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마이너 세계사 4주차 세미나 후기입니다. 저희는 이번 주에 7장과 8장의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희는 특히 7장의 내용을 흥미롭게 읽었는데요. 7장에서는 대서양 노예무역이 어떻게 전개됐는지 그리고 대서양 노예무역이 아프리카 대륙에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주었답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역사는 정말 다양하고 복잡하여 아직도 낯설고 어렵지만 한번 천천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대서양 노예무역은 1441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젊은 포르투갈인 선장 안탐 곤살베스가 자신의 고용주인 엔리케 우나베가도르 왕자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서사하라 연안에 있는 흑인 남녀 한 명씩을 납치한 사건이 바로 노예무역의 출발입니다.
노예무역이 활발해진 시기는 14세기 중엽 이후부터인데요. 노예무역이 활발해진 이유는 놀랍게도 유럽 전역에 퍼진 ‘흑사병’ 때문입니다. 흑사병과 노예무역이 어떤 연관이 있을까 궁금하시지 않나요? 흑사병은 유럽의 인구를 크게 감소시켰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유럽에서는 노동력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곳곳에서 발생합니다. 가사노동, 농업, 설탕수수 등등. 부족한 노동력을 메꾸기 위해 유럽은 아프리카로 눈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노예무역이 유럽의 일방적인 침탈만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노예무역이 활발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로 “기꺼이 노예를 팔려는 아프리카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아프리카인이 유럽인들에게 기꺼이 노예를 판매했던 것은 이미 아프리카 내에서 노예를 사고팔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아프리카 지역의 특성상 열악한 기후와 전염병으로 인해 인구가 부족해지는 경우가 많았고, 인구부족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아프리카 민족들 사이에서 노예를 사고파는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즉, 아프리카 대륙에는 이미 노예무역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고, 그렇기에 유럽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무역을 활발하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한 인간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노예가 되는지 보여줍니다. 이것도 흥미로웠는데요. 전쟁 패배와 납치로 노예가 되기도 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자가 재판을 통해 노예가 되기도 하고, 빚을 갚기 위해 노예가 되기도 하고, 기근기에 스스로 몸을 팔아 노예가 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노예가 된 사람들은 배에 실려서 유럽으로 수출되는데, 항해가 끝나고 살아서 노동하는 인원은 반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고통의 역사를 가진 서아프리카인은 유럽인을 “바다의 괴물”, “식인종”이라 칭하고, “유럽인의 검은 신발가죽은 아프리카인의 피부이고, 유럽인이 마시는 와인은 아프리카인의 피이며, 유럽인의 화약은 아프리카인의 뼈를 태워 빻은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끔찍하지 않나요?
이 끔찍한 노예무역은 1807년 영국 의회에서 대서양 노예무역을 폐지하기로 결정하면서 공식적으로는 끝이 납니다. 하지만 이 결정으로 인해 불법 노예무역이 생겨나고, 노예무역의 패턴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됩니다. 영국 군대를 피하고자 신속하게 노예를 싣고 출항하는 배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노예수출이 금지되면서 오히려 아프리카 대륙 내부의 지역 간에 노예무역이 확대되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8장은 15세기부터 19세기 아프리카 대륙이 겪은 다양하고 복잡한 역사를 보여줍니다. 유럽의 영향으로 북아프리카, 서아프리카, 남부아프리카, 동부아프리카는 서로 다른 역사를 펼쳐나갑니다. 어떤 지역은 급속한 인구성장을 경험하는 반면, 다른 지역은 급격한 인구 감소를 경험합니다. 저자는 이렇게 지역마다 발생했던 서로 다른 차이들을 천천히 짚어나갑니다.
북아프리카는 15세기부터 19세기에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를 보입니다. 그 이유는 기근과 가뭄, 역병의 대유행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페스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부자와 지체 높은 사람들이 마치 빈민들처럼 굶주리다 죽어갔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큰 기근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재앙의 시기에 유일하게도 이집트는 인구성장의 길을 걷습니다. 무하마드 알리의 업적 덕분인데요. 천연두 예방접종, 공공의료 시설 건립, 관개시설 확충 등등. 출생률에는 크게 변화가 없지만, 사망률을 줄이면서 인구성장에 큰 힘이 됩니다.
서아프리카는 19세기 후반까지 유럽의 위협이 미치지 않았던 지역입니다. 그렇기에 지역 내적으로 정치적 분절을 극복하려는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19세기 서아프리카에서는 중요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그것은 하우살란드를 소코토 칼리프국으로 통일시킨 사건입니다. 하우사 제국은 패권쟁탈전을 벌이면서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였습니다. 그 불안한 시기에 우수만 단 포디오가 전쟁을 일으켜 1809년 하우사 제국을 정복합니다. 이떼 칼리프국의 영토는 크게 넓어지고, 아프리카 유일의 법치 정부가 만들어집니다.
남부 아프리카에서는 1867년 케이프 변경의 킴벌리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된 사건이 주요합니다. 경제적으로 힘을 가지게 된 백인 유권자들은 보다 엄격한 인종격리를 시행하고, 백인과 흑인의 차별을 강화합니다. 흑인 운영자들을 몰아내거나, 흑인 노동자에게는 임금을 적게 주거나 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다이아몬드라는 보석의 발견은 이렇게 인종차별을 더욱 단단하게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동부 아프리카는 18세기 이전까지 아프리카에서 가장 고립된 지역이었습니다. 18세기가 되면서 원격지 무역을 통해 세계경제에 편입되었습니다. 서아프리카에서는 몇 세기에 걸쳐 일어난 변화들이 동아프리카에서는 불과 수십 년으로 압축되어 나타난다는 게 특징입니다.
19세기 아프리카 대륙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해서 정리하는 게 쉽지 않네요. 지역, 지형, 인물 등등. 아프리카의 역사가 눈에 들어오려면 공부해야 할 게 많다고 느껴집니다. ㅠㅠ 이상 후기를 마칩니다!
매번 참 많은 내용들이 있어서 소화불량 상태에 빠지는데, 그래도 이렇게 살피니까 위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ㅋㅋ 여전히 세부적으로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따라가는 건 복잡하지만 @_@ 읽으면 읽을수록 아프리카는 그 크기만큼이나 다양한 질서가 형성돼 있고, 아프리카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최소한 지형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걸 실감합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그동안 역사에서 이렇게 지형이 중요하게 다뤄졌나 싶기도 하고... 아프리카 역사를 공부하면서 오히려 그동안의 역사에서 놓쳤던 것들을 하나하나 다시 되짚어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