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작년에 읽은 <주역>을 토대로 해서 선진유학부터 성리학에 이르는 유학 텍스트들인 사서(四書)를 통해 우리가 처한 문제를 다르게 볼 수 있도록 사서의 개념들을 작동 시켜보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이른바 “단장취의(斷章取義)” 글쓰기 입니다. 그 스타트로 <대학>을 4주에 걸쳐 읽고 있습니다.
<주역>이나 다른 사서(四書) 텍스트에 비하면 <대학>은 가장 얇디 얇은 책이지만... 내용이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명명덕(明明德), 지어지선(止於至善) 요런 것은 동양철학을 접하지 않았더라도 살면서 주워들은 풍월이 있는 터라 익숙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이런 개념을 나의 경험이나 기존 앎으로만 환원해 이해할 소지가 많은 개념이기도 해서 어떻게 개념을 작동시킬지 막막한데요. 당장 도(道), 예(禮)와 같은 것을 우리 시대에 말하는 것이 어쩐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전통을 수호하는 할아버지가 연상되니까요.
하지만 채운샘이 말씀하셨듯 이런 개념들은 그것이 당대의 시대적 고민을 통해 재해석되는 것이지 그 자체로 원래의 뜻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시대에 적절한 철학과 사유가 필요한 것이고 이를 위해 사서의 텍스트들을 재료로 뜯어와 활용하겠다는 것이 “단장취의”글쓰기인 것 같긴 합니다. 지금의 당면한 문제를 시야를 돌려서 다른 시공간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낯설게 되면 좀 다르게 여겨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요.
생각해보면 우리의 시대 안에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자꾸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의 파편화된 관계들이나 자의식의 우물에 갇혀 있는 마음들을 다르게 보고 싶어도 우리가 참조할 만한 것이라고는 오은영 선생님의 금쪽 상담소 정도가 있지 뭐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이니까요. (이것도 뾰족한 수인지도 의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다들 나름대로 ‘단장취의’ 글을 써봤는데요... 네, 말만 쉽지 글은 그렇게 안 되더군요. <대학>을 읽으니 자꾸만 옳은 말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거부감이 생기기도 하고, 뭘 다르게 봐야 할지 막막하더군요. 뭐... 그렇습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있나요? 아무리 가이드를 미리 줘도 한 번 직접 써봐야 뭐가 문제인지 아니까요.
그럴 줄 아셨는지 채운샘께서 우리의 너덜한 첫 글을 가지고 “단장취의(斷章取義)” 글쓰기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친절하게 가이딩을 해주셨습니다. 이번 후기는 채운샘의 이 단장취의 글쓰기 가이드를 정리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단장취의(斷章取義) - 해석을 굴려보자
채운샘은 단장취의 글쓰기는 방점이 요 ‘취의(取義)’에 있다고 하셨는데요. 이것은 텍스트를 읽고 주요 개념을 정리하거나 맥락 없이 갖다 붙이는 것이 아니라, 가져온 개념의 뜻/의미를 뭔가 자기 식으로 ‘해석을 굴려’ 보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단장취의 할 때는 가져온 개념의 전체 맥락을 구구절절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어디에서 뭘 가져오는 것이 맥락과 동떨어져선 안 되죠. 그런데 어쨌든 텍스트를 읽고 한 구절을 가져왔다면(斷章) 요 구절/개념을 어떻게 해석하겠다는 자기 맥락이 있으면 된다고 합니다(취의). 예를 들어 명명덕, 일신우일신 개념을 가져와서 ‘이렇게 해석하겠다’고 한다면 이 구절이 원래 있었던 맥락과 상관없이 그 구절이 갖는 뜻을 취해서/그 구절을 해석해서 나의 새로운 맥락 속에 배치하는 것, 이게 단장취의 글쓰기라고 하셨습니다. 채운샘은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고전의 어떤 구절을 지금 현재적으로 나도 모르게 해석하게 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 단장취의 글쓰기 할 때 주의할 점
1. 분량: 되도록 주어진 분량 내에 글을 구성해라.
채운샘은 제시된 글쓰기 조건과 분량에 맞게 자신의 사고를 재단해 보는 훈련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분량은 A4 한 장인데요.(자간, 글자크기 변형X)
한 페이지를 쓰는 것은 약간 짧은 칼럼 혹은, 10분 정도의 단편영화 혹은 짤막한 단편 소설 정도의 분량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제한된 분량과 시간 안에 얘기하고 싶은 바를 임팩트 있게 보여주기 위해 어떻게 글을 어떻게 구상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자칫 딴 말을 하다보면 정작 해야 말은 얼마 하지 못하게 되니까요. 중반이 넘어가도록 등장인물, 시공, 상황은 어떤지, 무엇에 관해 얘기하는지 모르겠는 영화나 소설이 있다면 작가나 감독의 연출역량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겠죠. 글도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
2. 제목: 짧은 글일수록 제목은 임팩트 있어야 한다.
3. 서론: 쓰고 싶은 구절/개념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라.
분량이 짧기 때문에 최대한 바로 가져온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고 싶은지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실 이게 가장 어려운 부분인데요. 예를 들어 ‘명명덕’을 가져온다면 나는 밝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 볼 수 있을까? 밝은 덕을 밝히는 것은 무엇이지? 밝은 덕은 어디있지? 밝은 덕을 밝힌다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밝힌다는 걸까?....식으로 질문을 하다보면 없는 주어, 목적어, 부사어를 넣어서 나는 이렇게 해석해 보고 싶다는 것이 드러난다는 것이지요. 말은 쉽지 ‘명명덕’하면 멍하게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경험 있으실텐데요. 저도 여기서 늘 막혀서 가슴이 답답합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는 개념을 보면서 내가 알고 있고, 당연하고 사소해서 별것 아니라 믿는 것들을 의심하고 질문하고 답해보는 식으로 이 답답함을 돌파해볼까 합니다.
채운샘은 해석하는 작업은 ‘뭘 알고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고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모른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도 하셨고요. 대신 ‘어떤 모르는 구절을 배우면서 새롭게 나의 모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가?’로 질문을 바꾸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내가 모른다는 자각으로부터 뭔가 배우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모름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우리가 어떤 것을 모른다고 느낄 때 모른다는 것은 실은 동시에 어떤 것을 앎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른다’는 고백은 겸손한 것이 아니라고도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요.
보통 우리가 ‘모르겠다’고 할 때 생각해보면 실은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앎이 다른 것에 의해 조금도 흩트려지고 싶지 않다는 고집스러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막하고 모른다고 여겨지는 것이 있으면 이런 내가 모른다는 답답함을 견디지 못해 보통‘난 몰라’라고 쉽게 마음의 문을 닫기 십상이잖아요. 그렇다면 이것은 진짜 모르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파고들면서 질문하고 싶지 않은 사유의 게으름, 귀차니즘인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게으름!!
4. 본론: 제시된 개념에 대한 해석을 현재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는 문제와 연관시켜 배치해라.
어떤 구절/개념을 어떤 식으로 해석해 보겠다는 주제가 서론에 제시되었다면, 글을 쓰는 당시의 나의 일상, 혹은 정치, 기후, 전쟁 등 나를 건드리는 문제의 맥락 속에서 이 개념을 다시 배치하면서 나의 상황에 맞게 이를 적용하고 작동시켜 보는 것, 이것이 단장취의 글쓰기라고 합니다. 개념은 이렇게 우리의 상황에 작동시켜 볼수록 우리의 해석역량은 커진다고 하셨습니다. 공자든, 주희든 경전에 주를 단 것은 당대의 문제에 대한 치열한 해석의 결과라고요.
이런 식으로 단장취의 한 것을 시의 적절한 글로 써보고. 그때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문제를 짤막하게 자구를 해석하는 것과 결합시켜서 글을 구성해 쓰는 훈련을 하면 글의 호흡이 가벼워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글을 구성해보면 긴 글을 쓰는 것에도 적용이 된다고요.
그래서 단장취의 글쓰기는 서론에서 문제의식을 정교화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대신 주제와 관련 없는 아이스브레이킹용 스몰토크 같은 쓸데없는 얘기는 과감히 쳐내고 한 페이지 분량 내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을 어떻게 배치하면 좋을지 글을 쓰고 나서도 계속 퇴고를 하면서 고민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식으로 군더더기 없는 글을 쓰는 연습을 하는 것, 우리를 ‘스마트’하게 만드는 글쓰기 훈련, 이것이 올해 단장취의 글쓰기의 취지라고 하네요.
처음에는 사서를 일 년 만에 읽고 단장취의 글쓰기를 할 수 있겠냐? 걱정이 앞섰는데요. 이렇게 채운샘의 감언이설을 따라가다보니 요렇게만 되면 진짜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 혹하게 되네요. 생각해보면 주역이든 사서든 우리가 클래식이라고 하는 텍스트들은 언제나 현재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접점과 변형 가능한 유연성이 있기 때문이지, 이들이 깨지고 다칠까 신주단지 모시듯 고이 간직해야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문제는 이런 작업을 하는 우리들이 알고 있는 실마리를 단서 삼아 현재적 상황에 이리저리 비틀고 변형시키며 놀아보자는 ‘치지(致知)’하는 물고 늘어짐, 근면함, 성실함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휴 지금껏 정답, 차려진 밥상, 주어진 길을 따라 사는 데만 익숙한 몸이라 다르게 해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나 혼자라면 절대로 못하겠지만, 혼자 하는 것은 아니니, 채운샘의 가이딩을 길잡이 삼아 우리 함께 일 년 파이팅해 보아요!!
단장취의의 핵심만 콕콕 찝어준 후기 잘 읽었습니다. 짧은 글일수록 물고 늘어지며 끈기있는 사유가 필요헌 것 같아요. 다음에는 좀 더 감는 것으로...제발...🥲
파이팅...!!
단장취의 글쓰기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강의 때 들었던 내용이 복습이 되네요!
글쓰기 과제가 막히고 혼란스러워지면 다시 찾아와서 읽어보고 싶은 후기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사서의 개념을 나의 문제의식과 연결시켜보고, 끝까지 ‘궁리’해봅시다~
무엇을 단장(斷章) 할지, 어떤 맥락으로 해석할지(取義) , 모두 자기 질문에서 나온다는 것인데요, 단장취의에 대한 깔끔한 정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려움이 남네요.
"모르는 구절을 배우면서 새롭게 나의 모름에 대해 생각"하는 한 해를 만들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