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세계사 7월21일 후기
더위를 식혀주는 비가 내리는 목요일에 드뎌 개학을 했네요. 두 분이 늘었다고 좋아했는데~ 아프셔서 함께 못하니 마음이 아프네요. 여름에 몸을 잘 가꾸셔서 가을에는 만날 수 있길요. 1교시는 아프리카의 역사 3, 4장을 공부했습니다. 금속기의 충격에서는 이집트, 누비아와 북부 에티오피아, 베르베르인·페니키아인 그리고 로마인,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로 나눠놨습니다. 익숙지 않은 지명들과 옛날 지명으로 부르니 읽어나가기 어렵습니다. 좀 읽다 보면 괜찮아지겠죠. 처음으로 이집트를 다룹니다. 이집트문명으로 유명하고 여전히 인구도 많고 아프리카에서는 잘사는 나라입니다. 이집트는 아프리카-지중해 인종이 중심을 이루고 아프로아시아어를 구사합니다. 이집트는 강력한 씨족이나 종족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재산은 기본가족 내에서 보유한다. 일부일처제이며 양계체계이다. 가부장적인 사회였지만 여성의 지위가 상당히 높았으며, 이혼할 때 공동으로 획득한 재산의 1/3을 받았다.
누비아는 이집트와 나일강을 끼고 상누비아와 하누비아로 나뉘기도 했다. 이집트와 누비아는 경쟁하면서 한쪽이 강성해지면 상대가 힘들었지만 각자 자기의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누비아의 가장 비옥한 농경지대에 카르마에 사람들은 누비아와 신체적으로 유사하며 사회 분화가 이루어져 있고 이집트와 적대적인 왕조들과 동맹을 맺기도 했다. 평야지대에서 살던 사람들이 건조화를 피해서 고원으로 이동을 했던 디므트(D’mt)가 있다. 이들의 도기는 티그라이 도기의 특징을 지녔고 남아라비아 문자로 새겨진 비문에서만 왕국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의 문화는 에티오피아게게 물려주었다.
베르베르인은 북부 평야지대와 접근 가능한 산지에 주로 살고 쟁기를 사용하고 관개농경을 했다. 누미디아인은 모로코의 마우리와 알제리와 튀니지에 살고 있다. 건조한 목초지와 사막에 살면서 베르베르어를 쓰는 반목축민인 가라만테인이 있다. 비베르베르인 집단들로 오늘날 티베스티에 사는 투부족의 조상, 이들을 베르베르인이라고 하고 평등주의를 강조했습니다.
페니키아인은 북아프리카에 금속 세공술 특히 청동기와 철기 제작술을 도입해서 농사를 짓게되었다. 이들의 가장 큰 목표는 서부 지중해 무역을 석권하는 것이었고 북아프리카 해안을 B.C.2천년기 후반부터 식민화하기 시작했다.
로마인은 베르베르인이 사는 후배지(後背地)로부터 부를 획득하고 지배하면서 주요 곡물을 공급받았다. 북아프리카 대륙은 로마인들의 거대한 사유지이고 내륙의 고원은 올리브유의 공급지이다.
아프리카 대륙 대부분은 철기에 선행하는 청동기시대를 거치지 않았다. 철은 아프리카 역사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는 철기가 도입되고 나서야 농경이 이루어졌다. 아프리카에서는 대장장이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야금술은 B.C.5천년기 후반 이집트에서 천연구리를 사용한 것이었다. B.C.4천년기 초반에는 구리광석을 제련했으며, 청동기가 사용된 것은 B.C.3천년기이다. 제철술은 B.C.7세기경 아시리아인과 그리스인에 의해 이집트에 소개되었다. 대장간 유적에서 채취한 숯의 성분으로 연대 측정을 하지만 신뢰할 수 없어서 아프리카의 야금술의 기원은 불분명하다.
반투어를 쓰는 개척자들은 채집과 수렵에 크게 의존하며 이동성이 강했다. 그들은 농사기술에 적합한 토지만을 택하고 물이 풍부한 환경을 찾아다녔다. A.D.3세기경 도기 제작자들은 잠비아의 빅토리아 폭포 부근에 농경·소·철·구리를 가지고 들어왔다. 소는 촌락의 한가운데 만든 우리에 가두어 놓았다. 그들은 경작지가 지력을 상실하면 이동을 한다.
아프리카 남반부 전역으로 새로운 문화가 퍼져나가는 것은 반투족의 정복에 의한 것도 있지만 이 문화의 특징은 어떤 지역에 서로 연대(年代)를 달리해서 도착하곤 했다. 이들은 소규모의 무리로 동해안을 따라 남아프리카로 이동하였다.
4장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이다. 북아프리카의 그리스도교는 A.D.61년에 마르코가 직접 그리스도교를 알렉산드리아에 들여왔다고 전승된다. 3세기 초 최초의 주교들이 알렉산드리아 밖에서 선교를 시작해서 이집트인에게도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었다. 312년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했다. A.D.400년에는 이집트인의 90% 정도가 그리스도 교도였다. 이집트의 콥트교회는 예수 탄생부터가 아니라 A.D.284년 ‘순교자의 시기’에서부터 기원을 잡는다.
에티오피아의 그리스도교는 알랙산드리아에서 악숨으로 들어와서, 단성론을 신봉하게 되었고 12세기 중반까지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콥트교회 수도사들에 의해 인도되었다. 궁정에 영향을 먼저 주었기 때문에 국교가 되어 왕실을 등에 업고 성직자나 수도사들에 의해 민중 속으로 퍼져나갔다. 이교의 사원은 교회로 바뀌었다.
수단의 그리스도교는 하층에서 상층으로 성장했고, 천 년 동안 유지되었다. 단성론을 받아들였고, 콥트 교회의 순교자 시대를 연대의 기원으로 삼았다. 누비아(수단)의 그리스도교는 지역문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소멸하게 되었다. 이들 교회의 운명은 이슬람과의 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는 예언자 마호메트의 죽음에 이은 아랍의 힘과 이슬람의 확대는 이후 400년간 세계사의 중심을 이루는 과정이었다. 이 시기에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지배적인 신앙이 되었으며, 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에 지배적인 신앙이 되었다. 아프리카 정복으로 이슬람화가 진행되는데 정복자들은 신앙을 강요하지 않고, 이슬람적인 사회질서를 수립하고 개인들은 질서에 순응하기를 기다렸다.
이집트에서는 개종하는 사람에게 평민의 지위를 부여하고 개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관용을 베풀고 토지세와 인두세를 부과했다. 이집트는 흑사병으로 이집트 인구의 1/3이나 1/4이 사망했고, 폐페스트는 160년 동안 28번의 역병이 발생해서 생긴 인구 감소는 경제적 쇠퇴나 맘루크 집단들 간의 전쟁이나 화기의 발달로 생긴 피해보다 심각하게 이집트를 쇠약하게 했다. 이런 양상은 19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다.
북아프리카에서는 정복이 이슬람적 질서의 필요조건을 창출했지만, 서아프리카에서는 무역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사막무역에 종사했던 대부분의 민족은 10세기경에는 무슬림이었다. 동아프리카는 남부 아라비아와 홍해에서 온 무역상들에 의해서 즉 인도양의 무역로를 따라 이슬람이 전파되었다. A.D.1000년부터 동아프리카 해안의 이슬람화와 상업적 발전은 가속화되었다. 동아프리카는 1498년 포르투갈 선원들이 오기까지는 번영을 누렸다.
수단의 이슬람교는 이집트와의 공조 관계가 깨지면서부터다. 이집트의 아랍 목축 부족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반대파를 누비아로 몰아냈다. 서서히 확대되어 가던 이슬람 공동체가 유목민의 세력이 더해지면서 확장되었다. 유목민과 무슬림 교사들이 창조한 사회유형은 오늘날 수단 북부의 사회적 토대가 되었다. 1742년을 끝으로 누비아의 그리스도 교도는 기록에서 사라졌다.
에티오피아는 이슬람의 팽창에도 그리스도교가 살아남은 지역이다. 이 지역은 이슬람 세력권에서 지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최초로 이슬람을 받아들인 민족은 쿠시어 계열의 언어를 사용하는 동부 저지대의 소말리족이다. 그다음은 동남부의 고원지대 가장자리에 살면서 셈어를 사용하는 민족이었다.
에티오피아는 왕의 연대기와 교회의 문헌들로 세부적인 분석이 가능한 사회였다. 여기서는 자연에 대한 통제와 개간을 주목적으로 사회를 조직화했고, 기독교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 선교사가 현지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교의 특징이 강화되었다. 이슬람의 팽창으로 에티오피아 왕국이 남쪽 고원지대로 후퇴하면서 에티오피아는 그리스도교의 중심으로부터 고립되었다. 그래서 성서가 그리스도 교도의 상상을 지배하게 되었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제2의 이스라엘이 되었다. 에티오피아의 그리스도교는 평신도와 영적 엘리트와의 구분이 명확하고 다채롭고 상징적이며 구전에 크게 의존하는 촌락 그리스도교다. 에티오피아 교회는 유일하게 아프리카에 독립적으로 살아남게 된다.
나일강과 사하라 사막이 아프리카에서 굉장히 중요한 지리적 위치를 차지하네요.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는 유럽과 가까워서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고 고통도 역시 많이 받았네요. 주로 알고 있는 아프리카의 지명은 내전이나 분쟁을 통해서 들은 이름들이네요. 지구에서 22.5%의 땅덩어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인구도 적고 경제는 아주 미약해서 어떻게 살고 있고 살아왔는지 더 궁금해집니다. 이번 학기에 배워나가기로~
두 번째 시간에는 아프리카 지도에 나라 이름을 쓰면서 위치와 나라 이름을 배웠어요. 아프리카에는 55개국이 있다는데 일단 25개 정도 외우기로 했지요. 우리에게도 숙제가 생겼네요. 아덴만이 있는 곳은 소말리아, 케이프타운이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전혀 상관은 없지만 가나초코렛이 생각나는 가나 옆에는 나이지리아. 모리타니와 부르키나파소는 처음 듣고요. 잠비아, 짐바브웨, 모잠비크 이름들이 비슷비슷~ 잘 외워질지……
크아~ 이렇게 보니 내용이 참으로 많았군요 ㅋㅋ 이집트는 양계였고, 가부장제였지만 여성의 권위도 존중받았으며 가족의 단위가 마을이 아니라 5~6인이었다는 등 다른 문명과 다른 특징이 있어서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아이고, 정리해서 외워야 할 게 아주 태산입니다. ㅠ
그리고 이번에 아프리카의 역사를 따라가면서 그곳의 척박하고 험준한 지형이 조금은 그려지는 듯 했습니다. 나일강을 제외하고는 '풍족함'을 맛볼 수 없는 지형이었더군요. 그리고 중앙아프리카부터 남부까지는 말라리아가 풍토병으로 있어서 기아가 아닌 질병에 의해서도 살기가 참 힘들다고 하더군요. 도대체 아프리카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보면 볼수록 궁금해집니다!
1, 2장을 요약하려고 했더니 너무 내용이 많아서
걍 패스했어요. 한 장의 내용이 몇 천년을 다루고 북부에서 동서부로 나가면 지역적으로도 엄청 거리도 멀고 기후도 환경도 확 바뀌더군요.
아프리카에는 우리와 다르지만 신비로운 풍습, 신화, 문학, 역사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후기를 읽었어요. 단단하게 지반 고르기부터 하고 계시군요. 저는 외면하고 사는 아프리카 대륙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지형을 그리고, 나라 이름을 외우시는 것을 보니 이 세미나 학인분들은 애정을 갖기 시작한 것 같아요. 저는 후기를 읽는 것으로 뒤에서 응원할게요. 낭필에서 [굶주린 세계]를 읽고 난 뒤 아프리카 대륙이 수탈, 침략, 기아문제가 아닌 다른 면이 분명 있을 것이다, 보고싶다라는 마음이 생겼어요. 제가 공부를 당장 못해도 다른 분들이 그려놓은 지도(후기)를 보면서 따라가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