원이 있기까지의 서사로 서술되던 시대였죠.
채운 선생님은 역사가 시작되려면 인간 스스로 역사적 시간을 만들어 간다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하셨죠. 이는 중세의 ‘신의 시간’이 무너지면서 시작된 인간의 시간의 시작과 궤를 같이 합니다. 더 이상 신의 의지에 따라 구원을 목표로 하던 것에서 벗어나 인간 스스로 일어난 사건들 간의 인과를 규정하면서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선을 정립하기 시작한 것이죠. 여기에는 시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관점의 발명이 전제돼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 전체를 조망한다는 것은 분명 이전에 갖지 못했던 풍경을 보여줬지만, 동시에 인간 실존의 다이내믹함이 평가절하된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가령, 우리는 조선의 18세기를 몇 가지 ‘시대적 사건’으로 요약할 수 있게 됐습니다. ‘탕평책’, ‘영조와 정조’, ‘김홍도’, ‘상품 경제’ 등등. 하지만 이러한 사건만으로 그 시대가 요약될 수는 없습니다. 저희가 역사를 지루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런 점과 연관이 있습니다. 단순히 ‘시대적 사건’과 ‘연대기’에 입각해서 역사를 외우다 보니 우리 스스로 사유를 발휘할 여지가 없어집니다. 하지만 역사학이란 이렇게 정해진 사건을 외우는 것으로밖에 공부할 수 없는 걸까요?
보편적 역사 대신 실재적 역사
여기서 저희는 니체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독일에서 역사학은 랑케가 ‘역사학’을 만든 이후로 실증주의적 성향이 매우 짙었습니다. 여기서 실증주의란 아직 이렇다 할 해석되기 전인 1차 사료를 근거로 누구나 납득 가능한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역사 서술은 단선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랑케의 역사 서술은 당시 유럽에 형성되고 있던 근대국가를 신의 뜻이 투영된 결과로 합리화시킨 점이 없지 않았죠.
그러나 니체는 역사적 시간 밖에 있던 시점을 역사 안으로 다시 끌어내렸습니다. 그것은 주어진 시간선을 탈구시키는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시간은 사건과 더불어 구성됩니다. 이때 사건은 연애 같은 정서적 사건부터 프랑스 혁명이나 새로운 왕조가 세워지는 사회적 사건까지 모두 포함됩니다. 이런 사건들을 겪으면서 우리는 매번 새로운 시간선을 설정하죠. 니체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역사를 사유했습니다. 즉, 일어난 사건에만 주목하는 게 아니라 사건이 생성되는 순간을 중심으로 역사를 통찰하기 시작한 것이죠.
이런 식의 역사는 시대를 읽어내는 안목이 무엇보다 핵심입니다. 니체가 사용한 ‘반시대성’의 의미는 ‘때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직 이 시대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드러난 사건들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운무 같은 것입니다. 니체는 이런 운무를 읽는 용도로 역사를 사용했습니다. 사람들의 욕망, 시대의 흐름 등 사람들의 마음이 형성하는 자기를 읽어냄으로써 이 시대에 필요한 아젠다를 고민했죠. 당장 사람들이 호응해주지는 않더라도 꼭 제기돼야 할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이러한 작업은 현실 정치만큼이나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푸코, 비역사적 운무를 포착한 거장
푸코는 니체의 작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활용한 역사학자입니다. 그런데 푸코의 작업을 이해하려면 아날학파를 경유해야 합니다. 아날학파는 랑케를 필두로 한 실증주의적 사관을 비판하고, 완전히 새로운 방법론을 발명했습니다. 아날학파는 거의 모든 것을 사료화했습니다. 실증주의에서 사료마다 1차, 2차, 3차... 로 구분했던 것에 반해, 아날학파는 어떤 시간과 계열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사료가 다른 의미를 구성하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채운 선생님은 그 예로 브로델의 중층적 시간을 설명해주셨습니다. 브로델은 우리의 삶은 ‘정치의 시간’, ‘일상의 시간’ 등 여러 시간이 겹쳐 흐르는 것으로 파악합니다. 대통령이 바뀌더라도, IMF가 터지더라도 그게 곧 일상을 뒤흔들 만한 사건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바로 영향이 오기도 하지만, 모두에게 똑같은 순간 똑같은 크기로 오지는 않다는 것에 유의할 필요도 있습니다. 아날학파는 전체 역사의 합법칙성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그 시대의 심성(멘탈리티)를 읽어내는 식으로 역사를 서술했습니다.
푸코도 이런 식으로 사료들의 연관을 구성함으로써 시대의 모습을 독특하게 포착하는 역사를 서술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방법론을 ‘고고학’이라 말했는데, 마치 여러 파편이 맞아 떨어지듯 연관 없는 사료들 사이에서 일정한 공통된 방향을 맞추는 작업인 것이죠. 그러나 여기서 푸코가 주목하려 했던 것은 시대 사이의 단절입니다. 즉, 니체가 포착하려 했던 사건이 생성되는 지점입니다. 《감시와 처벌》에서 ‘스펙터클한 신체형’에서 ‘감금형’으로 갑자기 바뀌게 된 단절에 대한 분석이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겠네요.
푸코적으로 질문해보는 것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토론 때는 ‘반일 정서’에 대한 얘기가 있었죠. 한국인이 가지는 역사적 정서 중 대표적인 것 중 하나인데요. 단순히 일제강점기를 경험했던 세대만이 아니라 그런 세대로부터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지금의 기성세대, 청년세대까지 모두 강력한 반일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토론 때는 ‘반일 정서’를 어떻게 분석할 것이냐 가지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만 딱히 구체적 단서는 잡지 못했었죠. 이에 대해 채운 선생님은 ‘반일 정서’라는 실체를 두고 접근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반일’에서 지목되는 ‘일본’도 객관적 실체가 아닙니다. 세대별로 ‘반일 정서’를 가지고 있다 해서 그것들이 동일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반일 정서가 있다’고 실체화하는 순간 그 안에서 형성됐다 사라지는 권력 관계들이 은폐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형성하고 있는 ‘반일 정서’에 대한 구체적 분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