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저희는 《역사학의 거장들》을 거의 다 읽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나탈리 데이비스와 존 포콕‧퀜틴 스키너 세 사람이네요. 분명 처음 읽을 때만 해도 이게 무슨 언어야... 이걸 언제 다 읽게 될까... 싶었는데, 어느새 이 어려운 논의들과 개념들을 헤치고 드디어 마지막 쪽에 닿을 수 있게 됐습니다. 분명 저희 세미나의 목표는 지도 그리긴데, 지도 그리기 못지않은 감동이 갑자기 몰려옵니다. ㅋㅋ 너무 많은 거장들을 알아버렸어요. 죽기 전까지는 차근차근 공부하다 보면 그래도 겉핥기나마 할 수 있겠죠?
다음 주에는 《역사학의 거장들》에서 나탈리 데이비스와 존 포콕‧퀜틴 스키너를, 《세계의 역사2》 28~29장을 읽어 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제가 준비할게요. 입 발제는 현주쌤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에드워드 톰프슨과 미셸 푸코를 만났습니다. 푸코라니! 오랜만에 아는 사람이 등장해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동안 읽지도 않았던 텍스트 설명을 따라가면서 문제의식이 무엇이었고, 개념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추적하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ㅠㅠ 물론 푸코의 텍스트는 가물가물하고 이해한 채 읽은 건 아니어서 다른 거장들보다 사정이 낫다고 할 수는 없지만요. ㅋ 그냥 정신적 위로를 받았습니다.
에드워드 톰프슨, 영국적 절충주의를 구현한 노동운동사가(1924~1993)
톰프슨은 정통적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영국적 특색에 맞게 마르크스주의를 해석한 노동운동가입니다. 마르크스주의에도 여러 파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톰프슨은 어떤 마르크스주의에도 하나같이 엘리트주의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마르크스주의를 새롭게 해석합니다. 특기할 만한 점은, 그것을 영국적인 관점에서, 영국의 역사 안에서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톰프슨이 분석의 틀로 삼은 건 17~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났었던 영국 하층계급의 삶입니다.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든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은, “1790년의 자코뱅 선거법 운동으로부터 사우스콧의 천년왕국주의와 러다이트주의자들의 필사적인 기계 파괴를 거쳐 굶주린 아일랜드 식민지로부터의 피난민에 이르기까지” 획일화될 수 없는 하층민들의 다양한 삶의 면면들이 병렬적으로 나열되어있습니다.(437) 여기서 톰프슨이 일관되게 보려고 했던 것은 하층계급이 스스로 자신의 계급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입니다. 하층계급이란 추상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라는 계급적 의식 같은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그들 스스로 권력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일종의 정치적 정체성 같은 거였습니다. 그리고 톰프슨 자신은 앞으로 자신의 역사가적 과업을 “구조들의 대상이 되는 것에 맞섰던 모든 사람, 시장사회의 경제논리에 비참한 상태로 쓸려가는 데서 어떠한 소유권적 방파제로도 보호받지 못한 모든 자의 격노를 기록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437~438)
톰프슨을 가장 급진적인 의미에서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서술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는 ‘공산주의로의 이행’이란 마르크스적 구도에서 벗어나 하층계급이 투쟁해온 과거의 역사에 주목합니다. 그것은 미래의 구원 앞에서 그동안 평가절하되었던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투쟁, 일종의 역사적 존엄을 세우려고 한 노력들을 재평가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일간에서는 낭만적 관점이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저항의 동력을 외부에서 가져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은 이미 과거에 몇 번이고 있었던 만큼 이미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를 새롭게 해석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셸 푸코, 금기의 역사를 해부한 탈근대주의자(1926~1984)
전통적인 의미에서 역사학 밖에 있지만, 역사학을 쇄신한 거장이 여럿 있었죠. 푸코도 그 중 한 명입니다. 푸코는 매우 적극적으로 니체의 계보학적 분석을 활용합니다. 책에서는 그러한 시도가 《감시와 처벌》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했죠.
여러 논의가 있어서 잘 정리되지는 않지만^^;; 푸코가 화두로 삼았던 주제는 ‘근대의 자명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감시와 처벌》에서 감옥의 등장, 죄수를 교화하려는 시도가 단순히 인권의 탄생이 아니라 좀 더 정치경제적으로 효율적으로 훈육하고 권력을 구성하기 위해 고안된 통치술이라고 분석했을 때부터, 어쩌면 푸코는 이미 ‘근대화로의 진입이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의심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자인되는 모든 것이 우리의 고상한 정신성을 보장해줄 수 없음을 폭로하고 있었던 거죠. 푸코의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맹신하는 가치들이 누군가를 억압하고 배제하는 사회적 분할선의 작동과 더불어 형성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근대에 발명한, 우리를 근대인이라고 확립할 수 있었던 모든 가치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푸코에게는 그 문제가 '근대'라는 주제로 요약되었던 것 같습니다. 푸코는 이 화두를 들고 정말 많은 것을 했습니다. 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단순히 강단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여러 굵직한 운동들에도 함께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요. 그러고 보니, 푸코가 이란의 이슬람 혁명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근대화의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주었기 때문이었죠. 푸코는 이란인들이 유럽화가 아니라 그저 ‘호메이니의 복귀’, ‘무슬림으로서의 삶’을 원한다는 것에서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만이 아닌 또 다른 근대화, 그러니까 ‘발전’이 아닌 ‘영성’에 근거한 새로운 길을 모색한 거죠.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서 고민하지는 않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론에 근거해서 역사를 활용할 것인지, 역사적 사고를 훈련하기 위해 푸코의 방법론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마무리 컷은 날씨 좋은 날 성균관대 대동제를 살짝 구경하러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