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세계사 시즌 1’이 벌써 후반부로 들어섰습니다. 윌리엄 맥닐의 『세계의 역사 1, 2』 권을 세미나 하면서 들었던 의문은 문명과 야만, 그리고 중심부와 주변부 관계 설정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맥닐은 문명과 중심부, 야만과 주변부를 각각 한 쌍으로 보고 전자가 후자보다 우월한 위치를 점한다는 관점으로 역사를 파악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서구라는 중심축에서 역사적 사건을 해석해간다고 볼 수 있지요.
그가 얘기하는 문명과 야만의 구분 기준은 무엇일까 하는 점이 궁금해집니다. 고대 서아시아를 기준으로 보자면 문명은 제국 통치기술의 발전, 알파벳 문자의 발명, 윤리적 일신론의 출현과 관련됩니다. 반면 야만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비문명의 특징은 전차전의 기술 발달이라 할 수 있지요. 그로 인해 야만족은 상당한 군사적 우위를 점하여 소위 문명세계라고 불리는 서아시아 일대를 정복하기도 했었지요. 이렇게 나열해놓고 생각해보니, 문명은 ‘이성’과 ‘합리성’이 강조되는 것 같고, 비문명은 ‘신체성’과 더 밀접한 것 같습니다. 왜 어떤 세계는 ‘이성적인 것’, 다른 세계는 ‘비이성적인 것’을 중심으로 발전해갔을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지리적인 환경과 관련되어 있다고 봅니다. 세계 지도를 보아도 우리는 각 나라의 지리적인 환경과 지정학적 위치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고대 문명은 티그리스-유프라테스 유역에서 최초로 발달했습니다. 사람들이 경작지에서 곡물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토지에 물을 댈 수 있는 관개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관개 조건이 갖춰진 곳이 바로 서아시아 지역 하천의 범람원이었습니다. 문명 발전은 관개수로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이 되지요. 그렇다면 지리적인 환경이 다른 초원 스텝지역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거기서는 관개를 이용해 곡물을 경작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말을 사육하여 그것을 이용하는 기마병력이 자연스럽게 증강되었습니다. 사실 문명과 비문명이라는 기준은 지정학적인 측면과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문명세계와 야만족은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 등에 의해 삶의 양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형성된 차이 나는 문화에 위계를 둘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서구인들이 ‘이성적’ 문명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한 것도 그들의 지배욕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문명의 시작은 메소포타미아 지역 주변에서 일어난 것이지요.
그러다가 15세기에 유럽은 식민지 개척을 위해 북미,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으로 세력을 뻗쳐나가면서 그곳의 노동력과 광물 등을 착취해갔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의 물질문명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지요. 또한 18세기 말부터 유럽에서는 두 개의 변혁, 즉 민주주의와 산업혁명이 시작되어 생활양식의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지요. 민주혁명의 중심지는 프랑스이었고, 산업혁명의 중심지는 영국이었습니다. 이러한 민주주의와 산업혁명은 서양세계뿐만 아니라 서양문명의 경계를 넘어서 확대되었지요.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이 확립되자 서구의 군사적‧경제적‧문화적 힘이 엄청나게 증대되었고, 마침내 19세기 중엽 본격적으로 서구는 아시아에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문호 개방 압력을 받은 중국은 서구의 요구를 물리치고 쇄국정책을 펼쳐갔지만, 그로 인해 태평천국의 난, 아편전쟁 등이 일어났기에 중국은 처참한 패배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중국이 쇄국정책을 펼친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의 문명(유교 전통)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었지요.
물론 중국이 서구의 문명을 수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명은 서아시아의 경우와 같이 서로 다른 요소들이 융합된 것이고 또 거기에서 새로운 것이 창조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총칼을 겨누며 폭력적인 방식으로 문호개방을 요구하는 서구의 태도가 과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듭니다. 서구 문명 중심의 세계 질서의 재편은 힘의 논리에 따른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맥닐의 역사적 관점도 유럽의 군사적‧경제적‧문화적 비교우위를 정당화하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역사가도 자기 시대의 조건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한계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적인 불만이 돋보이는 후기네요! ㅋㅋ 문명을 설정하고 그 밖에서 야만을 찾는 게 읽으면서도 참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불만스러웠는데요. 그런데 얘기하면서 갑자기 우리 스스로도 알게 모르게 그런 식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형성하는 건 아닌가 싶었어요. 가령, 서양과 동양을 구분하고, 아메리카 대륙을 서양으로 넣었는데, 그렇게 되는 순간 브라질, 멕시코, 칠레 같은 남미권 국가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저에게 서양이란 곧 백인 혹은 백인혼혈의 국가 정도였어요. '서양'이란 범주도 너무 쉽게 퉁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여러 모로 다시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