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17. 불교철학 3학기 6주차 후기
공부는 마중물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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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 시절에는 수돗물이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에 동네에서 수도펌프가 있는 집에 가서 물을 길어오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그런데 펌프질로 물을 나오게 하려면 먼저 한 바가지의 마중물을 넣어주고 재빨리 힘차게 펌프질을 해야지만 맑은 물이 쉼 없이 나온다. 만약 마중물이 적거나 넣자마자 펌프질을 하지 못하면 필요로 하는 맑은 물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현재 불교철학이라는 공부를 향해서 가는 우리들에게 스승님들의 이끌어 줌과 우리들의 노력이 적절한 마중물은 아닐까? 밝은 지혜를 솟아오르게 하는.
이번 시간에 그리스 철학은 ‘에피쿠로스의 인식론’을 가지고 공부했다. 에피쿠로스주의자는 신, 원자 등은 감각으로 잡아내기는 너무 미세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너무 미세하면 감각되지 않기에 이들 원자, 허공 등의 존재는 추론해서 얻을 수 있다고도 한다. 그리고 이 추론의 출발점은 사고의 한계를 만들어 내고 조건이 되는 신체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는 실존의 출발점을 도외시하지 않는 것으로 에피쿠로스주의자는 이런 면에서 경험론자이다.
에피쿠로스 주의자에게 진리를 판단하는 출발점은 감각이다. 감각이란 참된 것을 탐구하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는 안내자로서, 감각에는 쾌/불쾌라는 감정이 동반된다. 한편 비슷한 특질을 포함하는 개별 대상들을 반복적으로 지각할 때 선개념이 형성된다. 이 세 가지(감각, 감정, 선개념)와 감각으로 지각하기에는 미세한 것들(신들, 원자들)에 대한 직접적 사유가 진리의 기준이다. 감정은 쾌/불쾌의 감정 전체를 가리키는 실천적 판단기준이고, 감각과 프롤렙사이즈는 판단기준이랄 수 있겠다.
공부를 해서 무언가를 더 많이 알고자하는 욕망은 내 것이라는 소유를 불리고자하는 욕망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나의 공부 방법은 더 많이 축척하기를 외치고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우리를 참된 것을 탐구하는 길로 인도하는 안내자가 감각이라면 내면에 더 많이 쌓아놓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그 보다는 부딪치고 만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마치 마중물처럼.
‘아비달마구사론’공부에서 나는 확실히 꾀를 부리고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수업영상을 보고 복습하는 시간이 계속 더 늘어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었다. ㅠㅠ……. 이제는 먼저 예습하는 부분을 읽어가는 데 좀 더 성실해야겠다. 이번 시간에는 ‘온갖 혹(惑)은 어떠한 원인에 의해 끊어지는 것인가? 소연을 변지(遍知)하였기 때문에, 그것의 능연(能緣)을 끊었기 때문에, 그것의 소연을 끊었기 때문에, 대치도가 일어났기 때문에 끊어진다.(p.968)’는 내용을 시작으로 공부하였다.
첫 번째 ‘소연을 변지하였기 때문에’에 해당하는 끊음은 50개가 있고 두 번째의 ‘그것의 능연을 끊었기 때문에’는 9가지, 세 번째 ‘그것의 능연을 끊었기 때문에’는 능연이 끊어지는 것이 23가지가 있다. 이렇게 견소단을 다 끊고 수소단을 끊음은 그것의 대치로서 한다. 견소단은 딱 보는 것으로 대치가 되고 수소단은 우리의 습관이기 때문에 보고 밀어붙이고 밀어붙여서 뿌리를 딱 뽑아내는 것이 끊는 방법이다. 그러니까 대치는 제대로 앎을 일으켜 물샐틈없이 밀어붙이는 상황(무간도)을 만든다. 이렇게 물샐 틈 없이 밀어붙임이 단대치이고 무간도(忍에 해당)이다. 이는 끊어가는 중이어서 멸의 성취는 없다. 때문에 도둑을 쫓아내기 위해서 샅샅이 뒤져서 이 방에는 도둑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상태이기도 하다. 그 다음은 지대치인데 도둑이 없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문을 닫아 결정짓는 해탈도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끊어진 혹의 득을 더욱 멀어지게 하는 원분 대치가 있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자신이 속한 계를 싫어하는 마음으로 다음 세계로 넘어가는 염환대치가 있다.
고통의 대상은 세 가지로 나뉘는데 고고(몸과 마음 괴로움), 괴고(누구나 추구하는 즐겁고 싶어 하는 하는 마음), 행고(제행무상)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괴로움 중에서 미세하고 아주 미세한 괴로움인 행고는 마지막의 유정천에서 끊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수행을 하면서 유정천에는 가면 안 된다고 하니, 그렇다면 행고도 끊으면 안 되는 것인가?
습관으로 깊이 박힌 번뇌는 그 뿌리를 뽑아낼 정도의 끊임없는 수행으로 가능하다는 '수소단'의 의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게 물샐틈 없이 밀어붙이는 단계까지 가야 하는 것인가 봅니다. @@
그나저나 저희의 공부를 마중물에 비유할 수 있군요... 밝은 지혜여, 퐁퐁 솟아나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