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늦었습니다! 일단,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바로 ★뉴페이스 두 명★이 함께하게 됐습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이번 마이너 세계사는 6명이 함께하게 될 운명이었나 봅니다. 버티기만 하면 점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도 한다는데, 다행히 저희가 그런 경우인가 봅니다. ㅎ 남은 건 세미나 시간을 재밌게 채우는 것이겠네요.
다음 주 공지입니다. <아프리카의 역사> 7~9장(375쪽)까지 읽어 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요즘 연구실에 감자와 옥수수, 복숭아가 많이 들어와서 이것들로 제가 준비할게요~
이번 시간까지는 읽는 게 좀 빡빡했죠.^^;; 이렇게 서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유럽이 침략하기 전 아프리카 대륙에는 ‘역사’라 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서 ‘역사’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일단 ‘인간’을 중심으로 재편된 고유한 시간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지난 채운쌤의 강의를 떠올려 보면, 유럽에서 역사는 신의 시간에서 벗어나 인간의 시간으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는 그와 비슷한 흔적을 (저희가 읽은 텍스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떤 부족이 어떻게 전파되고, 어떤 왕국이 형성되었는지 여러 흔적을 통해서 역추적하는 게 최선이었죠.
텍스트 옹호는 이쯤하고, 어쨌든 7장부터는 아프리카의 가슴 아픈 역사가 시작되니 한결 읽기가 수월할 겁니다! 그럼 간단하게 이번 시간 나왔던 얘기들을 정리하는 걸로 늦은 공지를 마무리하겠습니다. (_ _)
아프리카, 위대한 개척자들의 땅
아프리카는 척박합니다. 보면 볼수록 이런 척박한 곳이 어디 있나 싶어요. 단순히 사막 지형이 많은 것 이상으로 기후도 변덕스럽고, 말라리아를 비롯한 풍토병이 다종다양합니다. 같은 대륙에 있지만 서부와 동·남부가 단절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대륙 중앙부에 이런 환경적 요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에 살아갈 터전을 확보한 이들의 흔적이 참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지난 공지에도 썼지만, 아프리카는 이런 척박함 때문에 그 개척의 진행이 지역별로 다릅니다. 이 책에서 ‘서부 아프리카의 사회 개척’과 ‘동·남부 아프리카의 사회 개척’으로 챕터를 구분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죠.
이곳이 얼마나 척박했냐면, 1000명 중에 2~3명만 살아남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고, 아이들도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코트디부아르의 아니이족 사이에서는 한 여성이 낳은 아이들 중에 네 번째로 사망한 아이만 장례를 치렀다”고 합니다.(130) 사회가 개척되려면 최소한 인구가 급증해야 하는데, 일단 환경 자체가 매우 생존하기 힘들었고, 그렇다고 생산력을 증가시킬 기술을 외부로부터 쉬이 전파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뭔가가 발전하기에는 참 힘든 땅인 것 같아요.
텍스트 초입부에 “아프리카인은 전 인류를 대신하여 지구에서 가장 살기 힘든 지역을 개척해 온 개척자였고, 지금도 그러하다”라고 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과장이 아닌가 싶었는데, 아니었어요. 읽으면 읽을수록 이곳이 어떤 곳인지,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등등이 점점 궁금해집니다. 지형은 사막뿐만 아니라 삼림, 사바나 지대가 있고, 인종으로는 흑인, 백인, 황인이 모두 있죠. 종교적으로도 이슬람과 기독교, 토착 종교가 섞여 있죠. 10세기 이후로 사회 체제로서 이슬람을 채택했다고 하는데, 최근까지도 이 이슬람을 어떻게 수용할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는 얘기도 있었죠. 흠... 왜 역사를 배우고 있는데 직접 여행을 가고 싶은 걸까요? 아직은 매우 추상적인 수준에 불과하지만, 텍스트를 읽은 것에 불과한 데 텍스트가 담지 못한 아프리카가 궁금합니다.
더디고 더딘 사회 개척
인구가 부족하면 잉여를 생산할 수 없습니다. 잉여가 없으면 지배계급이 출현할 수도 없죠. 외부에서 노예를 유입하려고 해도 사막을 건너는 동안 절반 이상이 죽고 맙니다. 당연히 무역도 원활할 수 없었고, 기술 전파를 받는 것도 너무 어려웠습니다. 이웃 부족을 통합해서 덩치를 키우려 해도 ‘침략자’에 대항하기 위해 부족끼리의 연합하는 전통적 관습이 여러 곳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정복 전쟁을 시도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덕분에 아프리카에는 국가 규모라 할 만한 곳이 오랫동안 등장하지 않았고, 등장해도 드문드문 있었습니다.
환경적 요인 때문에만은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철저하게 국가 없는 상태를 유지한 사회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세네갈의 졸라족 같은 연안지역 민족들은 “거의 모든 메커니즘을 이용하면서 철저하게 국가 없는 상태를 유지했”습니다.(144) 프랑스 인류학자 피에르 클라스트르의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를 보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클라스트르는 실제로 남미 원주민 부족 중 일부와 생활하면서 그들만의 독특한 정치적 테크닉을 분석했는데요. 그들은 미개해서 국가가 출현한 게 아니라 오히려 국가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식으로 제도를 발명했다는 것이죠. 대륙은 다르지만, 국가 없는 상태를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아프리카와 남미 원주민들 사이에 비슷한 정치적 고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누가 아프리카 사회의 정치적 기술을 분석해주면 좋을 텐데 말이죠. 그러면 환경에 따라 어떤 반국가적 정치적 테크닉이 발명됐는지도 알 수 있을 거니까요.
이밖에도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았습니다. 이슬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들 스스로 이슬람의 역사에 자신들의 가계를 끼워 넣었죠. “말리의 왕은 모하메트의 흑인 무에진이었던 빌랄을 자신의 조상으로 받아들였고, 카넴에서 요루발란드까지 모든 통치자는 자신들의 혈통이 중동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했으며, 심지어 철저하게 반(反)이슬람적인 바리바족 지도자들조차 마호메트의 가르침을 거부하여 메카에서 쫓겨난 사람을 조상으로 삼았다.”(168~169)
자연에 대한 태도도 다양했습니다. 자연을 ‘극복’하려 한 부족부터 자연과의 공존을 시도한 부족, 자연 자체를 선(善)으로 간주한 부족 등 아주 다양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종교란 자신들이 겪고 있는 불행을 해결하기 위한 외부적 힘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당장 자신들의 “출산력·번영·건강·사회적 화합”에 도움을 줄 수 없는 종교를 버리고 가차없이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었다고 하죠.(161) 여기서 저자의 분석이 흥미로웠는데요. “어떤 근거에서든 종교적 관념과 관행이 만약 효력을 발휘한다면 거기에 일관성이 거의 없더라도 관대하게 받아들였다. 이는 아프리카인이 지능이 낮다거나 분별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체계적인 외래종교에 의해 도전받지 않는 한 그들에게 체계적인 종교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162) 애초에 일관된 체계를 형성한 종교를 따라야 할 필연적 이유 같은 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종교란 민족적 필요에 의해 발명된 것이었고, 그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언제든 폐기될 수 있었던 것이죠.
이렇게 보니까, 아프리카는 참 여러 가지가 혼합적으로 잘 섞인 것 같아요. 외부에서 무언가가 들어오기는 쉽지 않지만, 한 번 들어오면 그게 인종이든 종교든 사회 체제든 참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물론 배척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자신들에게 맞게 변형해서 잘 수용합니다. 외부와 극명하게 단절된 곳의 문명도 독특하긴 하지만, 이렇게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의 문명도 참 독특하겠죠? 궁금하네요!
이번에는 아프리카 대륙에 어떤 나라들이 있는지 확인했고, 추가적으로 19세기 당시의 식민지도(圖)를 공부했습니다. 지난번에 읽은 윌리엄 맥닐의 <세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가로로는 프랑스가, 세로로는 영국이 아프리카를 삼켰다고 했었죠. 이 지도만 봐도 착잡하네요.
저희는 아프리카 대륙의 나라와 그곳을 점령한 식민지들을 공부하고 있고, 이번에 새로 합류한 뉴페이스 두 명은 '아프리카 대륙'을 그리는 것부터 연습하고 있습니다. ㅋ 아래는 이 둘의 작품이에요!
그럼 다음 시간에 만나요!
잉여물이 생기고 그것을 사적으로 취하는 지배계급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국가가 등장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는 잉여 생산물이랄 게 없으니까, 부족 공동체로 겨우 유지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국가가 발생하지 않는 방식의 정치적 테크닉이라니요! 이 부분은 저도 호기심이 생기네요. 직선의 국경선을 보니 무시무시하네요. 입맛에 맞게 고깃덩어리 썰듯 타인의 삶을 재단했을 침략자들의 폭력... 저는 무지해서 상상도 안됩니다. 무작정 정서적으로 아찔하다는 느낌만 전해지네요. 더운 여름 열공하시는 학인분들 덕에 저는 무임승차의 혜택을 누려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