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바쁘다고 게으름을 피우다가 공지가 너무 늦어졌네요. 죄송합니다. 내일 5회차 수업인데 다들 수업 준비는 잘하고 계시겠죠? ㅎ 어제는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무시무시하게 내려 여기저기 어려움이 많았는데 다들 큰 피해는 없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폭우 속에 운전하다가 차로 헤엄치는 줄 알았습니다. 다행히도 어찌어찌 살아 돌아왔습니다만.
이런 막강한 자연재해를 맞닥뜨리면 인간에겐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하루만의 폭우로 집과 건물들이 침수되고 자동차들이 물에 잠긴 도로에 둥둥 떠다니는 걸 보면 마치 현대 문명이 자연의 힘 앞에 무력한 장난감처럼 보입니다. 뉴스에는 당장 이런 폭우와 재앙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해설하는 기사들이 뜹니다만 물에 잠긴 세간살이와 생계의 터전 앞에서 원인이고 뭐고 사람들은 망연자실해집니다. 안타깝고 무력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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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을 훌쩍 뛰어넘어 저희가 공부하고 있는 서양 고대철학의 시대를 떠올려보면, 2300-2400년 전 인간의 자연에 대한 경외와 두려움은 21세기를 사는 저희보다 훨씬 깊게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인간을 둘러싼 이 모든 자연과 우주 그리고 현상들을 탐구하며 그 근원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철학의 일환이기도 했고요. 서양 고대철학을 공부하면서 저는 매번 이 부분이 놀라운 것 같습니다. 지난 시간 민호샘이 강의해 준 에피쿠로스학파의 자연학에 대한 부분도 그랬습니다. 저희 시대의 자연학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은 앎을 증식하고 그 앎을 이용해 인간이 더 많은 편리와 쾌락 그리고 권력을 구가하는데 관심을 지닌다면, 고대 시대의 철학자들에게 자연에 대한 탐구란 윤리의 문제, 철학의 문제와 분리되지 않았었다는 점 말입니다.
에피쿠로스학파의 철학자들은 인간이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주의 운동과 사물의 본성을 탐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연에 대한 이런 탐구란 지식을 쌓은 차원이 아니라 인간을 얽매고 있는 사유, 표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했고요. 에피쿠로스가 추구한 쾌락은 감각에의 탐닉이 아니라 감각의 절제와 훈련을 통해 이르는 영혼의 평정, 아타락시아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 아타락시아에 도달하기 위해선 자연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하다고 했고요. 제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이때 자연에 대한 이해란 궁극적으로 우리를 동요하게 하는 정념과 표상, 세상에 대한 무지를 걷어내는 것과 관련됩니다. 그러니까 에피쿠로스의 철학과 윤리의 토대는 자연에 대한 이해로부터 나오고 이 자연학의 토대로서 원자론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원자론이라고 하면 일찍이 데모크리토스가 주장을 했었죠. 소크라테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데모크리토스는 우주의 원리를 추상화하면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atom)라는 개념을 등장시켰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이 세계를 만든 근본이 뭘까?라는 질문을 오직 사유로만 추리해서 원자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추론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무수히 많은 원자들이 운동하기 위해서는 허공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고요. 비어있는 허공과 허공 속에서 운동하는 원자, 그리고 수많은 원자들의 상호 충돌로부터 세상의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여 인간의 감각이란 것도 원자들의 일시적 충돌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감각의 좋고 나쁨이라는 판단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고 했죠. 이렇게 원자의 충돌이라는 원인에 따라 일어나는 세계는 필연으로 질서 지어진 세계이고 따라서 이 필연을 이해하면 고요하고 두렵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접하고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토대로 삼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마르크스가 평가했듯이 에피쿠로스의 원자론과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고 합니다. 민호샘이 두 가지로 정리를 해주었는데 첫째는 ‘감각에 대한 신뢰’의 문제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데모크리토스에게 감각이란 원자들의 충돌로 일어난 것이므로 감각 자체는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주관적인 것이라고 평가됩니다. 반면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신뢰하는 추론이 감각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보았고 따라서 추론을 진실이라고 말하려면 감각 또한 진실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감각을 좀 더 객관적 현상으로 평가했다는 것이죠. 두 번째 차이는 ‘원자의 속성이자 운동의 원인으로 내재된 무게’입니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의 성질로 크기와 형태를 설명하며 무한히 다양한 종류의 원자가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이런 원자의 특성에 중요한 한 가지를 더 보태는데 그건 다름 아닌 ‘무게’였습니다. 원자들은 무게로 인한 충돌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요. 무게라는 특성을 원자에 부과하면서 ’클리나멘‘이라는 당시로써는 스캔들과도 같았던 개념을 등장시킵니다.
원자가 무게로 인해 낙하운동을 한다고 하면 직선 낙하를 해야 하는데, 이 직선으로부터 비켜나 원자끼리 충돌을 한다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 이유를 클리나멘으로 설명합니다. 클리나멘이란 원래의 경로에서 벗어나는 것, 직선 운동에서 비켜나는 힘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원자들의 충돌로부터 생겨난다고 볼 때, 에피쿠로스는 이 충돌을 가능하게 하는 클리나멘이야말로 ‘창조’의 시작 그리고 결정론을 벗어나게 하는 ‘자유’의 원리를 확보하게 해준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에피쿠로스는 인과적 필연으로 설명되지 않는, 주어진 운명을 박차고 나가려는 존재의 욕망과 의지의 근거를 클리나멘으로 설명하고자 했다고 하고요.
이후 마르크스는 클리나멘을 충돌과 자유를 설명하기 위한 가정으로 보는 것은 모순에 부딪힌다며 클리나멘 자체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르크스는 클리나멘을 원자들 각각이 내재하고 있는 힘이며, ‘원자의 저항과 고집’, ‘원자의 가슴에 있는 어떤 것’, ‘원자들의 영혼’이라고 표현했다고 하는데 원자론에 영혼, 가슴... 이런 표현을 썼다는 것이 저는 좀 신기했습니다.
민호샘이 성실하게 준비해준 강의와 질의응답으로 1시간이 훌쩍 넘어버렸죠! 아무튼 자연의 원리를 관찰하고 추론하며 그로부터 인간 삶의 윤리와 철학을 도출해내려고 노력했던 철학자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에피쿠로스학파에 대한 심화는 내일 다시 채운샘의 강의를 기대하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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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암 스님의 구사론 수업은 감사하게도 길례샘께서 거의 복기 수준으로 올려주셔서 뒤늦은 정리는 따로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다만 한 가지, 지난 수업에서 계속 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선정에서 가장 먼저 끊어지는 마음이 ‘진심(嗔心)’이라는 것이었어요. 진심이란 뭔가가 계속 거슬리는 상태에 있는 것이죠. 아주 가끔 어딘가 불편하다고 해도 그것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을 때가 있긴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고 계속 힘들다고 여긴다면 그래서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면 아직 불쾌한 진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선정을 통해 색계와 무색계를 경험할 수 있는데, 색계와 무색계에는 진(瞋)수면이 없다고 했습니다. 육신으로부터 벗어난 세계이니 몸으로부터 일어나는 거슬림, 불편함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명상을 하다 보면 가부좌의 자세가 힘들어 배배 꼬기도 하고 저린 다리가 계속 신경 쓰이는데 어느 단계에 이르면 몸이 가볍고 편안해지고 이어서 마음도 부드럽고 편안해지는 상태가 됩니다. 이를 경안(輕安)이라고 하는데 이 경안은 선정에 이르는 구주심의 마지막 단계에서 얻는다고 합니다.
요즘 무더위와 끈끈한 습도에 저도 모르게 힘들고 짜증이 확 올라올 때 ‘아,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더위에 이런저런 핑계만 늘고 에어컨 없이는 이제 명상도 못 할 판입니다. 번뇌를 의미하는 ‘수면’이 하는 10가지 일(事)을 생각하자니, 한여름 무더위와 폭우 속에 이 몸이 감각하는 불편함이 일으키는 번뇌가 욕계에서 어찌나 뿌리가 튼튼한지요. 온갖 후유를 일으키고, 비리작의를 일으키고, 선심을 약하게 하고, 번뇌의 밭 (소의신)을 열심히 갈아 이 욕계를 절대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욕계의 무더위와 폭우의 재난 속에서 저희 자신에게 일어나는 수면을 바라보며 다들 정진하시길! 내일 뵙겠습니다.
*** 8월 10일, 3학기 5회 수업 공지입니다 ***
- 구사론 904-966쪽 읽고 공통과제 올리시고요
- 내일 간식은 길례샘과 호정샘, 후기는 혜윤샘께 부탁드려요.
폭우에 부디 모두 모두 무탈하시기를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