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 선생님들 저희는 벌써 2학기 중반에 접어들었습니다.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동안 저희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다듬어야 할 지점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온 것만 해도 적잖은 발전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다음 주부터는 아메리카까지 그려보죠. 그러면 어설프게나마 세계지도를 어떻게 그릴지 감을 잡을 수 있겠죠?
다음 주에는 《역사학의 거장들》에서 에드워드 톰프슨과 미셸 푸코, 《세계의 역사2》에서는 26~27장을 읽습니다. 입 발제는 은주쌤, 간식은 현주쌤께 부탁드릴게요!
필립 커틴, 아프리카 역사학의 개척자(1922~2009)
우리는 언제부터 ‘세계의 역사’를 묻기 시작했을까요? 이때 저희가 알고 싶은 ‘세계’란 자국을 중심으로 다른 지역, 민족, 공동체 등을 주변으로 규정함으로써 성립된 하나의 지구가 아닙니다. 그런 식의 세계는 유럽의 역사 이전에 이미 중국과 이슬람의 지도를 통해서 이미 포착되었습니다. 세계에 어떤 것도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지구에 발을 붙이고 있는 이상 모든 것은 고유하면서 동시에 동등하죠. 저희는 맥닐의 《세계의 역사》를 읽으면서 세계가 어떤 흐름 속에서 약동하고 있는지를 따라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유럽중심적인 세계사를 넘어가고 싶은 갈증을 느끼고 있죠. 유럽의 발전을 중심으로 서술된 그의 시간과 지리 구분을 넘어가서 다른 식으로 구성된 세계, 여기와 동등한 저기 사이의 상호 연결망이 돋보이는 세계에 대한 갈증을 참을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읽은 필립 커틴은 꼭 알아둬야 할 거장입니다. 그는 세계에서 최초로 비서양의 역사를 질문하고 체계화시킨 역사학자입니다. 소년 시절부터 비서양의 사회를 돌아다니고 자라면서 꾸준히 비서양계 사람들과 교류해온 그에게 ‘비서양’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어쩌면 당연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커틴은 아프리카 역사에 대한 책을 출간하지도 않았고, 사전작업을 한 것도 없지만 자신의 연구기획의 주제를 “‘(서)아프리카에 대한 초기 영국의 인지’”로 정했습니다. 다행히 그의 무모한 시도는 1955년과 1958/59년 아프리카를 가로지르는 연구여행을 통해 꽤 성공적인 결과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아프리카 역사의 영역을 체계적으로 구축시켰습니다.(393)
커틴은 기본적으로 역사를 ‘연결망’ 속에서 구성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 역사가라면 인디언들에 관한 책을 읽어야 하고, 아프리카 역사가라면 유럽사의 새 작업에 주의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역사학계에 자리 잡은 지역별, 분야별 울타리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했죠. 실제로 커틴의 작업은 ‘아프리카’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아프리카‘만’을 분석하지 않습니다. 그는 어떤 인종주의도 거부하죠. 거기에는 당연히 근대역사의 피해자로 간주된 아프리카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한 번은 <게토화되는 아프리카 역사>라는 글을 기고함으로써 아프리카대학에서 흑인 학자들만을 임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센세이션함 때문에 ‘인종주의적이다’라는 비난과 논란에 시달려야 했지만요.
그는 분명 아프리카가 유럽과의 관계에서 침략을 받고,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냈음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수동적인 위치에 놓는 것 또한 경계합니다. 그는 “아프리카의 ‘저개발’을 강조하고 세계경제와 접촉함으로써 아프리카 대륙이 ‘부등가 교환’을 통해 빈곤해졌다는 테제”에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397) 어떻게 이런 주장이 나올 수 있었는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프리카를 단순히 피해자로 놓는 시선과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 시즌에는 몇몇 거장들의 텍스트를 따라가면서 구체적으로 역사서술의 관점을 훈련할 계획인데요. 커틴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쉽게도 아직 한국에는 이 거장의 어떤 책도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영어 실력이 된다면 원서로 바로 읽었을 텐데 말이죠.^^;; 영어 실력이 있으면 그만큼 자유로워질 것 같은데, 참 아쉽네요.
라인하르트 코젤렉, 개념사의 탄생(1923~2006)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근대’ 자체에 주목한 역사학자입니다. 전에 에릭 홉스봄에서도 알 수 있듯이, 20세기 역사학자들은 단순히 역사적 시간을 연속적 흐름으로 구성하는 것을 매우 경계했습니다. 이미 두 개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역사학자들에게 ‘진보’라는 개념은 파괴됐기 때문이죠. 하지만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지 않는다면, 역사적 시간은 어떻게 구성될 수 있을까요? 코젤렉은 거기서 ‘개념사’라는 새로운 렌즈를 발명했습니다.
코젤렉의 논의는 참 복잡하더군요. 여러 개념들이 등장했고, 역사를 보는 시선도 매우 복잡했습니다.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이행하는 동안에도 지속되는 구조동인, 이른바 ‘반복구조’가 있다, 역사는 ‘경험공간’과 ‘기대지평’이라고 불린 것과 더불어 발생한다 등등. 참 따라가기가 어렵더군요. 책에서는 이러한 분석틀이 우리의 역사적 경험, 인지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가능케 했다고 하는데, 이해가 안 되니까 어떤 연구들이 가능해졌는지 잘 안 따라가졌습니다. 흠흠;; 대강 어떤 맥락에서 요청된 개념인지 정도를 이해하려고 구글과 여러 책들을 찾아봤지만, 조금 찾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코젤렉의 개념사가 어떤 ‘느낌’인지 정도는 약간 알 수 있었습니다.
코젤렉의 연구는 ‘해방’, ‘진보’, ‘역사’, ‘위기’, ‘혁명’ 같은 개념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개념들로 추동된 개념세계는 1750~1850년 – 그는 문턱의 시대라고 규정한 - 으로 한정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개념들을 통해 특정 시대의 경험과 그들이 바라보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분석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은 랑케 이후로 견지된 ‘거대이야기’, ‘대문자 역사’와 결별하는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분석을 통해 그는 역사적 시간을 새로이 규정했던 것 같습니다.
뭔지는 모르지만 매우 흥미롭다는 것만 남았습니다. 그동안 읽어왔던(인용된) 어떤 텍스트보다도 문장이 맛깔났고, 이해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유가 풍기는 매력에 끌리고 말았습니다. 책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이해한 척 쓰기도 쉽지 않네요. 머지않은 날에 꼭 그의 텍스트를 읽겠다는 다짐만 남았네요. 맛보기로 문장 하나를 인용하는 걸로 이번 후기는 마무리하겠습니다.
일상에서 역사적 시간에 관해 관조하려는 자는 노인의 주름살이나 지나간 삶의 운명이 남아 있는 상처를 존중할 것이다. 또는 잔해와 새 건물들의 공존을 기억해낼 것이며, 공간적 배열에 그것의 시간적 심층차원을 부여하는 괄목할 만한 양식변화를 주목할 것이고, 또는 썰매로부터 비행기에 이르기까지 전체 시대를 만날 수 있는 다양하게 현대화된 교통수단의 공존과 중첩을 바라볼 것이다. 결국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다양한 경험공간이 중첩되고 미래의 조망이 교차하는 자신의 가정에서 또는 직업세계에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과 함께 세대의 연속을 생각할 것이다.(415)
후기를 읽으니 지난 시간에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던 내용들이 조금씩 이해가 됩니다. 저는 라인하르트 코젤렉이 역사를 개념사로 파악하려고 한 부분도 흥미로웠지만, 아프리카 역사학의 개척자인 필립 커틴이 고민했던 지점에 더 공감이 갑니다. 아프리카인뿐만 아니라 식민지였던 곳의 사람들이 그들의 열등의식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안고 갑니다. 프란츠 파농이 '백인의 세상도, 흑인의 세상도' 없다고 한 말을 곱씹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