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독립운동의 배경
마이너 세계사 ‘호치민 아저씨’를 지나서 이제 ‘간디 형님’으로 왔습니다. 베트남 혁명사를 공부할 때는 ‘근대’라는 시기가 너무 낯설고 복잡하게 다가왔습니다. 불과 100, 200년 전의 역사지만 사회적인 조건이 너무 다르고 정서적으로도 멀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베트남’을 지나고 와서 <인도 독립운동사>로 넘어오니 점점 익숙해지고, 그 세계가 그려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번 주에는 ‘간디’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간디가 출현하기 이전에 어떤 토대가 형성되어 왔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영국과 베트남을 비교하면서 공부하면 더 재밌을 것 같지만, 아직 역량이 되지 않네요. 베트남 역사는 벌써 까마득해졌습니다^^. 시간이 된다면 중간, 중간 복습을 해나가고 싶네요.
<인도 독립운동사>에서는 먼저 전체적으로 19세기 인도의 배경을 보여줍니다.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200년 동안 지배를 받았구요. 1857년(세포이 항쟁)을 경계로 그 이전 100년은 ‘영국동인도회사’가 지배했고, 그 이후에는 ‘영국 정부’가 지배를 합니다. 영국인들의 입장에서 인도 지배는 ‘자부심’으로 기억됩니다. 인도의 광대한 지역을 통합하고, 인도 사회의 인종, 계급, 언어, 종교, 풍습 등 수많은 분열상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민주국가 + 산업국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시혜를 베풀었다고 말이죠. 이렇게 식민지배자들은 자신의 지배를 꾸며내고 정당화를 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보면서 궁금해집니다. 식민지 지배자들의 입장에서 식민지 지배란 무엇이었을까요? 야만의 땅을 문명의 빛으로 바꿔주는 것이었을까요?
반대로 인도인들의 입장은 또 다릅니다. 인도에서는 항상 절박한 문제가 ‘빈곤’이었습니다. 변덕스러운 날씨(강우)와 가뭄 때문에 농사 짓기에 부적합한 땅이었기 때문인데요. 물론 농촌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인도는 그러한 특징 때문에 정통적으로 ‘손베틀과 물레’를 이용하여 면직물을 생산하는 수공업자들이 많았는데요. 그런데 영국의 대대적인 수탈 정책 + 토착 산업의 붕괴 정책으로 인해서 수공업자들은 생계를 위해 농촌으로 쏠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인도는 ‘기근’에 속수무책인 상황에 몰리게 됩니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1885년 ‘인도국민회의’(민족주의 운동, 독립운동의 구심점)가 형성되고, 이 조직을 중심으로 여러 운동들이 펼쳐집니다.
간디의 ‘스티아그라하 운동’이 등장하기 이전에 인도에서 ‘스와데시 운동’이 먼저 있었는데요. 스와데시(Swadeshi) 운동은 ‘자기 나라의’, ‘자기 나라에서 만든’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국과의 자유경쟁에서 토착 산업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국 제품의 생산과 판매를 증진하고, 외국 제품의 사용을 억제하자는 운동입니다. 스와데시 운동은 초창기에는 경제적 고려에만 머물렀지만, 이후에는 인도 민족주의 운동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합니다. 벵골주를 분할하여 민족주의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영국의 계획에 항거하는 운동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스와데시 운동은 대중 집회가 2000회 이상 열리고, 학생, 지주, 법률가, 장인, 점원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인도 민족주의 운동에 활력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운동은 이후 간디의 범국민적인 사티아그라하 운동의 예행 연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와데시 이후 운동들은 어떻게 진행될지 차근차근 쫓아가보겠습니다.
계급적대의 첫 번째 측면 : 프롤레타리아와 자본
<역사유물론 연구>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으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이해하고 읽은 만큼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읽은 부분은 ‘계급적대의 첫 번째 측면 : 프롤레타리아와 자본’입니다. 우선 ‘계급적대’라는 게 무엇일까요? 어떤 계급과 어떤 계급이 적대하는 걸까요? A라는 계급과 B라는 계급의 분류표를 만들고, 그 두 계급이 적대한다고 말하면 쉽겠지만 발리바르는 계급은 선차적으로 분류화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계급은 역사적 과정 속에서 역동적으로 변형하기 때문입니다. 발리바르는 계급투쟁을 고정적이고 단순하게 보는 것을 주의합니다. ‘계급적대’라는 것도 역사의 역동적인 ‘과정’ 속에서 변형되는 것으로 봅니다. 그 변화를 이끄는 개념이 아마도 ‘프롤레타리아와 자본’인 것 같습니다.
발리바르는 ‘프롤레타리아’와 ‘노동자 계급’을 구분하는데요. 역사적으로 ‘노동자 계급’은 생산양식의 변화에 따라 언제나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는 ‘자본’과 함께 등장하는 개념인데요. 자본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생산성과 가장 강력한 비생산성 모두” 관찰할 수 있는 생산양식입니다. 노동 강도와 생산성을 높이면서, 비생산적 인구를 증가시키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경향성은 ‘이윤율’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자 계급’은 역사적 경향적 과정의 결과인데요. 프롤레타리아가 재생산되는 것은 노동의 ‘분할’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 결과로 ‘파편화된 노동자’가 등장하는데요. ‘불안정성’이 극대화되고, 상호교환 가능해진 노동자들이 직접적 ‘경쟁’이 생겨나게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끊임없이 노동이 ‘분할’되고, 충만함을 주는 노동이 사라지고 있는 게 이런 과정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아직, 계급적대, 프롤레타리아, 자본이 무엇인지 혼란스럽지만, 계속 읽어가면서 익혀보도록 해야겠습니다^^.
@ 다음 시간 읽을 분량
<인도 독립운동사>는 3장 간디의 독립운동의 3파트(비폭력비협조운동)까지 읽어옵니다.
<역사유물론 연구>는 ‘3, 계급적대의 두 번째 측면 : 자본과 부르주아지’를 읽어오시면 됩니다.
똑같은 식민지였지만, 베트남과 인도의 분위기가 참 달랐고, 다르면서도 비슷하더군요. 베트남에서는 프랑스가 거의 나라의 철천지원수처럼 그려졌는데, 인도에서는 영국이 자신들을 도우러 온 파트너처럼 여겨졌죠. 많은 사람들이 영국을 우호적으로 여겼고,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이 매우 소수적인 주장이었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심지어 간디도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지지했다고 하죠. 이랬던 영국과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지 기대되는군요!
역사유물론 연구에서 발리바르의 관심은 결국 '자본'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남는데요. 계급을 고정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은, 계급 투쟁 또한 실체적인 두 계급 사이의 대립으로 보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다면 어떻게 이 계급들 사이의 대립이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성립하고, 혹은 그 대립이 은폐되게끔 하는지 자본의 기묘함을 살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비몽사몽 어렵긴 하지만, 여러 모로 지금에 와서도 생각할 만한 아이디어를 많이 주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