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경(經)부터 傳 5장까지 적지 않은 분량인지라 지난 일주일간 수시로 중얼중얼 하며 다녀야 했습니다.
오후 대학 강의 시작 전, 전체 암송을 한 후 3명이 지목되어서 개인 암송 테스트가 있었습니다.
무사 통과한 이인샘, 아슬아슬 통과한 hilde샘, 안타깝게 된 경순샘. 암송이 끝나고 hilde샘은 다음주에도 또 암송을 시킨신다면 다음주는 출석할 수 없겠노라!! 고
외치셨지만 우째,, 안 통하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채운샘은 강의 시작 전 각 조별로 세미나 후 생긴 질문을 물었습니다.
혜원샘 조에서는 전 9장을 보며, 유학에서 가르친다는 것을 뜻하는 '교(敎)' 와 계몽주의에 말하는 '계몽' 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를 질문했습니다. 계몽이란 앎을 갖고 있는 자가 모르는 자에게 전수하고 그를 이끌어가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유학에서는 본래부터 갖고 있는 본성을 이끌어 내는 것, 배우는자의 능동성을 진작시키는 것이 아닐까. 라는 의견도 덧붙였습니다.
규창샘 조에서는 공자-맹자-순자-진,한나라 로 이어지는 유학의 변천사를 놓고 세미나 책(유학은 어떻게 현실과 만나는가) 저자가 ‘피지스적 질서로부터 노모스적 질서로 이행’ 으로 말하는 것이 흥미롭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꼭 구분짓는게 적절한 것인지? 노모스적 질서에서도 피지스적인 것은 여전히 작동하는 것 같은데..? 라는 질문을 한 것 같습니다.
이인샘 조에서는 전 7장에 나오는 ‘자신을 수양함이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함에 달려 있다는..’ 문장을 보며, 심과 신은 분리되어 있지 않은 것 같은데도 왜 마음은 정심(正心)해야 한다고 하고 몸은 수신(修身)해야 한다고 하는지? 글자가 다르니 구분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실제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위 질문을 토대로 채운샘의 강의가 진행 되었습니다.
첫째, 우리는 신(身)을 떠올리면 바디, 그 중에서도 인체의 겉모습으로 한정시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유학에서 말하는 신(身)은 훨씬 더 포괄적입니다. 물질적인 것은 물론이고 비물질적 것들- 내장기관, 땀, 소리, 냄새, 기억, 정서 등- 모두가 신(身)에 해당됩니다. 전 6장에 ‘덕은 자신을 윤택하게 하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빛난다 (심광체반(心廣體胖)’ 고 했습니다. 마음을 쓰는 것이 가시적이지 않을지라도 그것들은 결국 몸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으니, 홀로 있을 때도 삼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둘째, 텍스트는 항상 현재적인 독해로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시대에 따라 독자에 따라 경험도 감각도 다르기에 해석은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역사를 책으로 접한다는 것은 이미 저자에 의해 해석된 것을 재해석 하는 것과 같습니다. ‘피지스적 질서로부터 노모스적 질서로 이행’은 동양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비슷한 길을 걸었습니다. 소크라테스 이전에는 세계의 기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탐구가 중심이었다면 이후에는 세계와 관계 맺고 있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을 사는 것인가? 로 질문이 바뀐 것이 그러한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이 질문을 따라가 보면 유학에서는 교(敎)를 중요시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敎)를 강조했던 공자라는 출발점은 같지만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맹자와 순자가 있습니다. 교(敎)를 맹자는 본래부터 갖고 태어난 본성이 있으며, 그것이 가리워지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것으로 본 반면에 순자는 그대로 두며 안되고 조형하듯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서양에서도 가르친다를 뜻하는 글자들의 어원을 따라가 보면 맹자와 순자가 말한 방향들이 모두 내포되어 있습니다. 본래 갖고 있는 것을 이끌어주는 것과 밖에서부터 조형해주는 것으로요. 그런데 유학에서 교(敎)는 단순히 배움으로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濟)-치(治))로 확장되어 집니다. 가지런히 하고 통솔하는 것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 교(敎) 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유학은...> 텍스트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의 사유가 어떤 역사적인 조건 속에서 무엇과 싸우고, 어떻게 얽히는지 싸우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살피는 작업은 사유를 더욱 풍부하게 만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교육 혹은 가르침의 문제도 근대 학교와 대비해서 보면 재밌는 게 있겠더라고요. '평균적인 인간' 혹은 '전문가적인 인간'을 만들기 위한 교육이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라면, 고대 중국의 '교'에서는 어떤 것을 끌어내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을 첨예하게 다듬는 과정에서 현재의 교육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도 보일 것 같고... 흐음... 텍스트를 읽고 질문을 제기하는 것을 꼼꼼하게 연마해 보죠!
이인
2024-03-11 15:16
동양에서는 몸(身)이 어떻게 사유됐는지 질문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것 같네요!
저희에게 몸은 확실히 body, 즉 인체의 겉모양을 상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몸(身)을 구성하는 건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이 뒤섞여 있죠. 내장기관, 땀, 세포, 기억, 정서 등등!
비물질적인 것은 물질적인 것에 영향을 주고, 물질적인 것은 또 비물질적인 것을 영향을 끼치는 복잡한 체계가 몸(身)인 것 같네요.
심광체반(心廣體胖)의 문제도 생각해보면 재미난 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우리가 <유학은...> 텍스트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의 사유가 어떤 역사적인 조건 속에서 무엇과 싸우고, 어떻게 얽히는지 싸우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살피는 작업은 사유를 더욱 풍부하게 만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교육 혹은 가르침의 문제도 근대 학교와 대비해서 보면 재밌는 게 있겠더라고요. '평균적인 인간' 혹은 '전문가적인 인간'을 만들기 위한 교육이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라면, 고대 중국의 '교'에서는 어떤 것을 끌어내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을 첨예하게 다듬는 과정에서 현재의 교육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도 보일 것 같고... 흐음... 텍스트를 읽고 질문을 제기하는 것을 꼼꼼하게 연마해 보죠!
동양에서는 몸(身)이 어떻게 사유됐는지 질문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것 같네요!
저희에게 몸은 확실히 body, 즉 인체의 겉모양을 상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몸(身)을 구성하는 건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이 뒤섞여 있죠. 내장기관, 땀, 세포, 기억, 정서 등등!
비물질적인 것은 물질적인 것에 영향을 주고, 물질적인 것은 또 비물질적인 것을 영향을 끼치는 복잡한 체계가 몸(身)인 것 같네요.
심광체반(心廣體胖)의 문제도 생각해보면 재미난 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