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는 마이너 세계사팀입니다. 개인적으로 혁명가에 대한 엄숙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호아저씨(호치민에 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애칭이에요)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잘 웃고, 세계를 떠돌며 끈질기게 혁명을 시도하면서 전혀 심각하거나 무거워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르친 학생들의 회고에 입각하면 호치민을 기억할 때 “한없는 낙관주의”를 떠올린다고도 하더라고요. 여러모로 혁명에 대한 이미지가 깨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이번 마이너 세계사의 목표는 ‘혁명’에 대한 각자의 이미지를 깨는 것입니다. 그것도 주역과 연결해서요!
호치민-베트남 혁명을 주역적으로 읽기
사실 쉽지 않은 시도일 수 있는데요. 하지만 앞으로 계속 혁명을 공부해야 하는 저희에게는 꼭 해야 하는 시도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저희로서는 호치민-베트남 혁명을 어떻게 의미화할 수 있을지가 막막했습니다. 호치민의 탁월함에 주목해야 하는데, 그 탁월함을 주목할 관점이 저희에겐 없었습니다. 토론에서도 ‘와~ 대단하다!’ 이상으로 무언가를 말하지 못했는데요. ‘혁명’을 담론화할 관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역을 가져왔습니다. 호치민 혹은 베트남이 놓인 당시(時)를 하나의 괘로 규정하고, 우리가 주목한 장면 혹은 결단을 하나의 효로 보면 뭔가 담론화할 거리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때를 규정하는 관점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여러 가지를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가 돼 주권을 뺏긴 것’에 주목할 것인지, 아니면 ‘당시 아시아에 공통적으로 흐르던 근대화의 흐름’을 볼 것인지, ‘호치민이 혁명하는 것’을 중심으로 놓느냐에 따라 ‘때’가 달라지더라고요. ‘때’를 무엇으로 볼 것인지는 각자 좀 더 고민을 해보죠! 그리고 호치민을 어떤 키워드로 볼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1) ‘세계 끝의 호치민’. 혁명을 하지만 결코 지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게다가 어떤 순간에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모습이 저희가 생각하는 혁명의 이미지를 가장 깨주는 지점이었습니다. 잘 되지 않으면 힘이 빠지고 좌절할 것 같은데, 호치민은 거의 모든 곳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베트남 혁명이 지지부진해도 결코 포기하지 않더라고요. 여기에는 호치민과 저희가 생각하는 ‘혁명’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어떻게 혁명을 너무 무겁지 않게 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2) ‘나의 아저씨 호치민’. 호치민의 이름은 한자로 표기하면 호지명(胡志明)입니다.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그는 ‘호지명’이란 가명을 썼는데요. 뭔가 의미심장했습니다. “밝음에 뜻을 두다.” 민족 해방 혹은 혁명을 염원하는 뜻이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런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보겠다는 것일까요? 호치민은 유학자에 대한 한계를 느꼈지만, 저희는 호치민에게서 공자의 향기를 맡았습니다. 그의 생애 전반에서 나타난 정갈한 일상과 어딜 가나 배우는 낮은 자세는 공자가 그동안 얘기하던 배움의 핵심이기도 했으니까요.
(3) ‘길 위의 호치민’. 호치민은 혁명을 결심하기 전부터 길을 떠납니다. 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이 그를 길을 떠나게 만들었고, 그의 혁명에 대한 생각은 대부분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향하는 길 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호치민은 아프리카와 아시아가 유럽 중심의 세계에서 얼마나 변방으로 취급당하는지를 느꼈죠. 어딜 가든 딱히 환영받지 않았던 가운데 호치민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이것 말고도 또 다르게 호치민을 읽을 수 있는 키워드를 계속 고민해보죠!
역사유물론, “‘역사’를 유물론적으로 보는 것일까?”
저희는 아직도 역사유물론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발리바르는 “마르크스의 위치/입장은 유물론적이기 때문에 혁명적이다”라고 분석했는데요.(83) 여기서 유물론적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점점 더 모르겠습니다. 이전에 어딘가에서 들었을 때는 헤겔의 관념론적 역사관에 대항하는 ‘물적 토대’에 입각한 분석 정도로 생각했는데요. 발리바르는 좀 더 변화하는 현실 정세를 파악하고 그에 입각해서 이론을 도출하는 감각(?)과 연관해서 ‘유물론적’이라는 말을 쓰는 것 같더라고요. 이론과 실천이 ‘유물론’에 의해 둘이 아니게 되는 것 같은데요. 흐음...
이번에 읽은 부분에서는 파리코뮌을 기점으로 마르크스의 이론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죠. 마르크스는 1848년의 혁명들을 겪으며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봉기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했죠. 파리코뮌이 일어날 때도 그러한 우려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러나 파리코뮌이 프롤레타리아 자신을 위해 계급적으로 무언가를 조직하는 것에서 마르크스는 “자신도 투쟁속에서 교육받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마르크스는 파리코뮌으로부터 <고타 강령 비판> 같은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고, 이를 유럽 전역에 퍼뜨려 각 정치 운동에 영향을 끼치죠. 마르크스는 일관되게 현실 정세로부터 이론을 정립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이론은 언제나 실천적이라 할 수 있죠.
이게 가능한 이유는 이론화해야 할 현실이 어딘가에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처한 현실이 특정한 형태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파리코뮌 같은 사건을 통해서 그 계급이 놓인 조건이 순간적으로 포착되는 것이죠. 우리가 ‘역사유물론’을 “역사를 유물론적으로 보는 것이냐?”라는 질문을 의심하게 되는 것도, 이 질문 안에는 ‘유물론적으로 볼 수 있는 역사’가 어딘가 따로 있는 것처럼 전제되기 때문이었죠. 으음...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인식을 ‘유물론’으로 설명해야 할 것 같은데요. 잘 풀리지는 않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호치민> 9~12장을 읽고, 어떻게 주역과 연결할지 문제의식과 글감을 정리해주세요!
<역사유물론 연구>는 98쪽~1장 끝까지 읽습니다. 발제는 이인이에요.
그럼 화이팅!
호치민과 마르크스가 살았던 그 시대의 '혁명'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잘 정리가 안 되고, 세미나를 하면서 끝없이 질문으로 가져가야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호치민>과 <역사유물론 연구>를 읽으면서 그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 문제 의식이 어떻게 혁명을 생각하고 행동하게 했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더불어 지금 우리 시대는 대체 어떤 시대이고, 이 시대 속에서 어떤 문제 의식을 가져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이번에 호 아저씨의 생애를 따라가면서 놀라웠던 점은 그가 어디를 가든 어디에 있든 폐허 속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언제나 실패와 좌절 그리고 재건을 반복하지 않았나 싶네요. 낯선 땅에서 동료를 구하고, 동굴 속에서 강의를 멈추지 않고, 고된 감옥 생활을 겪고도 배우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활동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를 그렇게 움직이게 한 힘은 무엇일까요? 그는 세계를 어떻게 인식했고, 어떤 문제 의식 속에 살았을지 탐색해보고 싶네요. 그리고 그의 '낙천성'도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은데 호치민 평전을 앞으로 두 번 읽으면 끝난다니!
분명 호치민 평전을 읽고 있는데 어느새 그 시대의 복잡한 정치 지형 한복판을 지나고 있습니다. 분명 처음에는 베트남의 독립에만 관심을 두었는데, 점점 그 옆나라인 중국과 조선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호치민이 종횡무진한 세계에서 '혁명'이라는 것은 대체 어떤 이미지였는지를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이 되고 있네요. 그만큼 호 아저씨가 인식하는 세계가 넓다는 것이겠지요. 다음 이야기에서 호치민은 어떤 장에 자신을 던질지!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