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철학 《물질세계》 2학기 8주차 후기 2023. 07. 01 이기웅
모든 존재의 근원은 물이라고 선언해서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탈레스나,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질로서의 가장 작은 알갱이를 원자로 상정한 데모크리토스등 많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물질과 우주의 근원에 대해 질문을 했다. 한편 인도의 고대 철학과 불교 학파들도 물질의 근원에 대해 심오한 질문을 던졌다. 돌덩이와 같은 형체가 있는 물체를 극단까지 쪼개고 분해하면 궁극에 가서는 뭐가 남을까? 그들은 더 이상 나눠지지 않는 궁극의 입자를 극미(極微)라고 상정했다. 이러한 극미의 개념은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가 주창한 원자의 개념과 닮아있다.
고대인도에서 극미를 말했던 대표적인 외도인 바이쎄쒸카 학파에서 내도인 설일체유부와 경량부, 그리고 유식(唯識)과 중관(中觀)에 이르기까지 모두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궁극의 극미가 쌓여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거친 물질을 형성한다는 점에서는 주장하는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인식하는 거친 물질의 궁극적 원인이 되는 극미가 실재하는지 여부? 실재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실재하는지? 그리고 실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인식하는 대상 물질은 어떤 방식으로 실체처럼 내 앞에 드러나는지? 시대와 학파에 따라 그 주장에 다양하다.
불교의 하부 아비달마 논서에서는 극미는 무방분이며, 중앙의 극미를 다수의 극미들이 둘러싸고 있고, 서로 접촉하지 않은 채로 머문다고 한다. 무방분이란 부피가 없는 알갱이, 즉 동서남북 등 방향성이 없는 입자이다. 접촉하지 않는데 흩어지지 않는 까닭은 풍(風)으로 붙잡고, 질(質)의 힘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극미를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극소(極小)의 물질이라고 규정하면서 하나의 극미를 가운데 두고 여러 개의 극미가 둘러싼 것이 극미라고 한다면 그러한 극미는 이미 여러 개의 극미가 모인 복합체일 텐데 왜 궁극의 극미라고 규정하는 걸까? 자체 모순 아닌가? 유부에서는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극미의 개념을 질극미진(質極微塵)과 취극미진(聚極微塵)으로 분류한다. 질극미진이란 유대(有對)인 유색법의 일종이며 다른 유색법으로 부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식으로도 각 부분을 분리할 수 없고, 색 중 가장 작은 무방분 입자이다. 취극미진이란 인식으로써 각 부분으로 분리할 수 있지만 다른 유색법으로 부술 수 없으며, 그보다 더 미세한 수준의 다른 취색이 존재하지 않는 입자이다. 예를 들면 사대(四大)인 지 · 수 · 화 · 풍의 네 가지 무방분 입자와 소조인 색 · 향 · 미 · 촉의 네 가지 무방분입자 즉, 무방분의 팔진질(八塵質) 각각이 질극미진이고, 그 여덟 가지가 모인 가장 작은 입자는 취극미진이다.(물질 세계, 308)
그리고 이렇게 하나의 극미를 둘러싼 다수의 극미들이 풍과 질의 힘 때문에 접촉하지 않으면서 흩어지지 않는다는 극미의 구조는 원자의 구조와 닮았다.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궤도를 도는 구조다. 전자와 원자핵인 양성자와 중성자는 세기는 미약하지만 자석이다. 자석은 자기력을 가지고 있다. 이 자기력이 전자가 원자핵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작용하는 힘이다. 마치 하나의 극미를 둘러싼 다수의 극미들이 접촉하지 않으면서 흩어지지 않도록 작용하는 풍(風)이나 질의 힘과 닮았다.
이러한 극미들은 어떻게 거친 유색의 물질을 형성하는가? 극미가 모여 거친 색의 물질이 되는 유부의 주장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극미 7개가 모여 1미진의 크기가 되고, 7미진이 모여 1금진이 되며, 수진, 토모진, 양모진, 우모진, 일광진의 순으로 앞의 것이 7개가 모여 뒤의 물질의 크기가 된다고 하는데, 1미진의 크기가 되려면 6개의 극미가 모인다거나 7소진의 크기가 일광진이 된다는 등 순서가 서로 바뀌거나 모이는 숫자에 대해서는 학파마다 그 주장이 다양하지만 커다란 의미 차이는 없어 보인다. 다만 일광진의 크기가 되어야 우리가 식별할 수 있고, 그 이전의 거친 색들은 너무 미세하여 우리의 감각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하다는 말과, 토끼털에 묻은 먼지의 크기를 토모진, 양털에 묻은 먼지의 크기를 양모진 소털에 묻은 먼지를 우모진이라고 부르는 점에서는 재미있었다.
그러나 극미가 자성을 가진 실체로서 존재하는지에 따라 주장하는 내용이 각각 다르다. 먼저 외도인 바이쎄쒸까와 불교도인 유부와 경량부에 이르는 학파들은 거친 색들을 각각의 부분으로 나눌 때 거친 색을 형성하는 궁극적 요소는 무방분(無方分)의 극미에 귀결된다고 인정하지만, 바이쎄쒸까 학파 등은 그것이 항상하다고 주장하고, 비바사사(유부)와 경량부 둘은 무상하다고 주장한다. (물질세계, 331쪽)
그러나 중관과 유식의 논사는 무방분의 입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두 학파는 유대(有對)의 색인 이상, 반드시 부분을 가진다고 주장하며, 또한 유방분 입자들의 부분과 그 부분의 부분이라고 수 겁 동안 분석을 하더라도 궁극적 원인, 혹은 무방분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입자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입자는 유분의 성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같은 책, 341쪽) 이 두 학파가 무방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무방분을 인정하지 않는 궁극적 이유는 다르다. 유식학파는 극미라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외경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식(識)에 현현(顯現)한 것을 식으로 식으로 분할한 미세한 입자 상태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자가 많이 모여서 형성된 거친 유색들도 그저 심식(心識)의 현현일 뿐 외경(外境)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같은 책, 342)
중관논사들의 관점에서는 내외의 어떤 법이든 존재 방식은 명칭에 의거해서 안립할 수는 있지만 승의(勝義, 절대적인 진리)적인 면에서는 하나와 여럿, 부분과 유분, 지분과 지분을 가진 것 등의 체계를 절대로 안립할 수 없기 때문에 무방분의 극미의 본성과 특성 등 어떤 것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명칭의 측면에서 미세한 극미도 연기(緣起)이고 모든 면에서 다른 것과 관계하는 것이므로 독립적인 것으로서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은 없을 뿐만 아니라 인식으로도 세울 수 없기 때문에 어떤 법이든지 연기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같은 책 343쪽)
고대 그리스나 인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보된 현대 양자 물리학에서도 가장 작은 알갱이를 확정적으로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작은 단일한 입자인 줄 알았던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진 복합체이며, 나아가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나 중성자조차도 그보다 더 작은 입자인 쿼크로 이루어진 더 작은 복합체일 뿐이다. 이뿐이랴 단순히 파동인 줄 알았던 빛도 분광기를 통해 관찰해보니 입자의 성질로 관찰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빛은 파동인가? 입자인가? 과연 물질을 궁극까지 분해하면 실체로서 존재하는 걸까? 이렇게 물질을 궁극에까지 분해해 가다 보면 입자는 파동의 형태를 띠다가 궁극에 가서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로 환원되는 것은 아닐까?
샘, 후기 잘 읽었습니다~ 바쁘신데 고생 많으셨겠어요. 어려웠던 극미에 관해 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도 아직 쫌 어렵네요^^ 방학 잘 보내시고 3학기에 뵈어요~
불교의 극미론을 따라가다보면, 유식과 중관에 이르러서 결국 극미의 실체성은 부정되고 유방분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되네요.
물론 두 학파에서 극미의 실체성을 부정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말씀하신대로 그렇다면 극미라는 개념은 여전히 유용한가 하는 의문이 남는 것 같아요.
여기서 '물질'이나 '있는 것' 혹은 '존재'에 대한 다른 상상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존재를 고체나 입자나 질량이 있는 무엇, 위치와 속도를 갖는 무엇이 아니지만 그래도 있는 것으로 상상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운동, 시간, 지속, 공, 연기 등의 개념이 요청되는 지점 같기도 하고요!!
끝까지 붙들고 써주신 후기 잘읽었습니다!!
지난 학기 후기를 이제 보니 정말 전생의 기억 같네요 ㅎㅎ
시간이 좀 걸린 후기? 잘 읽었습니다 열공하신 만큼 아주 알찬 후기 입니다 정리 잘해주셔서 감사해요~