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2학기의 마지막 시간 9주차(6.27)의 공지를 하게 되었네요!
1) <물질세계> 4장 ‘시時의 체계’(346~385쪽)를 읽고 옵니다! 시간 개념, 어렵겠지만 뭔가 기대되네요!
2) <생동하는 물질>을 주제로 한 2학기 ‘불교+물질’의 마지막 강의가 있습니다.
3) 간식은 정은이 선생님과 김경아 선생님께서 준비해 주시겠습니다.
4) 후기는 김경아 선생님께서 써주시겠습니다.
극미, 가장 작은 것을 둘러싼 철학
저희는 이번 주에 <물질세계>의 3장 ‘유색을 결정하는 극미의 세계’를 읽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기웅샘께서 적어주시기로 하셨고, 저는 세미나에서 남은 흥미로운 지점들과 질문들을 남겨보겠습니다!
<물질세계>의 큰 장점은 학파마다의 다양한 해석들을 인용문과 해설을 섞어가며 차근차근 비교하고 분석해준다는 점입니다. 그 설명을 따라가다 보니 그리스의 원자론이 빈약하다 싶을 정도로 불교의 극미론은 역동적으로 변화해왔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극미라는 개념 자체는 기원전 1세기의 외도 바이쎄쒸까 학파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허공과 함께 항상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아마도 헬레니즘 철학과의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어쨌든 처음의 극미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모든 색의 최소 단위로서 항상하고 무방분(無方分)인 것으로 정립되었고 아비달마 논서에서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경량부와 유식을 거쳐 중관학파에 이르면 극미는 무상하고 방분이 있는 것이라는 완전히 반대의 결론에 도착합니다. 사실상 최소 단위로서의 극미는 변하는 것이요, 그럼으로써 항상한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 되지요. 결국 극미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지게 되는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뒤집어질 수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극미에 대한 논쟁에서 중요한 쟁점은 ‘방향이 구분되는가’(방분), ‘부위를 갖는가’(지분), ‘결합에 간격이 있는가’였습니다. 만약 극미가 부분이나 방향(왼쪽, 오른쪽, 위쪽 아래쪽 등)을 갖는다면, 그것은 부분을 갖는 셈이 되고, 부분이 구분되는 이상 다시 다른 것으로 나누어질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궁극적인 최소가 아니게 되지요. 하여 바이쎄쒸까에서부터 경량부까지는 극미를 무방분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중관과 유식은 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극미는 자세히 헤아려보면 방향과 부분을 가진 유방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결합을 생각해보면 자명합니다. 하나의 극비는 사방과 상하의 여섯 극미가 둘러싼 형태로 취합되는데, 가운데의 극미가 방향도 부분도 갖지 않는다면, 여섯 극미의 위치는 뒤섞이게 됩니다. 중첩되고 마는 것이죠. 그러면 극미는 아무리 많이 쌓여도 덩어리가 될 수 없습니다. 유식학파의 아쌍가 논사는 극미를 방분은 갖지만 지분을 갖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중관학파의 아리야데바 논사는 극미가 유방분일 뿐 아니라 지분도 갖는다고 말했죠. 그렇기에 극미는 항상하지 않게 됩니다.
재미난 점은 유식학파와 중관학파가 무방분 입자를 인정하지 않는 궁극적 이유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유식학파는 외경 자체의 실체를 부정하고 그것은 식에 현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극미는 식에 현현한 세계를 다시 식으로 나눈 개념일 뿐인거죠. 귀류논증학파에서는, 극미는 다른 거친 색과 마찬가지로 부분과 명명에 토대에 의지해서 ‘이것이다, 저것이다’라는 식으로 가립한 것이기에 그것의 실체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연기의 본질을 고찰하는 승의적인 면에서는 하나와 여럿, 부분과 유분, 지분과 지분을 가진 것 등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은 절대 안립할 수 없습니다.
위상 물질이라는 자연의 소용돌이 고리
드디어 <물질의 물리학>을 다 읽었습니다. 한 학기 동안 꼼꼼한 발제와 함께 더듬더듬 헤매는 세미나 덕분에 그래도 과학책 한 권을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주에 배운 그래핀, 양자자석, 위상물질 등은 불교 숙제방의 발제문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세미나를 하면서 저희는 종종 첨단을 달리고 있는 과학기술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노벨상을 중시하는 과학의 권위주의 등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물질세계>에 서문에서 달라이 라마가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탐구하는 일도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하는 구절을 가져와 보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번 범위에서 저자 자신의 연구(양자 자석에서의 스커미온 격자)가 한끝 차이로 권위적 과학학술지에 실리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부분을 놓고는, 이 사람들에게 탐구하고 논문을 쓰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그것은 연구의 목적이나 가르침에서의 마음의 의도를 보리심에 두고 시작하는 불교와는 차이가 있을 듯했습니다. 노벨상으로 대표되는 명예, 선구자, 첨단 기술 개발 중요하다 보니 경쟁심이 생기는 조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학자들의 과학 활동에 높은 도덕적 잣대를 요구할 수 있나 하는 질문도 나왔습니다. 문제는 과학자들 개인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연구를 지원하는 시스템과 자본, 기업의 요구와 소비자들의 욕구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지금의 과학 활동은 아주 세세히 분업화되어서 좁은 범위밖에는 못 보게 되어 있습니다. 책에도 나오듯 몇몇 높은 지위의 교수들이 아니고서는 대부분의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가 어디로 갈지도 모른 채 그저 주어진 과제를 푸는 계산원이 되곤 하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이런 토론 자체를 가능하게 해준 이 책의 가독성과 친절함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물질의 물리학>은 위상 물리학에 초점을 다룹니다. 정확히는 위상 수학적 숫자들이 지배하는 물질들에 대한 연구이지요. 이때의 ‘위상’(位相)이란 상태나 지위(status)라기보다는 불연속적 안정성의 층위(topology)를 말합니다. 위상적 변화는 연결성이나 연속성 같은 작고 잔잔한 상호작용이 아닌, 찰흙에 구멍을 뚫거나 메우거나 혹은 천을 찢거나 꿰매는 등 부드럽지 않고 불연속적인 질적 변화입니다. 이런 변화가 한 번 일어나면 매우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데 이런 안전망을 ‘위상 수학적 보호’라고 부릅니다. 위상이라는 개념은 참 신기합니다. 이것은 변화와 대립되지는 않지만, 변화 속에서 고유한 속도와 구조와 흐름을 유지하는 홈을 뜻합니다. 마치 계곡 어느 지점에 물의 흐름이 틀어져 와류가 생기는 지점 같은 곳을 생각하게 됩니다. 특수한 안정성이 유지되는 곳이죠. 소용돌이 원자의 개념, 양자 홀 물질, 위상 자석의 스커미온 격자, 위상 부도체 등이 있습니다. 여기서 전자들의 흐름은 특정한 방식으로 고이게 되고, 다른 물질들에게서 보이는 거동과 달리 상대론적인 거동을 보입니다. 상대론적 거동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빛의 속도보다 훨씬 느리면서도 마치 빛의 속도에 가까운 입자처럼 질량이 없는 듯 행동한다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전자의 흐름은 특정한 안정성 속에 들어서게 됩니다. “어떤 종류의 결정crystal 속에 사느냐가 그 전자의 역할을 결정characterize해 버린다. 우스갯소리 갖지만 ‘결정’이 (전자의 배역을) ‘결정’한다.”(<물질의 물리학>, 291쪽)
이런 물질들은 물론 상업적인 이용에 굉장히 적합합니다. 위상물질들의 안정적 구조는 그만큼 안정적인 정보 저장 능력을 개발하게 하고, 온도 상승 없이 높은 전류를 흐르게 하는 등의 일을 가능케 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론적 거동은 시공간을 비틀기에 그에 따른 독특한 정보 전송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개발자들은 여기서 돈을 보겠지만, 어떤 과학자들은 마치 고대 수비학자들이 그랬듯 자연 안에서 전에 없던 독특한 질서를 발견해내는 흥분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전자의 흐름 방식으로 물질을 분류하던 방식 중 하나인 도체와 부도체에 해당하지 않는 제3의 고체, 위상 부도체를 발견했을 때의 흥분 같은 것 말입니다. 비스무트와 안티모니라는 희소한 원자가 97:3의 비율로 섞여야만 만들어지는 이 위상 부도체의 발견은 얼마나 신비로웠을까요?
입자 물리학도 그랬고 양자역학도 그랬고 과학의 놀라운 발견들은 언제나 자본과 시장 혹은 군수산업이 먼저 거머쥐었습니다. 이미 기술적 활용과 상품화가 시작되고 나서야 그 철학적 의미들이 널리 논의되기 시작하지요. 위상 물질이라는 영역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저희는 자연의 이런 독특한 안정성의 지층들을 어떻게 사유해야 할지 잘 모릅니다. 그래핀에서 나타나는 무아레 구조, 전자들의 상대론적 거동, 양자 홀 저항의 계단들... 일단은 이 현상들을 품어보고 기회가 될 때마다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좀 더 풍성하게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와우 민호샘의 후기 같은 공지와 기여 덕분에 2학기 잘 마무리한 듯합니다. 또 뿌듯하네요 ㅎㅎ 물질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물질을 보편적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난 물질을 뭐라고 생각하지? 그런 물질 개념은 어떻게 구성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조금씩 이동한 느낌입니다. 각자의 삶처럼 물질에 대한 생각도 각자 다 다를 듯해서 물질 개념 하나만으로도 인생이야기가 나올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매번 난상토론 와중에도 서로 뿌듯해하며 재미있었다고 끝내는 모습들에서 전우애를 느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