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고 습한 여름을 지나며 점점 지쳐가던 중... 운문사에 한 번 가보겠느냐는 스님 말씀에 귀가 쫑긋한 불교팀은 7주 차 수업에 1박 2일로 경북 청도까지 먼 길을 나섰습니다. 기차역까지 1시간 30분 기차 타고 1시간 30분 다시 차를 타고 1시간 30분... 정말 멀었습니다. 그런데 그 먼 길을 간 보람이 있었죠. 비구니 스님들이 출가하여 4년간 정진하는 도량이라는 운문사는 눈이 시원해질 만큼 멋진 곳이었습니다. 입구로 향하는 아름드리 소나무 길, 넓고 아름다운 경내의 건축물들과 불상과 탱화들, 세심하고 정갈하게 가꾼 정원.... 절로 감탄이 나오더군요! 저희들이 방문한 때는 마침 방학 중이라 오가시는 스님들을 뵐 기회는 없었습니다만, 이런 곳에서 불교를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는 스님의 강력한 빽(^^)으로다가 운문사 정원 한가운데 있는 근사한 다실을 통째로 빌려서 공부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ㅎㅎ 다실 밖으로는 연못이 있고 예쁜 꽃과 나무들이 정성스럽게 가꾸어져 있었어요. 게다가 스님께서 준비해주신 푸짐하고 맛난 간식들! 그런데 이런 멋진 곳에서 스님께서 구사론을 강의해주시는 사이 저희들 중 몇몇은 꾸벅꾸벅 졸았단 말이죠. ㅋㅋ 그 이유인즉슨, 전날 운문사 근처 산꼭대기에 위치한 사리암엘 올라가서 저녁 예불을 보고 하룻밤을 묶었는데 다들 이런저런 이유로 잠을 못 주무셨기 때문이죠.
스님께선 사리암의 바위굴에서 밤샘 철야기도를 권하셨지만, 그것은 아직 저희에겐 아무래도 좀 무리가...^^;;; 대신 삼삼오오 108배를 하고 명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방에 수십 명이 함께 자리에 들었습니다만 밤새 뒤척이다... 새벽예불 한다고 갑자기 불이 환하게 켜지는 바람에 다들 화들짝 일어나고요. 저희는 사리암에 늘 기도드리러 오시는듯한 신도분들 뒤에 앉아서 목탁 소리에 맞춰 절도 하고 다리니도 읊으며 기도를 따라 했습니다. 운문사는 평지에 넓고 안온하게 위치해 있는데 사리암은 어찌나 높고 가파른 곳에 있던지! 다들 꽤나 고생을 했습니다만 그만큼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땀과 비에 푹 젖은 채 도착했는데 사리암에서는 샤워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잠시 망연자실했던 순간도요. ㅋㅋ
새벽 예불 후 저희는 이런 사찰에서의 기도는 기복 신앙이다 아니다에 대해 잠시 열띤 토론을 했습니다. 예전의 저는 이런 류의 기도라면 기복으로 치부하고 무시했었는데 어쩐지 이번에 참여한 예불에서는 중생의 서원을 들어주신다는 ‘나반존자’를 호명하는 스님과 신도들의 기도에 간절하면서도 청정한 신심이 느껴졌습니다. 수없이 많은 중생의 바램들을 하나하나 읽어주시는 스님들의 정성도 어떤 감동을 주었고요. 부처님, 나반존자, 스님들은 중생이 원하는 바를 그대로 이루어주는 초월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멀고도 험한 사리암을 고생고생 올라와 정성껏 공양을 올리고 절을 올리고 기도를 하는 마음에는 어떤 뜻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은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연 조건에 따라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이 조건들을 내게 유리하게 만들어달라고 부처님께 떼쓰고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어리석은 탐욕의 마음을 내려놓고 변화무쌍한 인연 속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겸허하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먹는 것, 그리고나서 어떤 결과라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것... 그것이 부처님께, 나반존자께 간절하게 올리는 기도의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운문사에는 500분의 아라한을 모신 오백 나한 전이 있다고 하는데 그곳은 공사 중이라 보지 못하고 저희는 16분의 아라한이 계신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런데 큰 불상에 비하면 미니어처처럼 조각된 아라한들의 표정이 어찌나 익살스러우면서도 충만하고 즐거워 보이시는지 저희도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16아라한 중 사리암에서 뵈었던 나한 존자가 어느 분인지 맞춰보기도 하고요... ^^ (근데 사진이 없어 아쉽네요)
운문사의 다실에서 진행된 구사론 수업시간에 스님께서는 저희가 둘러본 16아라한들을 언급하시며 소욕지족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이런 안분지족의 마음이야말로 깨달은 성인의 종성이라고 하셨죠. 지금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사실 불만과 번뇌가 끼어들 틈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수많은 인연 조건 속에서 내가 누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그 순간을 수희찬탄할 수 있는 마음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인연 조건을 그대로 긍정하는 마음이 됩니다. 어떤 순간의 조건들이 모여 만들어낸 행복한 단맛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말이죠. 그 단맛이 유지되기를 바라거나 다시 반복되기를 원한다는 건, 변화하는 조건들을 붙잡고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마음이고요. 원리가 이러함을 이해한다면 저희는 쓸데없는 기대나 집착을 하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 기대나 집착이 고통을 만들어낸다는 건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진리죠.
사리암에서 내려다본 비 오는 호거산의 전망과 운문사의 탁 트인 시원한 풍경이 눈에 선합니다. 언제 또다시 그곳을 방문하게 될 인연을 만날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저희 모두 올바른 길에 마음을 얹고 계속 정진하며 작은 것에도 수희찬탄할 줄 아는 마음을 닦아가면 좋겠습니다.
낯선 길을 자애롭게 안내해주신 스님, 먼 길 즐거운 동행이 되었던 불교 도반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
*** 불교 철학, 8월 31일 8회차 수업 공지입니다 ***
- 확인해주세요. 8회차 수업은 일정에 약간의 조정이 있습니다.
9:30 ~ 10:00 구사론 낭송
10:00 ~ 12:00 서양 철학 강의
12:00 ~ 1:00 점심
1:00 ~ 유식학파/구사론 수업
※ 공통과제 발표와 토론은 없습니다.
2. 구사론 시간에는 <티베트에서의 불교철학 입문> 349-401 쪽 일독해 옵니다. <아비달마구사론>은 따로 읽어오실 분량이 없습니다.
3. 다음 주 간식은 기웅샘과 현정샘, 8회차 후기는 경아샘께 부탁드려요!
어느덧 8월도 지나가네요. 8월 마지막 수욜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