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련한 호-아저씨
벌써, 호-아저씨와의 세 번째 만남이네요! 호-아저씨의 생애를 보다보면 놀라움을 많이 느낍니다. 저는 특히 한 인간의 삶에 전세계가 들어있다는 것이 경이롭습니다. 호치민을 둘러싸고 베트남의 역사는 물론이고, 프랑스, 독일, 소련, 중국, 일본의 역사가 가로지릅니다. 호치민은 국제적 인물이자, 영향력은 물론 광범위했습니다. 호치민이라는 한 사람의 판단과 선택은 전세계의 역사를 요동치게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학>에서 수신(修身)이 평천하(平天下)까지 연결된다는 말이 <호치민 평전>을 읽고 있으면 거짓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가 이번 시간에 만난 호치민은 정치인으로서의 호치민입니다. 1945년 일본의 항복 선언으로 호치민은 임시정부(민족해방위원회)를 구성하고 베트남의 독립을 선언합니다. 하지만 베트남의 상황은 녹록치 않습니다. ‘포츠담 회담’에서 법과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분할(북쪽에는 중국 국민당, 남쪽에는 영국)하기로 결정합니다. 이 당시 영국은 아시아 식민지를 유지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프랑스와 이해관계가 일치했고, 중국 정부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베트남의 국익을 희생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다 프랑스는 베트남 식민지 통치를 복원하려고 준비하고 있었고, 미국은 자본주의 국가로 잠재적 적국입니다. 이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호치민은 함부로 어딘가에 의존하거나 편을 들지 않습니다. 이 각각의 상이한 이해관계 속에서 베트남을 위하는 길을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그 물음 속에서 나아갑니다. 어떤 경우에는 프랑스와 대화를 시도하고, 또 다른 상황에서는 미국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이전에는 혁명가로서의 뜨거운 호치민을 만났다면, 이번주에는 정치인으로서 노련한 호치민을 만났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음주 노년의 호치민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저희는 이번주에도 호치민의 생애를 <주역>과 연결시켜 이해해보려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호-아저씨의 생애를 보면서 각자에게 남은 질문과 배움을 나누고, 어떤 키워드로 호치민을 설명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는데요. 어떤 호치민이 나올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키워드를 <주역>의 괘와 연결해서 생각해보는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호치민은 시기별로 다른 이름으로 살아왔습니다. ‘응우옌 탓 타인’ 시절 -> ‘응우옌 쿠옥’ 시절 -> ‘호치민’ 시절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이름을 기준으로 다른 시기, 다른 호치민을 만나보려합니다)
1) 규창 : ‘유랑하는 호치민’ (응우옌 탓 타인 -> 응우옌 쿠옥)
호치민은 어린 시절부터 쭉- 유랑하며 살았습니다. 프랑스 식민지배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나고, 식민지배의 문제가 단지 프랑스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주의, 자본주의와 연결도어 있음을 이해하며 소련으로 넘어가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그후 베트남 식민지 해방을 위한 활동을 펼치기 위해 중국과 인도차이나를 오고 갑니다. 유랑하는 그의 삶은 외롭고 고독했리라 생각이 듭니다. 서방에서는 아무도 베트남의 식민지 해방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고, 해방 운동을 펼칠 때는 베트남의 청년들에게 날선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지치고, 어려움을 많이 겪었고, 주변에서는 정착하라는 유혹도 많았을 테지만 호치민은 계속해서 유랑합니다. 그는 왜 유목적 삶을 자처했을까요? 저희는 그가 유랑하는 삶을 살아낸 것을 <주역>의 천산둔괘와 연결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2) 인 : ‘낙천주의자 호치민’ (응우옌 쿠옥 -> 호치민)
호치민이 ‘쿠옥’이었던 시절은 본격적으로 베트남 식민지 해방 운동에 뛰어들어서 여러 조직을 구축하고, 또 해체되고, 또 다시 구축하는 그런 시기입니다. 동지들과 베트남 공산당을 창건하고, 베트남 해방과 혁명을 꿈꾸었지만, 그 과정에서 숱한 좌절과 죽음의 위기, 감옥 생활, 동굴 생활 등등을 겪습니다. 호치민의 놀라운 점은 매번의 시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도 다시 일어나서 나아간다는 점입니다. 조직이 깨지면 다른 곳으로 가서 처음부터 다시 조직을 구성하고. 열악환 환경 조건에서 생활하더라도 동료들과 호학하며, 동료들에게 세계사와 근대 혁명을 강연합니다. 호치민은 어떻게 이렇게 지치지 않고 계속 혁명을 이어나갈 수 있었을까요? 그의 낙천적인 태도를 <주역>의 뇌산소과 괘와 한 번 연결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3) 혜원 : ‘신비스런 호치민’ (호치민)
마지막으로 호치민은 ‘종잡을 수 없는 인간’, ‘카멜레온’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습니다. 호치민이라는 인물을 평가할 때 그가 민족주의자인지 아니면 공산주의자인지?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소박한 이미지가 진짜인지 아니면 책략인지? 그는 하나의 이념, 하나의 신념으로 붙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의 움직임을 봐도 종 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랑스와 적대적이었지만, 또 다른 순간에는 화해를 하고. 미국과 손을 잡다가도, 또 어떤 때는 적대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스탈린과의 만남에서도 스탈린은 그에게 묻습니다. “호치민 동지, 여기 의자 두 개가 있소. 하나는 민족주의자들을 위한 의자이고, 다른 하나는 국제주의자들을 위한 의자요. 동지는 어디에 앉고 싶소?” 당시 사람들에게도 호치민은 신비스러운 인물이었습니다. 이 신비스러움은 무엇이고, 이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해서는 <주역>의 서합 괘로 한 번 풀어보겠습니다.
역사유물론이란?
이번 시간에도 ‘역사유물론’이 무엇인지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저희는 보통 ‘역사’라고 하면 ‘과거에 있었던 일’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기본적으로 ‘과거’에 무엇인가가 있다라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고려 시대에는 어떤 사건이 있었고, 조선 시대에는 어떤 사건이 있었다는 방식으로 과거를 정태적인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는 역사에 ‘본질’이 있다는 생각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런데 역사에 본질이란 게 있을까요? 역사유물론은 과거에 일어난 일을 탐구하는 게 아니라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인지, 그 현재적 과정을 사유하는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자신의 이론을 구성할 때에도 자신이 속한 역사적 배치 속에서 끊임없이 수정하고 변형을 가합니다. 그러므로 <역사유물론 연구>의 저자 발리바르는 마르크스를 교조화해서는 안 됨을 주장합니다. 단순히 부르주아 계급 vs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대립하는 것으로 읽는 게 아니라 현재적 조건 속에서 무수한 관계의 분할선을 흐트리고 복잡하게 상호결정하면서 역사를 만들어내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마이너 세계사의 네 번째 시간에는 <호치민 평전>을 끝까지 읽고, <역사유물론연구>는 3장의 서론과 1부를 읽어오고, 발제자는 혜원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