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후기
Seminar 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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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 4학기 8주차 후기>
『우다나-감흥어린 시구』 7품을 읽고 있습니다. 매번 경의 마지막이면 어김없이 세존께서는 그 뜻을 헤아려, 때맞춰 감흥어린 시구를 읊어주시지만.. 헤아린 그 뜻은 무엇? 어떤 때를 맞추어? 하는 궁금증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ㅎㅎ
<우물의 경>에서 투나 마을의 사람들은 부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로서 우물에 풀섶과 왕겨를 집어넣어 막아 부처님과 수행자들이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앞에서 결국 물은 스스로 정화됩니다. 부처님의 감흥어린 시구는 이렇습니다.
“물이 어디에든 있다면, 우물이 무슨 소용이랴? 갈애의 뿌리가 잘리면 무엇을 찾아 떠날 것인가?” ‘물’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본성? 진리?.. 마을 사람들은 부처님을 배척하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우물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진리라는 물은 우물에 가두어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딘가에 있는 신성한 무언가가 진리라고 생각하면서 찾아다니지만 깨달은 이는 진리가 도처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깟짜나의 경>과 <우데나의 경>을 통해서는 업식과 윤회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깟짜나의 경>의 감흥어린 시구인 “있지 않았다면, 나에게 있을 수가 없고 있을 수가 없는 것이라면, 나에게 있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은 ‘내 업의 원인은 나’라는 말이겠지요. 내가 과거에 하지 않았던 행위가 내게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데나의 경>에 얽힌 이야기에서 한 수행녀는 자신이 하는 행위가 미칠 영향을 생각할 때 상대까지 고려합니다. 그리하여 연민을 내고 상대에게 더 나은 결과를 줄 행동을 선택합니다. 우리는 업보를 떠올릴 때 인과응보를 생각하곤 하지만 매순간 하게 되는 결단은 무엇을 기준으로 나온 것인가, 나는 어떤 결과의 원인을 짓는가..나뿐만 아니라 상대의 결과까지 생각하는 원인을 짓는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희론의 부숨에 대한 경>에서는 “희론에 오염된 지각과 관념”의 주석에서 전에 종종 보았던 희론에 대한 긴 설명이 다시금 나옵니다. “희론은 지각과 사유의 ’확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역에서 망상이나 사량분별 때로는 장애라고도 번역한다.” 이것은 스피노자가 말하는 상상적 인식, 부적합한 관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도 우리가 상상적 인식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부처님도 우리의 경험세계가 틀렸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지각과 경험적 판단을 다른 것에도 적용하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적합한 관념이고 희론이 됩니다.
『천개의 고원』 시간에는 <리토르넬로>와 <유목론 또는 전쟁 기계> 강의가 있었습니다.
<리토르넬로>
“영토는 예술이 가져다주는 효과”(p600)라고 하였는데 들뢰즈와 가타리의 예술론은 1.예술은 동물의 전유물이 아니다. 2.예술은 일종의 영토화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예술에 대한 기존의 개념들을 그 개념들이 붙박여있던 영토로부터 탈주시키는 작업을 하며 예술에 대한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예술가는 경계표를 세우거나 지표를 만드는 최초의 인간이 되는 것이다.” “예술은..포스터 혹은 플래카드”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포스터나 플래카드는 그 해당 지역을 영토화하는 지표가 됩니다. 반고흐의 노랑색을 사용하는 방식은 반고흐적 용법을 발명한 것이고 노랑색을 영토화한 것입니다.
“리토르넬로가 표현적으로 되는 것은 리듬과 선율이 영토화를 일으켰기 때문이다.”(p601)
‘표현적으로 된다’는 말은 표현적인 질을 띄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정한 리듬을 형성하게 될 때 말이죠. 리듬의 형성은 어쩌다 한번 하는 것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반복이 되어야 스타일이 되는데.. 이는 사람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했었지요? 리토르넬로를 삶의 스타일로 생각해볼 때 리토르넬로는 ‘수련의 과정’을 보여준다는 표현이 와 닿습니다. 푸코는 그런 삶, 실존이야말로 진짜 미학의 대상이라고 말했다고 하죠.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하나의 작품으로 조형할 것인가.. 멋진 말이고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
“하나의 질료를 표현의 질료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p602) “영토화하는 미학적 요인이 환경의 기능들을 노동의 형태로 조직하는 동시에 카오스의 힘들을 결합시켜 의식과 종교로, 대지의 힘들로 전환시킨다.”(p611)
질료란 형태화가 안 된 덩어리입니다. 그것이 환경과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고 리듬을 형성할 것인가.. 표현적인 방식으로 환경을 조직하는 것이 예술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영토화의 지표들이 모티프(반복선율)와 대위법(화음, 후렴)으로 발전해가는 것과 기능들을 재조직하고 힘들을 결집하는 것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이것만으로도 완전히 영토는 이미 영토 자체를 초월하는 무엇인가를 풀어놓게 된다.”(p611) 영토란 영토화의 결과물이니까..영토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환경과의 일정한 리듬의 결과물인겁니다. 그리고 영토 안에는 그 리듬으로 조직화되지 않는 힘이 함께 있다고 하는데요. 그림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그 무언가, 음악에도 귀에 들리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그 무언가가 있을 때가 있잖아요? 글도 그렇고요. 그래서 ‘해석’이라는 것을 합니다.^^ “영토 안에는 탈영토화하는 힘이 함께 내재되어 있다!”
“영토는 자유를 보장한 코드의 여백에서 출현하는데, 이것은 한정되지 않는다기 보다는 다른 형태로 한정된다.”(p611)
영토와 코드의 관계에서, 영토는 물리적인 것이고 코드는 영토를 만들어낼 때 작용하는 물질적이지 않은 무엇입니다. 신체가 만들어질때 코드는 DNA, 영토는 신체인 거죠. 둘이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지고요. 영토는 코드의 여백에서 출현한다는데 ‘코드의 여백’이란 무슨 말일까요? 완전히 코드화되지 않은, 그렇다고 탈코드화되지는 않은 그 사이에 있는 무언가라고 하는데요. 우리 몸이나 생각도 고정되어 있는 것 같지만, 또 매순간 변한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잖아요? “어떻게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것 안에 고정되지 않는 힘이 내재해 있는가?”라고 들뢰즈와 가타리는 묻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것이 ‘되기’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모든 존재는 ‘되기’인 것이고요.
<유목론 또는 전쟁 기계>
노마드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기와 이동능력입니다. 노마드에게 필요한 능력은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도 머물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목민에게 필요한 무기는 ‘어디에도 머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속도와 운동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 운동은 “하나”로 간주되는 어떤 물체가 어느 한 지점에서 다른 한 지점으로 이동하는 경우 갖게 되는 상대적 성격을 가리키는 데 반해 속도는 어느 물체의 환원 불가능한 부분들(원자)이 돌연 어떠한 지점에서라도 출현할 수 있는 가능성과 함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매끈한 공간을 차지하거나 채우는 경우 물체가 갖게 되는 절대적 성격을 가리킨다.”(p732)
어디를 가든 그곳의 환경, 사물, 사람들과 관계 맺을 수 있는 능력을 ‘속도’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디를 가든 여기에서의 습성을 거기에서 그대로 행한다면 그것은 ‘운동’했을 뿐인거고요. ‘매끈한 공간’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홈파인 공간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홈파인 공간은 줄이 그어진, 경계를 그은, 규정된 공간을 말합니다. 홈이 어떻게 파였는냐가 그 공간을 결정하게 되고 줄그어진 공간으로만 다니는 자들이 바로 정주민입니다. 그렇다면 노마드들이 다니는 공간은 줄이 그어지지 않은 매끈한 공간이겠지요. 구획되지 않은, 더 자유로운 공간. 선생님은 노마드의 최고봉은 승가공동체라고 하십니다. 어디를 가도 그곳을 매끈하게 만들고 분별을 없애고 어디에 머물든 그 공간을 수행처로 만들어 버린다고요.^^;
“단지 유목민만이 절대적 운동, 즉 속도를 갖고 있으며 소용돌이 운동 내지 회전 운동은 본질적으로 전쟁 기계에 속하는 것이다.”(p732) ‘전쟁기계’는 또 무슨 말일까요?;; ‘조직화된 것의 외부’를 말한다고 합니다.
“공리1. 전쟁 기계는 국가 장치 외부에 존재한다.”(p671) 국가라고 하는 건 모든 것들을 코드화하는 절대적 조직체입니다. 그런데 이 조직체에도 시스템화 되지 않는 흐름들이 함께 존재합니다. 노마드들도 그 국가의 영토를 돌아다니면서 국가장치와 관계를 맺고 있죠. 영토가 있으면 언제나 그 영토를 벗어나는 힘들이 영토에는 늘 존재합니다. 영토를 벗어나려는 그 힘들의 도주선을 어떤 방식으로 조직하느냐- 이것을 ‘기계’라고 말합니다. ‘전쟁’이라는 말은 국가간의 전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적인 것으로부터 늘 이탈하는 힘을 만든다’라는 의미에서의 전쟁이라고 합니다. 워리어머신. 전사의 이미지로 생각하면 된다고 하는데.. 좀 어렵기도 하네요...^^; 중심과 주변은 상호연결되어 있지만 중심에 종속되느냐 종속되지 않느냐가 문제가 됩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바둑과 장기를 예로 듭니다. 장기와 달리 바둑은 알들의 위계가 없죠. 규정되지 않은 워리어입니다. 그런 중심과 동화되지 않는 힘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유목민에게는 필요합니다. 유목민의 그 ‘무기’가 탐이 나네요!
다음주에도 유목론 강의가 이어집니다~.^^ 그럼 도반님들~~ 남은 한 주 잘 보내시고 다음 주에 뵈어요~~^0^
<12월 20일 4학기 9주차 공지>
* 우다나 제8품. 빠딸리가마의 품 (p517~끝) 읽어오고 낭송+토론 합니다.
* 천개의 고원 강의가 있습니다.
* 초고를 준비해옵니다.
복잡한 개념들에 대해 이해와 난해함이 묻어나는 후기!! 에세이 초고 전야에 제게 뭔가 힌트를 주는 듯한 글귀가 반짝이는군요! 반장님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