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사실 방학 한 주가 너무 빨리 지나간 게 아닌가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만나니까 그런 아쉬운 마음이 모두 날아갔습니다. 모두라고 하면 너무 가식적일까요? ㅋ 어쨌든, 그보다 시급한 문제가 있습니다. 시간이 아직 무한정 남았을 줄 알았는데, 벌써 7주밖에 안 남았어요. 7주 안에 남은 진도를 다 빼서 세계지도를 그릴 수 있어야 하는데... 흐음...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아버렸습니다!
다음 주에는 《역사의 거장들》에서 로렌스 스톤과 조르주 뒤비를 읽고요. 《세계의 역사2》에서는 21~22장을 읽습니다. 간식과 입발제는 영님쌤께 부탁드릴게요!
이번 시간에는 프랑코 벤투리와 에릭 홉스봄을 공부했습니다. 지난 역사가들을 공부하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확실히 지식인들에게는 두 개의 세계대전(그 중에서도 특히 2차 세계대전)이 큰 충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름 진보적으로 발전하고 합리적 이성을 갈고 닦아왔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게 됐고, 그에 따라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를 질문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공부한 거장들 중에서는 누구도 전체주의에 동의한 사람이 없었는데요. 일부러 그런 거장들만을 뽑은 걸까요, 아니면 애초에 역사를 공부한다는 건 전체주의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일까요? 이 질문은 계속 심화시키다가 7주차 때 나눠봐야겠습니다.
프랑코 벤투리, 전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독창적인 역사가(1914~1994)
이번에도 처음 들어본 역사가입니다. ㅎ 여기에는 저의 무지함도 한몫했겠지만, 사실 한국에 ‘프랑코 벤투리’란 역사가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018년에 《계몽사상의 유토피아와 개혁》 한 권만 번역됐습니다. 책에서는 벤투리의 삶을 “반파시즘 행동가이자 비마르크스적 사회주의 역사가”로 요약했습니다. 아마도 한국의 역사학계는 마르크스적 노선을 따르지 않으면서, 비프랑스권 혹은 비미국권 학문에 대해서는 아직 그다지 관심을 가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벤투리란 사람에 대해 알게 된 것보다 한국에서 번역된 학문의 분야가 매우 제한적이란 걸 더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벤투리는 1914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고, 아버지 리오넬로 벤투리의 뒤를 이어 파시즘에 매우 적극적으로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파시즘에 국한되기보다 그는 ‘유럽의 전체주의’에 대해 매우 경계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평생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근본적 질문을 품고 살았습니다. “정치적‧종교적 자유가 자유에 적대적인 정치세력에 의해 억압당할 때 그것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는가? 정치적 논쟁 속에서 작은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든 이에게 관용을 보장하는 정의로운 정치체제를 세우는 일에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가? 정치적 엘리트들이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키고 문화적‧지적 진보를 보장하는 일에 민중과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가?”(323)
이 질문들을 구체화하기 위해 벤투리는 ‘프랑스의 계몽주의’, ‘러시아의 인민주의’, ‘이탈리아의 18세기’를 분석합니다. 그에게 이러한 작업은 “유럽 사회들이 (러시아를 포함하여) 봉건적‧절대주의적 사회에서 자유주의적 근대 사회로 변화하는 다양한 길에 대한, 그리고 이 전환과정과 어떤 어려움이 결합되어 있는지”를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한 목적 속에서 진행됐습니다. 잠시 《계몽사상의 유토피아와 개혁》을 참조하면, 벤투리는 ‘처벌할 권리’가 보장된 군주정에서 공화정으로 어떻게 넘어갈 수 있었는지를 분석합니다. 독특하게도 벤투리는 이를 디드로를 비롯한 몇 명의 계몽주의자들의 전기를 서술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그러나 인물 관계가 너무 복잡하고 모르는 사람들과 예술 이야기가 대거 등장해서 책을 따라가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어쨌든 벤투리는 계몽주의가 단순히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해 주도되기보다 그에 상응하는 ‘일깨워진 힘들’이 있다는 것에 주목한 것 같습니다. 공화정으로 이행하는 데 있어서 계몽주의가 큰 역할을 했다는 벤투리의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계몽주의’를 너무 단순하게 비판해온 게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그에게는 ‘계몽주의’와 ‘인민주의’가 양립 가능한 듯 싶은데, 이 부분은 좀 더 공부가 필요합니다.
벤투리의 사상이 무엇인지는 본격적으로 공부해야 알겠지만, 프랑스의 구조주의나 마르크스에 의지하지 않고도 아직도 유효한 역사적 관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물론 구조주의, 마르크스도 잘 모르지만요. ㅎㅎ;;) 그는 자신의 작업을 ‘사상사’(역자에 따라서는 지성사)로 규정했습니다. 그는 철학적 신화, 현재 우리가 겪는 문제들을 극복할 답이 고전에 있다는 사고에서 벗어나는 걸 역사의 중요한 과제로 삼았습니다. 그의 계몽주의관이란 그런 신화에 의존하지 않고도 “사상의 힘과 개인의 의지의 도움으로 경제적‧사회적‧법적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에 대한 분석이죠.(335) 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궁금해지는 소개였습니다. 일단 체크해 뒀다가 기회가 되면 좀 더 공부해야겠어요.
에릭 홉스봄,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의 세계사 서술(1917~2012)
오랜만에 어디선가 들어본 거장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름만 들어봤지 어떤 시대를 겪었고,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았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주장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ㅋ 그리고 책을 읽고도 여전히 많은 부분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에릭 홉스봄의 시대 구분법은 매우 흥미롭더라고요.
우리는 쉽게 ‘세기의 전환’을 입에 담고,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갈 때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에릭 홉스봄은 너무나도 유치하면서도 쉽게 의심되지 않는 이러한 구분을 넘어갑니다. 그 역시 19세기와 20세기를 구분하긴 하는데, 이때 그것들은 단순히 1800년대, 1900년대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는 공화정이 시작된 1789년 프랑스 혁명부터 자유주의 물결이 파괴된 1914년 1차 세계대전까지를 ‘장기 19세기’라고 지칭합니다. ‘장기 19세기’는 다시 세 시기로 구분되는데요. 프랑스 혁명을 위시한 ‘혁명의 시대’(1789~1848),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세계시장이 형성된 ‘자본의 시대’(1848~1875), 그리고 두 개의 시대를 거치면서 모순이 점차 심화되다 터져버린 ‘제국의 시대’(1875~1914)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1914년부터 1991년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를 ‘단기 20세기’라고 지칭합니다.
이러한 개념들은 철저하게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로서 자본주의를 분석하기 위해 요청된 것입니다. 홉스봄이 굳이 ‘장기 19세기’라는 시대를 새로이 규정하고 분석한 것은 “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생존능력이 어떤 상태였는가”를 질문하기 위함 입니다.(354) 홉스봄에 따르면, “바로 자본주의를 전 세계적으로 타도하려는 러시아 10월혁명의 가장 지속적인 결과가 말하자면 자본주의를 자기파괴로부터” 구했습니다. “즉 전쟁 중에는 적군의 투입을 통하여, 평화 시에는 정당성과 대중의 지원을 마련해준 복지국가적 차원의 구축을 위한 자극으로서 자본주의를 구한 것”입니다.(354) 이러한 분석에서도 나타나듯이, 홉스봄은 아무리 자본주의가 독주하더라도 거기에는 공사주의가 배제될 수 없다는 걸 계속 보려 했던 것 같습니다.
‘장기 19세기’와 ‘단기 20세기’를 분석한 것처럼 에릭 홉스봄은 세계사적으로 어떤 문제들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마르크스적으로 해석했습니다. 덕분에 마르크스-레닌으로 해석되었던 전통적 관점으로부터 벗어나는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합니다. 책에서는 특히 민족적 역사서술들을 넘어 문제를 국제적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