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 무진장 일요반 8주차 공지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산책을 슬슬 나왔더니 꽃들이 나 좀 봐라~ 하고 피어 있네요. 보기만 해도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이것이 바로 목기(木氣)?! ㅎㅎ 무진장 일요반도 생생하게 굴러가고 있습니다. 오전에는 강독과 강의, 오후에는 토론과 글쓰기 피드백과 암송...! 바쁘게 달려오다 보니 어느새 7주차...! 이 바쁨이 번다함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배운 것들을 연결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십간(十干)의 의미와 작용
이번 시간부터는 천간과 지지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천간(天干)은 음양오행을 음양으로 구분한 것입니다. 양(陽)으로 시작하여 음(陰)이 마무리하는 운동이 오행에 적용되었죠. 갑을(甲乙) 중 시작하는 갑(甲)은 양이고 을(乙)은 음입니다. 이 음양의 일진일퇴하는 운동이, 양이 성장하여 가시화되기 시작하는 갑(甲)에서 마무리하는 계(癸)로 이어지는 가운데 일어납니다. 천간은 계절을 따르는 기(氣)를 말하기 떄문에, 자칫 봄-여름은 발산하는 양이고 가을-겨울은 수축하는 음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도 양-음의 운동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사주에서 천간과 지지, 그리고 지장간으로 구성됩니다. 천간은 기(氣), 정신적인 면이 강하다 할 수 있습니다. 기는 가볍고 맑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입니다. 그러나 천간의 움직임이 아무리 빨라도 그것이 실제로 실현되는 기반은 지지의 영역, 질(質)적 영역입니다. 때문에 천간의 순수한 기운이 지지의 어디에 뿌리를 내렸는지를 봐야 합니다. 이떄 중요해지는 것이 지장간입니다. 지장간은 지지가 숨긴(?) 천간이자, 천간이 나온 출처입니다. 지장간이 천간으로 나타나면 ‘투출’ 되었다 하여 자기의 역할을 드러내는 것이라 합니다. 천간과 지지, 그리고 지장간이 어떤 관계 속에서 서로를 생하고 극하는지를 보는 것이 통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성(性)을 통솔하는(率) 것이 바로 도(道)
한문으로 된 글을 읽다보면 어쩐지 내가 그 글자의 의미를 아는 것 같습니다. 성(性)은 본성이고 중(中)은 가운데고 등등...그런데 막상 글을 써 보면 알게 되죠. 내가 아는 게 아니라는 것을...특히 (누군가는 반발하시겠지만^^) 중학생 한자로 이루어진 사서를 읽다보면 이 갭에 좌절하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는 글자인데, 왜...모르지?! 이런 일들이 속출한 것이죠. <중용>의 첫 구절도, 모르는 글자가 거의 없습니다. <중용>의 첫 장을 그냥 알던대로 읽으면 이렇습니다. “하늘이 명한 것을 일러 성(性)이라 하고 성(性)을 따르는 것을 일러 도(道)라 한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읽는 건 아무 뜻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性)이 무엇이고 (道)가 무엇인지, 그 사이사이에 있는 명(命)이며 솔(率)이며 하는 글자들은 우리가 습관대로 읽는 것과 전혀 다른 의미도 함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강의에서는 솔(率)이 ‘따르다’가 아니라 ‘통솔하다’라는 의미로 풀렸습니다. 그러자 <중용> 첫 문장이 전혀 다르게 들어오죠. 성(性)을 단지 받아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통솔한다? 그러면 도(道)는 주어진 도리가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탐구하고 끊임없이 닦아야 하는 ‘길’이 됩니다. 말하자면 이런 구도이죠. 성(性), 나투라(natura), 우주의 모든 개별자들의 근원적 생명력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할 일은? 내가 타고난 성(性)을, 즉 내 안에 내재한 원리를 통솔(率)할 길(道)를 탐구하는 것이죠. 이렇게 문장을 이루는 글자 하나하나가 추상적이지 않도록 사유하는 것이 ‘단장취의’를 하는 재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의미를 찾아내고 이리저리 굴려보고 갖고 노는 재미를 발굴하는 작업을 계속해 봅시다~~
읽어올 것
<중용> 26장까지 읽어옵니다.
<뚜 웨이밍의 유학강의> 2부 2장까지 읽습니다.
<음양오행...>은 188쪽까지 읽습니다.
과제
이번 단장취의 글쓰기는 <중용>으로 씁니다.
<대학> 암송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