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명리를 공부하고, 대학과 중용을 외우고, 단장취의 글쓰기를 하다보니 벌써 9주차가 됐네요. 꾸역꾸역 읽고, 어떻게든 글을 써내고, 까먹고 외우기를 반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이 과정을 겪는 일요반의 배치 덕분입니다. 어느덧 대학과 중용을 마무리하는 ‘에세이’가 남았네요! 군자(君子), 배움(學), 앎(知), 정치(治), 마음(心), 수신(修身)을 주제로 어떤z다양한 글쓰기가 나올지 기대가 됩니다. 에세이까지 퐈이팅해요-!
하늘을 품은 땅, 12지지(地支)
이번 명리학 강의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의 관계였습니다. 명리학에서 하늘의 운행은 10가지의 기운(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상의 기운은 12가지(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로 나뉩니다. 명리학의 이론에서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지지(지상의 기운)는 천간(하늘의 기운)들의 이합집산으로 형성됐고, 그것을 일러 ‘지장간’(支藏干)이라고 부릅니다. 하늘(天)과 땅(地)은 너무 다른 세계처럼 보이지만 실은 둘은 같은 원리를 품고 있었습니다.
명리학에서 하늘(天)은 심플하고, 보편적이고, 원리적인 것을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땅(地)은 복잡하고, 엉켜있으며, 구체적인 것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고요하고 뻥-뚫린 푸른 하늘과 그와 달리 생명체들이 우글거리는 지상이 떠오르네요. 이러한 특징을 반영하여 명리학은 천간(天干)을 인간의 정신적인 조건, 뜻(名)으로 해석하고. 지지(地支)는 현실적인 토대, 실질적인 기운(利)으로 해석을 하는데요. 자연의 ‘하늘’과 ‘땅’을 인간의 ‘마음’과 ‘삶의 배치’로 대응하여 해석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사주팔자를 해석할 때 천간(天干)의 기운 = 한 인간이 뜻하는 바가 현실에서 잘 실현될 수 있을지 보려면 무엇을 검토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지지(地支)가 품고 있는 천간(天干)의 기운을 살펴봐야 합니다. 천간(天干)이 지장간(支藏干)에 같은 기운이 있으면, ‘뿌리를 내렸다’라고 표현합니다. ‘뜻하는 바’를 현실에서 잘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다는 말인데요. 뿌리가 내려져 있지 않다고 한숨 쉬거나 한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매시간/매일/매달/매년/대운으로 우주의 기운이 우리 사주팔자에 들어와서 섞이기 때문입니다. 목 기운이 부족하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목 기운의 시간을 잘 활용하면 되는 겁니다. 우주의 기운과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사는 게 우리 삶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우주와 부합하는 삶
명리학을 공부하는 시간에서도 그렇고, 중용을 배우는 시간에서도 하늘(天)이 아주 중요하게 나옵니다. 유학에서 ‘성인’이 지향하는 삶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늘(天)의 운동성과 부합하는 삶’, ‘우주의 흐름과 일치되는 삶’을 사는 것인데요. 그러면 하늘이 운동하는 방식, 우주의 흐름은 대체 무엇일까요? <중용>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실함은 하늘의 도이다.”(誠者, 天之道也) 이때 성실함(誠)은 또 무엇일까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매일 힘써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성실함(誠)일까요?
다른 구절에서는 “성실한 사람은 힘쓰지 않아도 맞으며, 생각하지 않아도 알아서 자연스럽게 도에 맞으니 성인이다”(誠者, 不勉而中, 不思而得, 從容中道, 聖人也)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구절만 읽어봐도 성실함(誠)이 의식을 가지고 노력하는 이미지는 아닙니다. 채운샘께서는 강의에서 성실함(誠)은 하늘이 운동하는 방식이고, 그것이 곧 생명의 본성(性)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본성(性)을 서양의 무의식 개념과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고 소개했는데요. 베르그손에게 무의식은 곧 기억이고, 니체에게 무의식은 곧 힘들의 싸움이고, 불교에서는 아뢰야식이라는 깊은 무의식에 대한 사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는데요. 유학에서는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을까요? 성실함(誠)을 우주적 무의식으로 읽으면, 이 우주적 무의식과 우리는 어떤 식으로 관계 맺을 수 있을까요? <중용>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해봐야 할 지점인 것 같네요!
@ 읽어올 것
1. <중용> 끝까지 읽습니다.
2. <뚜 웨이밍의 유학강의> 끝까지 읽습니다.
3. <음양오행 볕과 그림자 그리고 다섯 원소>는 257쪽까지 읽습니다.
@ 과제
1. <대학>, <중용> 에세이 개요를 잡아옵니다.
2. <대학>은 끝까지 암송합니다.
다음 시간 후기는 영란샘 / 간식은 수미샘, 정옥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명리학과 사서가 天으로 이어지네요! 그런데 명리학과 사서가 도출하는 실천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다르다는 느낌이 드네요. 이 느낌이 구체화되질 않아서 매우 답답하지만요..!
일단 느낌적으로는, 자신이 놓인 배치를 우주적 지평에서 읽어내고 실천을 도출한다는 점에서 <중용> 1장에서 존재를 性, 道, 敎로 묶어서 설명하는 것과 뭔가 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중용>에서는 인간의 실천 지점을 誠으로 도출하는 반면, 명리학에서는 오행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게 비교되는 지점인 것 같습니다. 흐음... 간질간질합니다! 에세이에 명리학의 얘기는 하나도 못 녹여낼 것 같네요. ㅋㅋㅋ;;..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