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이 드디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분명 처음 저희 세미나가 시작했을 때는 아직 코로나에 대한 위기의식이 매우 강렬했었는데, 대통령 선거를 비롯한 여러 사건이 터진 덕인지 지금은 ‘팬데믹’이란 단어가 무색해진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지나간 일을 잊어서는 안 되겠죠. 다행히 그간 저희의 지도 그리기 연습은 무의식적으로나마 세계의 연결망을 신체에 새기는 시간이었던 것 같고요. 휴! 당초에 목표했던 ‘나만의 지도 그리기’는 다음 시즌으로 미뤄야겠지만, 어쨌든 참 뿌듯하네요.
다음 시간에는 오전에 《세계의 역사2》 30장을 읽으며 맥닐의 코즈모폴리터니즘을 정리하고, 지도를 그리는 시간을 미리 갖습니다. 그리고 오후에 채운 선생님의 강의가 있는데 니체의 《반시대적 고찰 제2논문 :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를 읽어 오셔야 합니다. 간식은 영님쌤께 부탁드릴게요!
나탈리 데이비스, 역사학과 인류학의 만남(1928~)
《역사학의 거장들》에서 소개된 거장 중 유일하게 여성입니다. ‘여성’에 주목하는 게 정말 ‘새삼’일 수 있는데, 그건 아직 역사학계가 그만큼 남성중심적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장들은 나름대로 자기 문제의식으로부터 혹은 독특한 경험으로부터 역사가의 길을 걸었는데요. 독특하게도 데이비스는 어렸을 때 유대인으로서 겪은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결혼 이후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면서 인간적 관계를 배우게 했던 ‘어머니’로서의 경험이 자신의 역사적 작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실제로 데이비스의 역사서술은 억압될 수 없는 민중의 활력, 그 중에서도 여성의 자주적인 모습에 주목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서술이 바로 《마르탱 게르의 귀향》입니다. 아마 텍스트는 어디선가 들으셨을 것 같은데요.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 책은 이미 동시대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한 한 남자의 속임수와 결혼 사기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1548년에 피레네 산맥의 작은 마을에 있는 아내와 아이와 집을 떠났고, 그 대신에 8년 뒤에 다른 남자가 슬며시 마르탱 게르를 너무 쏙 빼닮아서 친척들과 대부분의 마을사람들뿐 아니라 뒤에 이 사건을 맡은 법정도 그를 합법적인 남편으로 여기는 쪽으로 기울어질 정도였다. 결국 진짜 마르탱 게르가 용병복무에서 ‘얻은’ 나무의족을 하고 툴루즈의 법정에 나타나면서 이 소동이 종결되었다.”(473)
여기서 데이비스는 ‘과연 아내는 처음 돌아온 남자가 가짜 마르탱 게르임을 몰랐을까?’를 질문합니다. 누구보다 가장 가까이서 생활을 하는 동안 아내는 아마 그가 자신과 결혼한 마르탱 게르임이 아님을 알았을 것이고, 그럼에도 묵인했을 거라는 거죠. 이러한 분석론은 일종의 인류학적 연구와 맞닿아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영화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에 불만을 느꼈고, 이로부터 역사 서술은 일종의 영화적 작업과도 닮아있다고 말하죠. 즉, “역사적인 문서기록에 나타나는 빈자리, 즉 역사가가 알지 못하고 결코 알 수 없는 것을 신중하고 비판적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죠.(474) 그녀는 비록 영화 안에서 마르탱 게르 부인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거기서 새로운 서술 관점을 얻은 것이죠.
사실 데이비스의 역사적 방법론은 그렇게 새롭지는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를 거장으로 선정한 데에는 80이 넘었음에도 여전한 역사에 대한 열정과 그를 증명하는 듯한 활발한 활동, 여성을 비롯한 억압된 목소리에 주목하려고 했던 시도들 등 때문입니다. 성비를 맞추기 위해서인 것 마냥 굳이 여성을 넣을 필요는 없겠지만, 여성만이 볼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한 것 같았습니다.
존 포콕(1924~) ‧ 퀜틴 스키너(1940~), 정치이론을 역사화하다
전공자가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나라마다 나름대로 주류적으로 통용되는 역사학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독일의 역사학파는 랑케의 실증사관을 계승하는 것 같고, 프랑스는 아날학파가 있습니다. 이번에 읽은 존 포콕과 퀜틴 스키너는 영국의 케임브리지학파(역사)를 창시하고 굳건하게 확립한 인물들입니다.
역시나 자세한 건 모르지만, ^^;; 이들은 시대적으로 어떤 언어가 어떻게 사용됐는지를 분석함으로써 역사를 서술했습니다. 포콕은 그것을 ‘정치적 언어’를 분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포콕이 수년 동안 작업해온 대안적 개념은 ‘정치적 언어’다. 여기서 포콕은 오크숏의 ‘전통’의 개념에 기대어 사회가 개념, 규범, 이념, 대화 규칙들의 제한된 목록들을 처리한다는 기본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 목록들과 함께 사회 안에서의 정치적 소통이 논박된다. 포콕의 확신에 따르면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정치적 ‘언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언어들은 개념적‧양식적 공통점과 일치된 전제들과 규범들, 또한 특정 주제와 해결단서들의 선호를 통하여 나타난다. 그러한 언어들은 포콕에 따르면 종종 특정한 사회적 환경의 경험세계에 구속된다. 한 사회의 정치적 담론은 포콕의 고찰에 따를 때 근본적으로 이 정치적 언어들로 진행된다.”(492)
포콕의 분석에 따르면, 주목해야 할 것은 철학적 담론만이 아니라 그 담론에 사용된 언어가 함의하고 있는 문제의식입니다. 포콕은 17~18세기 이탈리아의 마키아벨리부터 영국의 흄, 애덤 스미스, 미국의 제퍼슨과 매디슨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시민인문주의’가 형성됐다고 분석합니다. 이들은 조건은 다르지만, 모두 “시민계급의 참여와 공동체의 방어 준비와 ‘미덕’으로 특징지어지는 생활방식을 요구한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이죠.(494)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 ‘사회계약론’을 주장했던 홉스도 들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홉스는 ‘이기적 본성과 국가계약적 형태의 도덕이론의 창시자’로 자주 비판되곤 했는데요. 포콕과 스키너는 오히려 “폭력의 방지와 사회적 덕목의 유지가 평화의 보존에 불가결하다”고 주장한 이론가로 재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홉스를 어떻게 독해할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새삼 한 명의 정치이론가를 다시 읽는 것도 역사적 작업의 일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거장들을 쭉 훑어봤네요. 여전히 역사를 공부한다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역사학’이란 학문 혹은 관점이 얼마나 유용하고 매력적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 ‘역사가’로서의 정체성을 내세우지 않는 수많은 학자와 혁명가들이 그럼에도 ‘역사’를 경유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이번에 어떻게 역사를 공부하게 됐는지는 2주 뒤에 구체적으로 나눠보죠!
마무리는 어느새 여름으로 채워진 성균관과 그곳에서 달콤한 오침을 즐기시는 현주쌤입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